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다리의 굴욕

2016.06.22 13:52:17

박연수

충북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농다리는 천년의 숨결을 간직한 자연문화유산이자 선조들의 토목기술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자산이다.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중리) 앞은 흐르는 미호천(세금천, 洗錦川)에 축조된 농다리는 1976년 12월21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제 제28호로 지정됐다. 축조형태는 주변에 산재한 사력암질의 돌을 이용해 물고기의 비늘모양으로 안으로 들여쌓기 하여 교각을 만들었으며 위로 갈수록 폭이 좁아져 유속을 견딜 수 있게 했다. 전체 형태는 지네가 물을 튀기며 건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농(籠)다리란 이름은 교각에 올린 상판이 밟으면 움직이고 잠아 당기면 돌아가는 돌이 있고, 대나무를 짜놓은 것 같다해 붙여진 것이라 한다.

농다리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전설을 품고 있다. 첫 번째, 아버지가 돌아가시어 친정으로 가려는 여인네가 물을 못 건너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고 임장군이 용마를 타고 돌을 날라 다리를 축조했다는 전설이다. 두 번째, 임씨네 집안의 힘 좋은 두 남매가 내기를 하였다. 아들(임장군)은 송아지를 끌고 서울을 다녀오고 딸은 치마로 돌을 날라 다리를 쌓기로 했는데 다리가 완성이 다 돼가도 아들이 오지 않자 어머니가 뜨거운 팥죽을 쑤어 딸에게 먹게 해 시간을 늦추는 사이 아들이 도착하자 분을 삭이지 못한 딸이 죽었다는 전설이다. 또한 나라가 큰 변고가 있을 때 다리에서 울음소리가 나는데 을사늑약 때와 한국동란 때도 며칠씩 울어 동네 사람들이 잠을 못 이루었다 한다.

세종대왕이 치료차 초정약수터로 행차할 때 건넜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충북발전연구원 김양식 박사는 "전설과 지명은 건넜다는 것이 확실하나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아 추론할 뿐이지만 마을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세종대왕의 이곳을 지나갔다는 생각은 확실하게 굳혀지며 이곳이 지름길이다"고 한다.

농다리는 총 93.6m로 장마 등으로 유실돼 24칸만 남아있던 것을 2008년 28칸으로 복원하였다. 유실을 막기 위해 튼튼하고 웅장하게 하다 보니 원형이 상실됐고 인공미가 많아 멋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관광객 유치에 집중하다 보니 앞산의 산림을 밀어내고 인공폭포를 만들었다. 농다리의 문화적 가치보다는 관광객만 유치하려는 근시안적 사고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농다리는 무너진 것 자체가 하나의 자원이었다. 매년 시민들이 참여해 고증을 하고 복원을 해가면서 선조들의 축조기술을 익히고 천년 풍상을 이겨온 토목기술의 우수성을 발견했어야 했다. 다시 만들어 가는 과정이 문화이고 볼거리이고 축제인 것이다. 복원이라는 것은 축적된 시간의 재발견이다. 선조들이 축적한 지혜를 찾아내는 것이 문화 콘텐츠이다. 콘텐츠가 부족하니 선조의 숨결은 사라지고 관광객 유치 명목으로 유흥지로 전락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진정으로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주차장 끝자리에 낚시꾼이 텐트 치고 자리를 잡았다. 취사 흔적, 쓰레기 태운 흔적이 남아있다. 오래된 것으로 보이나 축제나 관광객 수만 생각하는 관리자의 눈에는 안 보이는 모양이다. 상산팔경의 제 6경으로 농암모설(籠岩暮雪)로 불리는 농다리 주변은 천년을 이어온 선조들의 숨결은 사라지고 유흥지로 낚시터로 굴욕을 당하고 있다. 문화적 상징으로서의 농다리 복원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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