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와 폭주족에 신음하는 피반령

2015.04.14 14:37:46

박연수

충북도청풍명월21실천협의회 사무처장

청주에서 무심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가덕면 인차리가 나온다. 또 인차리에서 동남쪽 방향으로 농로를 걸어가면 계산1리 말미장터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말미는 '큰 산'이란 뜻으로 큰 산 아래 조성된 장터가 말미장터다. 마을노인정에서 만난 70대 할머니는 "옛날 이곳은 대단했었지. 회인에서 넘어온 양건초 시장이 크게 열렸고, 지금과 다르게 사람들로 북적였지" 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마을 어귀에는 수령 200년 된 보호수 팽나무(청주 제 66호)와 느티나무가 어우러져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마을 노인정 바로 위에는 절터가 있는데, 그 넓은 곳에 유일하게 오층석탑(보물 제 511호)만이 옛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물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장터 소류지가 나오는데 오염원이 없어 그런지 맑고 투명하다. 팔뚝보다 더 큰 잉어(?) 세 마리가 여유 있게 노닐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물속으로 사라진다.

선조들의 향기를 맡으며 고즈넉한 옛길을 걸었다. 제법 수량이 많은 계곡물과 피어나는 생명들이 조화를 이루며 나를 자연의 일부로 빨아들인다. 길가 위로 제법 큰 바위가 보인다. 이 바위는 퉁수 바위로 '이 길을 오가는 선비들이 잠시 바위에 올라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마음을 달래려 퉁수를 불었는데 그 소리가 너무 구슬프게 장터마을에 울려 퍼졌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 가파른 옛길을 걸어 오르니 피반령으로 이어지는 25호 국도가 나온다. 옛길과 국도는 이중 가드레일로 막혀있고 도로는 폭주족의 놀이터가 됐었다. 굉음을 울려대며 경주하듯 달려가는 오토바위와 경주차량은 위험한 장난을 하고 있다. 불법 유턴은 예사이며 지나가는 차들에게는 매우 도전적이다. 도로의 갓길로 넘어선 우리에게 속도와 굉음은 매우 위협적이다. 막 새싹을 들어낸 생명체들도 파르르 떨고 있다.

피반령 정상에 오르니 경찰의 사이카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 경찰관은 멀리서 그들의 질주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112신고 후 경찰차가 올라왔다. 그들도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경찰차가 떠난 후 다시 굉음을 품어대기 시작했다. 피반령을 지키는 괴목공원 주인은 "주말이면 아예 포기하고 삽니다. 신고를 해봐야 제대로 되지도 않고…"라며 혀를 내두른다.

피반령은 청주와 보은을 잇는 최단거리 고개로 높이가 360m다. 6·25때 최대 격전지로 남하하는 북한군이 포를 말에 끌고 이곳을 넘어섰다고 한다. 매일 그리움에 피반령을 올라온다는 인차리가 고향인 80세 할아버지는 "피반령은 원래 국도로 보은을 가는 지름길이다. 6.25때 공군사관학교 뒷산에서 김석원 장군이 사일 전투를 했는데 그때 피반령도 포탄에 아수라장이 됐다"며 피반령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공간이라 한다.

피반령의 유래에 대해 "인차리까지 회인현이었는데 현감이 가마를 타고 이곳을 넘으면 가마꾼들의 손 가죽이 벗겨지며 피가 흘러 피반령이 되었다"고 전해주었다.

피반령에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쉼터가 있다. 그 쉼터 아래에는 온갖 생활쓰레기로 쓰레기로 얼룩져 있다. 심지어는 대변을 본 휴지들마저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다. 역사성과 선조들의 얼이 담긴 피반령은 쓰레기와 폭주족의 굉음으로 신음하며 세계 13위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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