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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영

수필가

한 달 전에 약속했던 골목 이웃들과 상주로 여름휴가를 다녀오기로 한 날이다. 밖에는 비가오고 있지만 날씨와 관계없이 진행한다는 약속을 했기에 준비를 하였다.

우리 여자들은 먹을거리 준비에 이른 아침부터 전화에 불이 났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한다는 계획이 뚜렷하게 없었기에 각자 집에 있는 것을 가져가자고 한다. 나는 직접 농사를 지은 깻잎과 김치, 마늘장아찌 등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남자들은 자기 몸 하나만 치장하면 되니 편하다. 그러나 여자들은 놀러 갈 때마다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게 여간 부담이 가는 게 아니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비는 오고 습기까지 많아 머리에서 땀이 뚝뚝 떨어진다. 준비한 음식을 가지고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니 일행이 모두 나와 있다.

다섯 가구 열 명이 성별로 두 대의 승용차에 나눠 타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드라이브는 오히려 비 올 때 운치가 더 있는 것 같다. 도시를 벗어나자 7월의 산야는 푸르게 푸르게 덧칠을 하고 수목은 선명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차 안에서 여자들의 즐거운 수다가 시작되었다. 우리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그동안 감추고 있던 비화에 박장대소하며 즐거운 시간을 이어갔다.

한 시간 조금 넘게 달려간 상주에도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계곡의 물도 우렁찬 목소리로 흐르고 펜션 근처의 참깨밭이나 옥수수밭도 착한 아이처럼 얌전히 비를 맞으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펜션에 들어서니 파란색 수영장이 우리를 맞이한다. 우중 속인 데도 아이들은 수영하며 놀고 있다.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 옷을 입은 미끄럼틀이 먼저 시선을 끈다. 아빠들은 물속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자식들을 받아내느라 여념이 없다. 덕분에 엄마들은 테라스 탁자에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다. 그들도 지금, 여기에서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리라.

우리는 계곡 주변에서 들마루 한 개를 빌려 하루를 보내기로 계획했었다. 하지만 바람을 동반한 비가 쉼 없이 내려 하는 수 없이 실내로 옮겼다. 펜션 주인은 원룸이 비어 있으니 무료로 사용하라며 방문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주인의 배려에 감탄을 하며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원룸 앞의 테라스 탁자에 가져온 음식을 풀어 놓았다. 식탁 위에는 어느 것 하나도 겹치지 않은 음식이 한 상 차려졌다.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한 약속을 성실히 지키려는 듯 성급한 남자들은 가스에 불판을 올려놓고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더불어 밥을 짓고 채소를 씻느라 여자들의 손이 바빠졌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또 있으랴. 이 시간만큼은 백만장자도 부럽지 않다. 음식을 먹으며 부부끼리 서로 챙겨주는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가끔 봐도 좋고 매일 보면 더 좋은 사람들과 지금, 여기에서 함께하는 이 시간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다.

우리 골목 안 사람과의 만남은 16년이 넘었다. 유유상종이라 했던가. 공교롭게도 남편들이 모두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넉넉지 않은 월급으로 자식들 가르치며 평생 모은 재산으로 주택을 마련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한 골목에서 어울려 살아간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금방 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우리는 행복하게 어울려 사는 이웃사촌이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인생은 지금이라는 찰나의 연속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이 찰나를 뱅글뱅글 춤추듯이 사는, 찰나의 연속. 춤을 추고 있는 '지금, 여기'를 즐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사는 게 아니라 항상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사는 것, 그 자체가 가치가 있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곳 상주 펜션에서 골목 안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는 지금 행복하다. 나에게 최고 M.V.P는 지금, 여기 내 옆에서 함께하는 이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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