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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영

수필가

비 오는 일요일 아침을 맞았다. 남편이 일요일이면 나도 일요일이다. 이런 날은 실컷 자고 느지막이 아침 겸 점심 즉 아점을 먹으면 좋은 날이다. 그러나 부지런한 남편 때문에 나는 오늘도 늦잠을 못 자고 일찍 깨었다. 먼저 일어난 남편은 부엌 싱크대를 열고 라면을 고르고 있다. 치즈라면이 당첨되었다. 일요일만큼은 내 손을 빌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주부로서 책임감과 의무감이 발동하여 냄비에 물을 적당히 맞춰 전기 렌인지에 올려놓고 거실로 왔다.

남편은 라면을 먹으며 바깥 날씨를 살피더니 비가 와서 산에 갈 수 없으니 시골집에 가서 어머님을 뵙고 온단다. 나는 동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재빠르게 머릿속으로 굴린다. 집안일이 밀려 안 가기로 결정하고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우유와 수박을 챙겨 상자에 넣어놓는다.

남편은 어머님 드릴 용돈이 필요하다며 은행에 가야겠다고 말한다. 매달 얼마간의 돈이 어머님 통장으로 자동이체 되고 있지만, 장남으로서 모시고 살지 못하는 죄송한 마음을 용돈으로 상쇄하려는 심산일 것이다. 어머님을 기쁘게 하고 동시에 어깨의 짐을 덜어보려는 남편의 마음을 읽는다. 맏며느리인 나도 말은 안 해도 시골에 홀로 사시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사실이다.

남편이 시댁으로 가고 열심히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받아 보니 남편인데 목소리가 상기되어 있다. 회사 거래처 사장 내외와 함께 시누이네 별장으로 놀러 가기로 약속을 했단다. 준비하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어제부터 오는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별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기분이 좋다는 증거다. 옆에 앉은 여동생의 손을 붙들어다 뽀뽀를 하며 손을 놓지 않고 있다. 남편의 넉살이 부담스러운 순간이었다. 아무리 오빠라도 불편할 거라 생각하고 억지로 떼어놓았다.

시누이네는 얼마 전 산이 겹겹이 쌓인 곳에 밭을 마련하였다. 풀만 무성했던 밭을 정돈하여 반은 작은 집을 짓고 반은 밭을 만들었다. 우리는 그곳을 별장이라 부른다. 그곳에서 시누이 남편은 상추를 씻어놓고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시누이는 삼겹살과 곁들어 먹을 반찬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미리 예열한 그릴 위에서 지글지글 삼겹살이 익어가고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꺼내주었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여름의 한때를 보내는 순간순간의 시간이 함께하는 사람들의 눈망울을 초승달로 만들었다. 유독 남편의 기분이 좋아 보인다. 시골에 가서 엄마를 보고 왔는데 아팠던 허리가 많이 좋아졌고 가져간 수박을 잘 드시더란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 엄마한테 뽀뽀도 해주고 왔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오는 길 차 안에서도 여동생에게 애정 표현을 아끼지 않았던 모양이다.

객관적으로 남편을 바라보며 어느 때가 가장 행복할까 자주 생각해본다. 시댁에 대소사가 있어 동생들과 함께 있을 때나 지금처럼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술 한잔할 때 가장 큰 웃음을 짓는 것 같다. 지난번 동네 골목 모임에서 서해안에 놀러 갔을 때도 같은 표정을 지었다. 며느리의 전화를 받을 때도 얼굴에서 웃음이 뚝뚝 떨어진다. 목소리도 아기한테 하듯 말끝이 올라간다. 등산을 할 때도 남편의 얼굴은 행복해 보인다. 나는 산에 한 번 가려면 노동을 하러 가는 것처럼 부담이 밀려오는데 남편은 힘들다는 말을 안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을 바라본다. 얼굴에 웃음기가 묻어있다. 우중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한 휴일의 하루를 "나는 오늘 행복한 하루였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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