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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인터스텔라'라는 영화를 세 번이나 연속해서 본 적이 있다. 전직 우주비행사 쿠퍼와 딸 머피의 매 순간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집중해서 보느라 눈알이 빠질 지경이었다. 크리스토프 놀란 감독의 기발한 상상력에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튀어 나왔다. '백 투더 퓨처'를 수십 번 보고도 다시 보고 싶듯이 '인터스텔라'는 내 인생영화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영화의 구성과 줄거리도 놀랍지만 나를 빠져들게 한 것은 영화의 대사들이었다. 가령 "부모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유령 같은 존재가 되는 거지",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유일한 것이다. 이해는 못하지만 믿어보기는 하자"라든가, "부모는 자식의 기억이야, 이제 우리는 그저 아이들한테 추억이 되면 돼", "부모가 되면 한 가지는 확실해지지, 자식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야" 등등, 긴박한 영상을 보랴, 자막을 보랴, 진짜로 눈알이 빠지기 직전 난 영화보기를 그만 두었다.

그 이후로 이 영화를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내 두 아들의 얼굴이 팝업창처럼 자동으로 떠올랐다. 한 놈은 40대를, 한 놈은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으니 귀여울 것은 없지만, 내게는 어릴 적 그 모습 그대로, 온 힘을 다해 뛰어 와서 내 품에 달려들던 그 천진한 얼굴만 생각나니 참으로 신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여름, 작은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서재의 수천 권이나 되는 책들이 골칫거리였다. 이삿짐센터 직원이 견적을 내면서 혀를 내둘렀다. 일단 자주 안보는 책들을 처분하기로 하고 서가 구석구석을 헤집다가 두 아들의 초등학교 일기장을 찾아냈다.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양 편철까지 해서 고이 모셔둔 일기장이었다. 스무 번이 넘는 이사 중에도 잃어버리지 않고 지금껏 끌고 온 것이다.

짐 정리를 팽개치고 아들의 일기장을 들쳐보니 30여 년의 세월이 '백 투더 퓨처'처럼 순식간에 과거로 되돌아가고, '인터스텔라'처럼 시공간을 초월한 듯 모든 게 아득해졌다. 30년이란 시간도 삼 초의 지속에 불과한, 허망한 영사막같이 지나갔고, 내 방의 창유리를 덮고 있던 성에마냥 순식간에 증발해 버린 것만 같았다.

주말에나 집에 오는 아빠를 그리워하는 아이, 기다림의 빈자리, 내가 사다준 빵냄새를 기억하는 아이, 함께 컴퓨터 게임을 하며 즐거웠던 시간들, 모처럼 만난 아빠의 꾸중으로 상심한 아이, 착한 아이가 되겠다는 각오, 나는 왜 아이들에게 야단을 쳤을까. 왜 우리 아이들을 슬프게 했던가. 난 언제나 그 시간이 지속될 줄 알았다.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글자 하나마다 또박또박 눌러 쓴 애들의 일기장, 한때의 추억의 조각, 시간의 흔적들을 난 버릴 수가 없었다. 내 아들의 자식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아들에게 전달해 주리라 생각하며 간직해 온 일기장을 이제 그들의 손에 돌려줄 때가 되었다.

"우린 답을 찾을 거야!", 내가 눈알이 빠질 정도로 영화를 보며 기억해 둔 대사들을 난 내 아들에게 일기장을 건네주며 함께 들려주기로 했다. 내 자식들도 이제 아이의 아빠가 됐고, 나처럼 30년이 지난 후에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인생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감독은 아빠이지만 아들이 주연이 되어 있는 멋진 인생영화를 만들어 가기를 나는 이 말과 함께 당부하려 한다.

'가장의 중력으로 살아가는 너희들의 어깨가 무거울지라도 너희들은 답을 찾을 것이다. 네 아들에 대한 사랑이 열쇠라는 것만 명심한다면 말이다. 이제부터 생의 신비를 네 아들의 일기장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블랙홀을 통과하여 다시 만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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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