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凍土)의 땅에 봄기운이 전해졌습니다. 생명이 움트지 못할 만큼 단단했던 땅도 봄기운을 막아낼 순 없었나 봅니다. 생명들은 저마다 고개를 내밀고 인사를 합니다. 원추리, 벌개미취, 알프스 민들레, 샤스타데이지, 꿀 꽃, 상사초, 기린초, 튜울립, 톱풀, 베라가모, 범의 꼬리, 붓꽃, 작약, 눈개승마 등이 눈을 마주칩니다. 미선나무는 짙은 향기를 내며 꽃을 틔웠고 개나리 민들레 등은 노란 물결을 이룹니다. 밭의 표면에는 망초가 토끼풀과 함께 푸르름을 전해줍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잡초와의 전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을 알면서도 그저 푸르른 땅을 바라보며 봄기운을 만끽합니다.
봄기운이 전해진 지 벌써 한 달이 지냈건만 이제 사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봄인지 겨울인지 모르고 지낸 사이, 그들은 작년에 움을 틔웠듯이 올해도 희망을 틔웠습니다. 자연은 소리 없이 계절에 순응하며 묵묵히 초록빛을 발산합니다.
작년 12월 3일 저녁 계엄 발표 이후 우리의 삶은 꽁꽁 얼었습니다. 국회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되고 내란수괴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이은 구속과 석방 그리고 분열과 대립이 이어지는 동안 국가 경제 및 신뢰는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저 국민을 계몽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 계엄을 선포했다는 '계몽령'은 실소를 넘어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이런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는 사과 한마디 없고, 책임을 부하들에게 떠넘기며 추운 겨울 광장에 나와 있는 노인 지지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은 비루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122일간 불신의 여정은 2025년 4월 4일 11시 22분 "피청구인의 법 위반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됩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중략)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헌법재판관 만장일치로 파면을 선고하며 막을 내렸습니다.
결정문에서 문형배 헌재소장권한대행은 '비상계엄 선포, 계엄포고령, 군·경을 동원한 국회장악시도, 영장없이 선관위 압수수색, 법조인 체포 지시 등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라며 결정문에 명시하였습니다. 결국 대통령이라 하더라고 헌법과 법률이 지정한 권한을 넘어서서 국민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행위는 파면의 대상이라는 겁니다. 이제는 그간의 갈등과 불신을 치유하고 법이 정한 일정에 따라 빨리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대통령을 선출할 때입니다.
자연은 순리대로 진행하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빚어냅니다. 인간사에 자연같이 순리를 따를 순 없지만 과도한 권한의 남용은 '폭정'이라는 오명으로 남을 것입니다. 길상별서(吉祥別墅)에 봄기운이 물씬 풍깁니다. 우리의 가슴에도 따뜻한 봄기운의 희망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