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익송에게 문(門)은?

문은 욕망과 질투, 시간을 넘나드는 소통 통로로서의 공간

2008.06.01 21:15:55

대지 위로 쏟아지는 빛을 가장 먼저 받는 것은 문(門)이다. 어둠이 세상에서 물러가면서 가느다란 창살에 붙어 있는 창호지에 매일 다른 신비한 빛을 선물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신의 은총과도 같다. 아름다운 빛이 문살과 창호지와 어우러져 집 안과 세상 사이에 다리를 놓아준다.

깊은 잠에서 허덕이다 어슴푸레 동이 터 눈을 뜨면 어김없이 어둠과 공존하고 있는 창호지 문을 본다. 그 어둠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인다. 그러다 건넌방 할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들리거나 닭 우는 소리가 들릴 때쯤이면 창호지 문은 더 밝은 빛으로 다가와 남은 잠을 깨운다.

그쯤 되면 어둠도 물러가고 세상의 소리들이 문을 통해 들어온다. 강아지도 낑낑대고, 부엌에서 엄마의 그릇 부딪치는 소리도 들리고, 친구들이 마당에서 노는 소리, 소리들이 들린다. 창호지 문살에 얼룩진 어둠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그제 서야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용기도 생긴다.

일반 현대식 가옥에서는 걸러지거나 차단된 빛이 누군가 선택하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막연히 기다려 주는 빛이 문 밖에 존재한다.

전통 가옥이든, 현대식 일반 건물이든, 이들 문의 공통점은 그 문밖에 세상이 있다는 것이다. 집이나 건물은 문이 있어 숨을 쉬고, 그 문을 통해 세상과 소통을 이룬다. 그래서 문은 특별한 공간이다. 이 특별한 공간인 문(門)을 작품의 화두로 삼고 있는 작가가 있다.

‘Timeless Doors(영원한 문)’로 작품전을 열고 있는 진익송(49. 충북대 미술과 교수).

청주시 가경동 스페이스 몸 미술관에서 ‘Timeless Doors’ 연작으로 개인전을 갖고 있는 진익송교수. 그동안 탬색해 온 ‘문’이라는 공간에 대한 또 다른 실험적인 작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작가 진익송이 탐색하고자 하는 문은 무엇일까. 그의 작업노트를 들여다보면 대략 이렇다.

작품에 드러난 문은 하나지만 문의 안과 밖에 무수히, 여러 개 중첩되게 배치되어 있는 시계들을 통해 세월 이라는 인생 앞에 놓여진 수많은 중첩된 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는 갈등의 벽을 통과하는 통로로서의 이미지를 제시하기도 하고, 우리들 각자가 개별적으로 갖고 있는 욕망으로서의 문이기도 하고, 세상을 경영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도전과 성취의 문이고, 구도자에게는 지혜와 깨우침의 문, 종교인에게는 사랑과 자비의 문이기도 하다.

이 수많은 문의 상징적 의미들 중에 이번 작업의 주된 관심사로 표현한 문은 ‘욕망의 문’이다. 왜냐하면 자아는 선천적으로 욕망을 비울 수 없는 존재며 그 욕망을 채우고 담아 태워 재가 되어야 비로소 비워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품은 욕망을 감추어 숨기는 문이 아니라 그 대상을 인정하고 가며, 오며, 교류하고, 열고, 닫아야 할 공간으로 해석한 문이다.

그가 작품 활동을 시작한 초기에는 건축이나 조각, 공간의 크고 작음과 같음, 이들과의 연관성, 이질감 등을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러다 그 공간에 대한 탐색이 문이라는 특정한 공간으로 이동했고 그 관심은 집중으로 집약되었다. 20년 전 미국 뉴욕으로의 유학이 계기가 된 것이다.

나태해 있을 때 정글의 타잔처럼 소리를 질러 그들을 깨우는 역할이 바로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의 작품 ‘Timeless Doors’.

한국과 다르게 미국이라는 사회는 인종과 종교와 이념 등으로 인한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나 있는 사회다. 누구든지 그 갈등을 체험하고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런 갈등을 접하고 바라보면서 작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가 새로운 고민이었다.

그 고민은 사회나 인류에 대한 관심이었고 그 관심의 대상에 대해 비로소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작품의 주된 표현방식도 형태적인 면보다는 상징화해 내면에 담아내고 싶은 인문학적인 경향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갈등과 권력과 욕망으로 점철된 사회, 그로 인한 숱한 부조리한 현상들을 보지만 작가가 직접 나서서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힘은 없습니다. 예술은 그 문제들을 던져놓는 것이지요. 관객들이 보고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예술은 단지 리트머스 시험지일 뿐입니다. 문제들을 빨아들이는 것, 그래서 그것 자체를 보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지요.”

작품을 통해 세상을 불평하는 것, 그의 역할은 단지 그것이다. 사람들이 부패하고

그래서인지 그가 만들어 놓은 ‘Timeless Doors’ 연작은 관객들로 하여금 깊이 들여다보고 사유하고 그곳에서 작가가 무엇을 던지고 싶어 했는지 고민하도록 유도한다. 작품의 무게만 300kg이 되는 ‘용서의 문’에는 수천 개의 못과 실링팬 날개가 부착돼 있다.

그가 오브제로 사용한 못은 그저 단순한 건축용자재의 못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 가슴에 꽂혀 있는 비수같은 못일 수도 있다. 이 못들을 바라보면서 서로 용서하며 아픈 가슴을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란 것일까? 부착돼 더 이상 스스로는 돌 수 없는 실링팬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바람을 일으키고 싶은 상징적인 바람일 뿐이다.

‘명상’ 2007

나무 문 위에 오일칼라, 혼합재료, 61과 2분의 1x31과 2분의 1인치.

다른 작품 ‘명상’은 일부분이 잘려진 문짝을 사람의 손이 움켜잡고 있다. 그것을 사람이 바라보고 있다. 그 사람은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여기서 사람은 문을 열고 싶어 하는 욕망의 상징인 셈이다.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사람의 심리를 묘사한 작품 ‘도망자’에서의 문이나, 시계가 문에 수없이 중첩돼 부착된 ‘Timeless Doors’ 연작에서의 문이나,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문은 욕망과 탈출을 꿈꾸는 통로이거나 시간과 삶과 세월을 넘나드는 소통이거나 다양한 상징을 내포한 공간의 문이다.

“많은 작가들이 문을 소재로 작업을 합니다. 그러나 그 문을 모두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지요. 내가 바라보는 문은 욕망이나 질투나 열정이나 시간이 넘나드는 소통 공간으로서의 문입니다. 그것은 사회와 개인, 개인과 개인, 혹은 사회와 사회간의 다양한 소통의 통로 같은 문이지요. 그 문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 싶은 화두를 던져 놓는 겁입니다. 그것은 인류에 대한 사랑이나 관심에 대한 표현방법이지요 ”

그는 철판 문을 이용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료가 변하는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작업이나, 시계를 이용한 오브제 작업이나 그가 추구하는 것은 하나의 메시지를 던져 놓는 것일 뿐이다.

그는 뉴욕의 공항에 초대형 ‘문’ 설치작업 프로젝트를 구상중이다.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통로로서의 문을 구상하는 것이며 이것이 다른 어떤 문화공간에 놓인다면 ‘행복한 문’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가 이번 작업에 소요된 시계는 2200개다. 뉴욕 차이나 타운에서 저렴하지만 사용할 수 있는 시계를 구입해 분해한 뒤 좌판만을 문에 반복해 부착했지만 그가 구상한다는 뉴욕 공항의 문에 소요될 시계는 수만 개에 다란다. 이 많은 물량에 대한 확보 또한 작가가 해결해야할 과제이며 그로서는 또 다른 실험에 대한 도전이다.

진익송은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뉴욕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 후 뉴욕 소호에 위치한 펄크럼 화랑과 전속계약을 맺고 98년까지 6년간 작품 활동을 했다. 이어 97년에는 영국 노썸브리아 대학에서 방문작가로 영국현대미술과정을 연구하고 후기석사과정을 이수했다. 그간 미국과 영국, 일본, 한국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 및 그룹 전을 가진바 있다.

오는 11일까지 청주시 가경동 스페이스 몸 미술관 1, 2전시관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문의 043)236-6622.


/김정애 (소설가·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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