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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눈이 딱 마주친 것은 빨간 신호등 앞이었다. 내 옆으로 두 대의 트럭이 정지해 섰고 그 쪽으로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가끔 길에서 마주치는 두 대의 트럭이 눈에 익었고 코 속으로 스며드는 냄새 또한 익숙하게 역겨웠다.

지난 몇 년간 출근길에 내 코 속을 어지럽힌 그 냄새를 어찌 잊을 것인가. 멀리서 그 트럭만 보여도 얼른 차창을 닫아야 했다. 옆으로 스쳐가기만 해도 속을 메스껍게 하는 거북스런 냄새가 한참동안 차안에서 사라지질 않았던 것이다.

차창을 급히 닫으려고 하는 순간, 난 멈칫했다. 트럭 바닥에 길게 누운 돼지 한 놈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눈을 보는 순간 나도 덩달아 그놈을 바라보게 되었다. 덩치가 내 두 배는 될 듯했다. 눈길을 거두지 않은 채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요놈 봐라. 나하고 눈싸움을 하자는 것인가. 괜한 오기가 발동했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뀔 때까지 그놈과 나의 눈빛은 레이저처럼 작렬했다. 대단한 놈이었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내 레이저를 받아냈다.

결국은 무승부였다. 분했다. 돼지 눈빛하나 꺾지 못한 나를 책망하며 빠른 속도로 그놈을 추월해서 차를 내달았다.

그날부터 레이저 싸움의 부작용이 시작되었다.

점심시간 때 시장골목의 순대국밥을 시켜 우적우적 먹고 있는데 갑자기 날 바라보던 그놈의 눈빛이 떠올랐다. 돼지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도 그 놈의 레이저 눈빛이 생각났고, 수육을 먹을 때도, 족발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놈이 눈빛으로 내 머릿속을 어떻게 조종해놓은 게 분명했다. 레이저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고 여기긴 했었다.

문제는 그만이 아니었다. 후유증이 더 심해져 갔다. 문득 그놈의 눈빛이 그리워진다는 거였다. 우람한 체구로 커다란 눈을 부라리며 날 쳐다보던 그놈이 궁금해졌다.

그때부터 출퇴근길 때마다 돼지들을 실어 나르던 트럭을 나도 모르게 두리번거리며 찾게 되었다. 아침이면 농장에서 한가득 싣고 간 두 대의 트럭은 저녁이면 텅텅 빈 차로 되돌아왔다. 짐작건대 그 차는 아침마다 도살장으로 가는 중이었다.

레이저 눈빛 그 놈 덕분에 돼지의 수명이 최대 15년이라는 걸 알았다. 사육되는 거의 모든 돼지가 생후 6개월 이내에 죽는다는 것도 알았고, 공장식 축산을 통해 120kg만 되면 도축되기 때문에 돼지를 기르는 사람들 아무도 돼지의 수명을 모른다는 사실 또한 알았다

내 눈에서 다시 한 번 레이저 광선을 쏘게 만든 건 두산백과사전을 보고나서였다 - "돼지 : 돼지속의 동물로, 고기를 이용할 목적으로 기른다." 이런 조악하고 허약한 문장이 우리나라의 유서 깊은 백과사전의 돼지에 대한 첫 설명이었다.

사전 편찬자들이 철학적, 과학적, 생물학적, 문화적, 모든 인간의 지식을 총동원해서 이런 글로 돼지를 정의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 세상에 인간에게 먹힐 목적으로 태어나는 동물은 없으리라. 먹이사슬에 대한 인간의 오만방자한 생각이 인간사회에서도 먹이사슬식의 전쟁과 폭력과 억압을 정당화하는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지중해 모래사장에서 생을 마감한 3살짜리 시리아 난민 아기사진을 신문에서 보았다.

어느 누구라도 살아있는 생명의 눈빛을 슬프고 두렵게 할 권리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그날 내게 아프도록 아주 길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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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