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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영

수필가

꽃샘추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주말을 맞았다. 우리 부부는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무작정 외출준비에 들어갔다.

물과 모자를 챙기며 부산을 떠는 가운데 전화벨이 울렸다. 큰언니였다. 등산 계획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도 좋다며 같이 가자고 부추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계획에도 없었던 대청댐으로 봄 마중을 나갔다.

물길을 따라 걷는 길에는 산수유 꽃망울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있다. 꽃다지도 땅바닥에 찰싹 붙어 꽃대를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좀 더 따뜻할 때를 기다리며 개화開花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꿈을 향하여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에게 좋은 기회가 오는 것이며 행복이라는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봄은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둘레 길을 걷는 사람들의 얼굴이 봄처럼 순하다. 나도 애써 순한 표정을 지으며 호수의 풍경을 둘러본다. 멀리 보이는 동네와 도로, 그리고 흐르는 물이 가슴에 안긴다. 보슬비처럼 촉촉하게 스미는 익숙한 감정을 가슴으로 느낀다. 그런 것이었구나! 피를 나눈 언니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은 바로 고향을 보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언니와 나란히 걸으며 세월을 넘나든다. 나보다 여덟 살이나 위인 언니는 부모님이나 형제자매에 대해서 나보다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다. 하여 언니에게 듣는 과거의 에피소드는 매번 반복되지만 내게는 전혀 싫증나지 않는 추억이 된다.

큰언니는 맏딸로 태어나 부모님의 살림 밑천이 되어 주었다. 결혼 전에는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거두거나 장사를 나간 엄마를 대신하여 끼니를 해결해 주고, 넷이나 되는 동생을 돌보는 일을 했다. 결혼해서도 언니는 어려운 형편에도 맏딸 노릇을 제대로 했다는 말을 엄마께 들은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나와 동생은 언니 형부에게 많은 혜택을 받았다. 형부의 소개로 중견 회사에 취직을 할 수 있었고 오갈 때 없는 우리를 단칸방에 살면서도 다락방이지만 기거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때는 나름대로 어려움이 많았겠지만 좋은 추억만 생각난다. 언니가 해주는 밥이 유난히 맛있었다는 것과 다락방이지만 동생과 같이 지내며 꿈과 희망을 품고 20대의 청춘 시절을 보냈다는 것이다. 다만 그때는 동생들을 거두는 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옛말에 '형만 한 아우는 없다'란 말이 있다. 언니는 한 사람도 아닌 둘을 단칸방에서 어떻게 데리고 있을 생각을 했을까. 말은 안 했지만 또 형부에게 얼마나 미안했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내가 언니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나는 언니처럼 동생들을 위해 희생하지 못했을 것 같다.

봄바람에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언니의 얼굴이 예전 같지 않다. 나이 탓일까. 마음이 짠했다. 같은 청주에 살면서도 자주 만나지 못하고 살았다. 이웃집에 사는 지인의 생일은 열심히 챙겼으면서도 언니의 생일은 축하한다는 메시지 하나로 대신했다. 문우들과는 일 년이면 서너 차례 1박 2일 여행을 다니면서도 언니와는 작년에 3박4일로 다녀온 외국 여행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남편을 대신 다녀온 것이 고작이었다.

이제는 부모님 양친 모두 돌아가시고 6남매만 남았다. 멀리 사는 언니 오빠들과는 어렵지만 같은 지역에 사는 언니만이라도 자주 만나 정을 나누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 모두가 어렵던 시절, 단칸방에 살면서도 동생들을 보살피며 엄마를 대신했던 언니의 사랑을 기억하며 조금씩이라도 갚으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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