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숙 충북전통민화협회 이사장

민화, 민중들의 소망 담긴 생활미술

2008.11.24 18:48:29

"조선시대 왕의 뒤에는 늘 일월오봉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왕이 행차를 할 때도 왕이 죽은 뒤 왕의 혼백을 모시는 곳에도, 심지어 초상화에서도 왕의 뒤에는 늘 일월오봉도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 일월오봉도에는 우리 민족의 백성이 추구하는 왕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왕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하늘의 이치를 받들고 어질게 세상을 다스려 주기를 바라는 소박한 백성들의 꿈이지요. 이런 그림을 직접 그려 부모님 제사상 뒤에 세울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학창시절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았고,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야 민화그리기를 통해서 그 꿈을 펼치게 된 신영숙씨(55. 충북전통민화협회 이사장). 그의 민화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사)충북전통민화협회를 창립하는데 일등공신이었던 신영숙 이사장. 그의 바람은 옛 것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민화를 창작하는 것이다. 또한 협회를 통해 회원들의 기량향상은 물론 민화를 통해 소외된 이웃과 소통하는 창구를 만들어 가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5년 전이다.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민화과정에 입문해 민화작가 윤인수선생을 만나면서부터 민화의 매력에 빠져 들게 되었다. 민화가 모든 그림의 기본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유화나 수채화 등 정통회화에 비해 좋은 장점들을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정통회화보다 묘사의 세련미나 격조는 뒤떨어질지 모르지만 다양한 유형으로 형성된 민화는 우리의 일반 생활에 상당히 밀착돼 있다. 민화의 내용이나 발상 역시 한국적인 정서가 짙게 배어 있으며 자연적이면서도 화려한 원색의 색채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대변할 수 있다. 민화야말로 민족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민족예술인 것이다.

이런 민화의 세계에 빠져 들게 된 것이 그는 삶의 또 다른 행복이었다. 한번 붓을 잡으면 몇 시간씩 몰두 할 수 있어 여러 가지 잡다한 상념들을 쉽게 떨쳐 낼 수 있어 좋았다. 나이 들어감의 쓸쓸함을 새로운 즐거움으로 환원할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새로운 즐거움으로 인생의 풍요로움을 위해 뒤늦게 선택해 찾게 된 분야가 민화라는 것이 더 흡족하다. 여성들이 즐겨 하기에 여러 가지 강점들이 있는 게 민화이기 때문이다. 민화란 늘 우리 생활주변에 있어 왔던 것이고 어떤 분야, 어떤 물건에도 활용하고 응용할 수 있는 게 민화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민화 대부분이 조선 후기인 것은 민화의 출발이 민중들에 의해 벽이나 병풍의 장식용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대부분 벽장 속에 가려 소멸되어 오래전부터 민화가 존재했음에도 그 실체가 짧을 수밖에 없는 것이 민화다. 그림솜씨가 있는 평범한 민중들에 의해 그려진 민화는 주로 한국의 자연을 소재로 그렸다. 한국의 산, 바위, 나무, 꽃, 동물, 초충, 강, 새 등 자연이나 그밖에 사랑방이나 규방에 있는 풍경, 문방구 등을 소재로 그리기도 했다. 그림의 소재 역시 삶의 공간이나 민중들의 생각이나 염원 등을 담아 표현했기 때문에 당대 민중들의 삶의 양식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민화다.

강연옥 '봉황도'

두 번째 정기전이면서 장애인 돕기 성금을 마련하게될 회원들의 작품.

이렇듯 민화의 세계에 빠져 들게 된 그는 타 지역에 비해 유난히 민화인구가 많은 충북에 사단법인 예술단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을 냈다. 협회를 꾸린다면 여러 가지 좋은 점들이 더 많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회원들이 서로 자극을 주어가면서, 단지 취미생활에 머물지 않고 지속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가장 컸다. 다음은 그런 회원들의 활동을 통한 지역문화수준의 발전을 기대하는 것이다. 한사람이라도 그림 그리는 인구가 늘어난다면 그 지역의 문화수준이 고조 될 것이라는 작은 소망 같은 것도 품어 본 것이다. 그리고 다음은 자신들의 활동을 통해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갖자는 것이다.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회원들이 힘을 합하면 이웃을 도우며, 자신들의 예술활동도 할 수 있는, 더불어 살아가고 싶은 생각을 실천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여러 가지 장점들을 의식해서 만들게 된 것이 사단법인 충북전통민화협회다. 지난해 창립전을 열었다. 청주시 봉명동에 회원들의 공동 작업실을 만들어 민화그리는 사람들의 사랑방역할을 하고 있다. 각계의 전문가들을 초빙해 그림그리기 수업을 지도해 주기도 한다. 이곳에서 배워 사범자격을 부여받은 회원들은 또 다른 문화가 열악한 지역에서 민화를 보급하는 전도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박물관과 같은 지역의 기관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참여해 일반 대중들에게 민화를 체험할 수 있는 봉사자로 나서기도 한다.

아직은 시작단계이므로 많은 욕심을 내지는 않는다. 올해 두 번째 정기전을 열면서 처음 의도했던 일들을 벌여보았다. 문화예술을 통해 이웃과 소통하고 싶은 것이다. 장애인 돕기 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 바자회가 그것이다. 자신들이 틈틈이 만든 소품에 민화를 그려 관람객들에게 판매할 생각이다. 경기가 어려워 많은 작품이 팔릴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회원들은 열심히 작업을 했고 자신들의 기량을 맘껏 뽐내 볼 참이다.

찻잔과 접시 등 도예가가 만든 접시에 꽃과 나무 등 그림을 그렸으며 거울, 명함꽂이, 쿠션 등 생활에 필요한 소품 등을 제작해 그 위에 민화를 그려 생활 속의 그림이라는 것을 한껏 발산해볼 참이다. 이것이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한발 내딛는 것이다. 단지 취미생활로만 머물지 않고 열심히 그림을 그려 공모전 등을 통해 실력도 쌓아가고 그것이 사회에 작은 파장을 일으킨 다면 더 바랄게 없다.

두 번째 정기전이면서 장애인 돕기 성금을 마련하게될 회원들의 작품. (좌측상단 부터 시계방향으로 민각사각접시, 허인숙 '화훼도', 화조도이층장)

일반 회화 작가들이나 대중들이 민화를 순수 창작품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속상하지만 그것 또한 현실로 받아 들여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우리들의 과제인 셈이다. 옛것을 기본으로 현대적인 민화를 새롭게 창작하는 것, 민화를 그리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과제이고 최대의 목표인 셈이다.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인 것이다. 협회는 그런 과정으로 나아가는 창구 역할을 할 것이다. 불우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이며 지역의 대중들 곁으로 다가가 함께 교류하는 창구 역할을 할 것이며, 자신들의 기량을 끊임없이 향상시켜나갈 수 있는 창구가 될 것이다.

협회를 만들고 세우는데 일등공신이었다는 신영숙 이사장. 민화가 좋아 그림 그리는 것에 몰두 하고 싶어 발을 들여 놓았지만 과거 남편의 사업체를 직접 관여했던 잠재된 기질 탓인가. 어느새 회원들을 규합하고 진두지휘하고 방향을 설정하고 이끌어가는 일에 더 깊은 사명감을 느낀다. 그림 그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공적인 직함이 갖는 책임감 또한 그의 몫인 것이다.

종이를 펴고 물감을 곁에 두고 그리고 싶은 본에 의존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지만 언젠가 좀 더 기량이 깊어지고 민화의 세계를 제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현대적인 감각을 가진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역량을 만들어가는 것이 바람이다. 그것은 모든 회원들의 염원이기도 하단다.

협회 회원들이 굳이 회비를 내지 않고도 편안한 공간에서 언제든지, 누구나 민화를 배우고 작업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하나 마련해보는 것이 소망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충북에 민화를 그리는 인구가 더 늘 것이고 자연스럽게 민화를 좋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고, 사회는 문화예술의 향기가 넘쳐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역 자치단체의 관심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한 것이다.

두 번째 협회정기전이며 장애인돕기 기금마련을 위한 바자회전은 오는 26일부터 12월 2일까지 청주시 한국공예관에서 열린다. 전시문의 043)268-0255.

김정애/ 문화담당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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