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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영

수필가

말복이 지나자 한 달 넘게 지속하던 폭염도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올해같이 애타게 가을을 기다린 적이 또 있었던가. 더위를 잘 견디고 9월을 맞은 사람들은 선선해진 날씨를 체감하며 이제 살맛이 난다고 하며 너도나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

9월을 맞으며 청주의 도시가 술렁이고 있다. 전국무용제를 시작으로 청주 읍성 큰 잔치, 젓가락 페스티벌 등으로 이어지는 큰 행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더불어 가을학기 시민 강좌가 평생교육원과 도서관 등에서 개강하였다. 그래서일까 우리 주부들의 발길이 더욱 바빠졌다.

청주 시립도서관에서는 지난달 중순경 인터넷으로 프로그램 신청을 받았다. 선착순이어서 다른 사람보다 먼저 접수를 해야 한다. 내가 배우고 싶은 '캘리그라피' 과목을 학기 때마다 신청했지만 늦게 해서 안 되었다. 올해도 신청자가 많아 대기자로 접수를 했는데 운이 좋게도 선정되어 매우 기뻤다.

수업 첫날, 설레는 마음으로 외출준비를 한다. 공들여 화장하고 머리 손질을 한다. 몇 벌 안 되는 옷이지만 심사숙고해서 골라 입는다. 간단히 메모할 공책과 필기구를 가방에 넣고 학생의 마음으로 대문을 나선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 소리가 경쾌하다. 일 층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얼굴에 부딪는 공기가 어제와는 사뭇 달랐다.

이순을 코앞에 둔 나이에 무엇인가를 배우러 나서는 길, 상가 앞에 진열된 화분의 꽃들도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하고 자동차 밑에서 숨바꼭질하는 길고양이마저도 배웅을 나왔다. 도서관 앞에 잘 꾸며진 공원을 지날 때 기분은 최고다. 오솔길을 중심으로 두 줄로 서 있는 소나무 길을 걷노라면 환영받는 기분이다.

도서관 3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문화교실1' 이라고 씌어 있는 문을 연다. 모두의 눈이 내게로 모인다. 하나같이 젊고 예쁜 젊은 여성들이 의자에 앉아 있다. 낯선 인사를 하고 빈자리를 탐색하다가 인상이 좋아 보이는 수강생의 옆에 앉는다.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살피니 남자 회원도 있다. 조금 전 집에서 나설 때 설레던 기분은 어디로 가고 긴장을 하는 나를 발견한다. 아마도 첫날의 어색한 기분 때문이리라.

잠시 후 강사님이 들어오셨다. 인상이 좋아서일까 마음이 편안해진 느낌이다. 먼저 강사님의 인사가 있은 다음 우리 수강생의 자기소개가 있었다. 우리 아들 나이 정도 되는 아기 엄마도 있었고 초등생 엄마도 있다. 수강생 모두 야무지게 자기소개를 하고 포부를 이야기한다. 나는 손자가 있다고 소개하며 어쩌면 나이가 가장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많이 부족하니 도와달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선생님께서 수업에 필요한 문방사우 재료를 준비해 오셔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나는 미술 쪽으로 소질이 전혀 없다. 그런데다 나이 때문인지 매사에 순발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자신감이 떨어졌지만, 결석만 하지 않으면 잘 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었다.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은 출석이기 때문이다.

내가 캘리그라피에 매력을 느낀 것은 그림과 함께 멋있는 글씨가 씌어 있는 카드를 선물로 받은 때부터다. 선물을 준 사람의 정성이 느껴져 매우 고마웠었다. 나중에 그 글씨가 캘리그라피라는 것을 알고 배워서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

벼루에 먹물을 따르고 붓을 적셔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듯 글씨를 쓴다. 먹 향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따라서 잘 해보겠다는 의지도 함께 가슴에서 일렁인다. 못 쓰는 글씨지만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쓰다 보니 두 시간의 수업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을 나서는 발길이 가볍다. 가정주부가 학생이 되어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학창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배움의 길은 생각만 하여도 즐거워진다. 특히 세대를 허물고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또 다른 세계를 만나는 행운이 되리라.

이만큼 살면서 내게 언제가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무엇인가를 배울 때라고 대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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