가을을 닮은 송찬호시인, 8회 미당문학상을 수상

각박한 현대인들 옛 추억 새록새록

2008.09.28 22:06:57

8회 미당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송찬호시인을 보은 자택에서 만났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에 대한 대상이 가깝게 느껴진다고. 그림같은 서정적인 이미지가 담긴 시가 잘 써진다는 시인이 곧 새로운 시집을 들고 고대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다가올 예정이다.

가을이다. 하늘이 높고 구름이 어여쁘다. 길가에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한적한 국도. 보은, 보은의 명물 대추가 가로수길이 돼 운전자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앞뒤 오는 차량도 없는데, 한번 차를 세워 저 붉은 대추 맛을 좀 볼까. 그렇지만 가는 길이 바쁘다. 늘 그렇다. 바쁜 덕분에 붉은 대추가 며칠은 더 나무에 달려 그 길을 다시 지나가는 이들을 유혹할 것이다. 그래, 어서 시인에게나 가보자. 그렇게 길을 재촉했다.

보은에서 나 보은에서 살고 있는 시인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첫 시집 ‘10년 동안의 빈 의자’를 낼 때나 두 번째 ‘붉은 눈, 동백’, 세 번째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를 냈을 때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로면 관기리. 그곳에 올해 여덟 번째를 맞은 미당문학상 수상시인 송찬호(49)가 있었다.

흙이 있는 어디나 서 있어 가을임을 알리는 대추나무, 은행나무의 살찐 열매들이 먼저 맞는다.

그 곁에 시인이 5년 동안 나무를 깎고 다듬고 흙을 찧고 해서 만든 집이 있다. 아직 백 프로 완성된 것이 아니어서 주인장은 그 집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부끄럽기만 하다.

그러나 어디 집이 정갈하고 깨끗하게 완성된 것만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채 손길이 덜 간 곳이 남아 있어 객들이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선 정원이나 집 외벽의 손질이 한참 더 남아 있다고 시인은 쑥스러워 하며 보인다. 거친 나무 표면이나 흙벽의 손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것들을 언제 손봐야 한다고. 실내로 들어서자 시인의 섬세하고 꼼꼼한 손맛을 이곳저곳에서 느껴볼 수 있다. 한 치의 빈틈이나 오차도 없이 마무리한 미장이나 창틀의 조합은 시인이 시를 쓰는 속내를 닮았다. 그렇다. 시인은 시를 쓰듯 집을 지었다. 그런 철저함으로 시를 쓰는 시인의 시를 훔쳐보자. 수상작은 시인을 닮은, 시인의 삶을 닮은 시 ‘가을’이다.

“시를 쓰다보면 유난히 어렵게 써지는 시가 있고 한순간에 마무리되는 시가 있다. 이번 작품 ‘가을’은 한나절 만에 마무리한 시다. 유년시절의 익숙한 경험이었고 지금도 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어서 그것이 내면에 쌓여 있었고 시라는 형식을 빌어 자연스럽게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시에는 농촌의 한 타작마당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볕이 좋은 마당에 콩을 널어놓으면 오후 두 세 시쯤 콩깍지가 딱딱 벌어진다. 이때 콩깍지가 벌어지며 튀는 소리에 곁에 있던 장끼가 놀라 푸드덕 숲 속으로 사라진다. 그것이 시인은 ‘서러운 가을’이라고 표현했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가져다주는 이미지,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을 감추지 않고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3연에서는 산비탈의 외딴 콩밭은 멧돼지 무리조차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산비탈의 콩밭이 버림받고 소외되고 버려질 것을 예감한다.

4연에서 그 소외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구부정한 콩밭 주인’조차 이젠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으로 갈 생각을 한다. 누구도 찾아오지 않을 묵정밭이 되겠지만 그래도 올해 ‘소출이 황두 두말 가웃’은 된다고 구부정한 노인은 좋아 빙그레 웃는다.

마지막 연에서 콩밭 주인은 타작마당을 기웃거리는 작은 콩새에게 땅에 흩어진 콩을 어서 주워 먹으라는 여유를 보인다. 주인은 황두 두말 가웃이면 충분한 것이다. 나머지는 이웃에게 혹은 콩새에게 나눠주고 싶은 것이다. 구부정한 주인노인의 넓은 아량이 보인다. 함께 나눠 먹어야한다는 욕심 없는 주인의, 화자의 철학이 배어 있다.

작고 쓸쓸하고 잘 가꿔주지 않을 백도라지 무덤이나 앞으로 묵정밭이 될 산비탈 작은 밭이나 결국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작고 쓸쓸하고 누구도 돌보지 않을 것을 원망하지 않는 노인의 발언과 화자의 말이 중첩돼 시 속에 숨겨져 있다. 황두 두말에 만족하듯, 작은 무덤에 만족하겠다는 화자는 작은 것, 가난한 것이 결코 두렵지 않다.

시에는 물질만능이 중요시되는 현대인들에게, 자연을 등지고 도시로만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한번쯤 길을 가다 멈춰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립고 소중했던 추억을, 가난하지만 정겹고 따듯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것을 떠올림으로 그치고 말아야하는 안타까움과 쓸쓸함이 시에 뭉글뭉글 묻어있는 것이다.

잔잔한 산문 같으면서도 톡톡 튀는 경쾌함과 운율이 살아 있어 언어가 갖고 있는 마술 같은 힘을, 전율을 느끼게 하는 ‘가을’이 이렇게 다가 왔다.

이 시 ‘가을’을 뽑은 심사위원들은 선정기준에서 “정통적인 형식성과 언어미학을 기본조건으로 한다”고 밝히며 “이러한 기본조건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충족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가을’은 전통적인 감각과 언어로 가을의 서정을 노래한 시다. 장난기와 천진함도 있다. 요즘 시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소리와 운율의 미학이 특별한 수준에서 성취돼 있음도 매력적이다. 그래서 대가의 옛날 작품을 대하는 것 같다”고 했다.

평소 다작보다는 한편의 시에 완성도를 중요시하는 시인이다. 한편의 시를 완성하는데 그만큼 공을 들이고 고치고 또 고치고를 반복하는 습관이 있다. 그렇게 집중하고 몰두하고 치밀하고 섬세하게 시를 쓴다.

그의 시작 경력을 비추어 보면, 보통의 다른 시인들과 비교한다면 결코 많은 시집을 내지 못한 이유다. 오는 12월 10년 만에 네 번째 시집출간이 예정(문학과 지성사)돼 있다. 50여 편의 시가 담기게 된다. 시집을 낼 때마다 형식이나 내용의 변화를 보이는 것이 이 시인의 특징이다. 비슷한 시를 복제하고 동어반복을 견디지 못한다. 이번 시집 역시 전작과 다른 새로운 분위기로 갈 것이다.

우선 ‘가을’처럼 재미있고 선명하고 경쾌하고 발랄하고 강열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동화적이며 그림같은 선명한 이미지를 내세웠다. 이러한 변화는 어거지로 취할 수 없는 것이고, 세월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배어든 것이다. 자연의 다정다감한 사물이 멀리 보이다 가깝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물이 갖고 있는 독특한 각기의 개성이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대상에 대한 불안이나 갈등이 해소되면서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분명하고 꿋꿋해지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시가 근래에 잘 써지는 이유라고 고백한다.

글이 마음에 안 들면 펑크를 낼지언정 미진한 시를 발표하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 부여된 철칙인 시인은 그 성질만큼 검증을 다하기 위해 시집이 나올 때까지 원고를 수도 없이 보고 또 본다. 이렇게 시가 나올 때 까지를, 산모의 진통만큼이라고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여정은 힘들지만 그것이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의 성취감이 말이다.

시인은 늘 혼자인 것을 즐기며 시만을 생각한다. 머리 한구석에 그 소재들을 저장해 두었다가 원고지를 잡으면 머릿속에 저장된 것을 뒤적거려 한 가지씩 끄집어내는 것이다. 글이 마음껏 써지지 않으면 글에게 소외되는 기분이 느껴진다.

그럴 때, 글에게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해 더 투자하고 더 노력하려고 한다. 세상이나 이웃에 소외되는 괴로움보다 글에게 소외되는 고통이 더 크기 때문이다. 중앙의 권력 문단에서 조차 그에게 ‘변방의 시인’이라고 말하지만 그 권력의 문단에서 벗어난 변방의 시인보다 더 끔찍한 것은 글에게 배척당할까하는 염려다. 지금은 다행히 글이 잘 써져 글과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즐겁다. 그래서 시도 밝고 경쾌한 모양이다.

지난 2000년에는 시인들의 꿈인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고 이번에는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것이다. 국내에서 수여되는 시인의 상 중 으뜸가는 상을 섭렵하게 된 것이다.

천상 시인으로 태어나 시인처럼 살고 다른 어떤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시에만 정성을 쏟아야 가능한 시를 쓰는 시인이다. 미당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10월 24일 서울 대한 상공회의소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김정애 / 문화담당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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