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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영

수필가

 해가 넘어가는 시간, 저녁 반찬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남편과 아들이 저녁을 먹고 온다는 전갈이다. 순간 작은 자유가 가슴에서 물결친다. 가정주부만이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아닌가 생각한다.

 콧노래를 부르며 혼자만의 저녁상을 차린다. 쟁반에 밥과 몇 가지 반찬을 챙겨 텔레비전을 보며 혼자 밥을 먹는다. 그러나 혼자 먹어서 그런지 밥맛이 없다. 밥은 여럿이 먹어야 맛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쟁반을 밀쳐놓고 채널을 돌려가며 텔레비전을 본다.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나 오락프로그램도 혼자는 재미가 없다. 실컷 게으름을 피우고 나면 자유도 싫증이 나기 시작하고 알 수 없는 외로움을 느낀다.

 혼자가 되는 시간에만 시골에 홀로 사시는 시어머님을 생각하게 된다. 매일 혼자 식사를 하시고 매일 혼자 밤을 맞이하는 마음은 항상 두려울 것 같다. 몇 시간 후면 돌아올 가족을 기다리고 있어도 뭔가 허전한데 아버님 돌아가시고 13년째 홀로 사시는 어머님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외롭고 쓸쓸하실 것 같다.

 가끔 시댁엘 가면 어머님은 밤에 잠을 못 주무시고 밥맛도 없어 굶기도 하신다며 하소연하듯 말씀하신다. 어쩌다 아들네에서 묵을 때는 식사도 잘하시고 잠도 잘 주무시는데 어쩌면 자식과 같이 살고 싶다는 어머님의 간접적이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는 선뜻 같이 살자는 말을 못 한다. 같이 살면서 얻어지는 좋은점 보다는 오히려 고부의 갈등으로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까 염려가 됐기 때문이다. 이 또한 나의 이기심이 먼저였으리라.

 이즈음에 '동경 이야기'라는 일본에서 제작한 영화를 봤다. 1953년에 만든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후 산업화에 변화하는 가족관계와 사회상을 통해 소외된 노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노부부는 잘 키운 자식들을 만나러 동경으로 간다. 그러나 큰아들과 큰딸은 바쁘다는 이유로 소홀히 대한다. 남편을 잃고 홀로 사는 둘째 며느리만 극진히 대접한다. 서운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후 노모(老母)는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홀로 남은 아버지는 슬픔에 젖어있다.

 영화는 노부부의 쓸쓸한 뒷모습을 여러 번 보여줬다. 직선적인 표현보다는 남겨진 여운이 말로 표현한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우리와 달랐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자식들이 불효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노부부의 편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영화관에 불이 켜지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영화 속의 자식이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노부부의 모습이 장차 우리 모두의 모습이 될 것이란 것도 말이다.

 우리 세대는 늙고 병들면 마지막 갈 곳은 요양원이 될 것이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 현상처럼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체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의 보호를 받아야 할 때 지금처럼 의연하게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자꾸만 생각났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 서둘러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오빠, 언니들을 원망하는 막내딸에게 둘째 며느리가 들려주는 말이 있다. "누구든 부모와 별도로 자신만의 인생이 있어요. 다들 그렇게 변하는 것이 아닐까요?" 얼마나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말인가. 바꿔 말하면 부모 인생과 자식의 인생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다.

 혼자 저녁 시간을 보내며 가족의 소중함을 느낀다. 내가 부모님께 그러했듯이 자식에게도 무엇을 기대한다는 것은 양심상 원하지 않는다. 장차 소망이 있다면 어머님처럼 외롭지 않게 우리 부부가 건강하게 해로(偕老)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곧 자식에게도 큰 선물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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