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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영

수필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로수는 이파리마다 수채화를 그리고 있었다. 붉은색의 파스텔 톤으로 변해가는 단풍을 바라보며 오래오래 아름다운 모습으로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자연의 순환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속살을 드러낸 채 나목으로 서 있었다.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을 건너고 있을 때 멀리서 무단횡단을 하며 천천히 걸어오는 노인을 발견하였다. 큰 키에 걷는 걸음걸이며 낯익은 모습이었다. 건널목을 건너가서도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노인이 도로를 다 건너갈 때까지 바라봤다. 나는 누군가 내 다리를 붙들고 있는 것처럼 붙박이가 되어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노인은 구루마를 밀며 매우 천천히 걷고 있었다. 구루마 위에는 종이 박스 두 개가 올려져있었다. 다리가 불편한지 절룩거린다. 검은 옷에 검정 모자를 쓰고 검은 안경을 썼다. 형편없이 남루한 차림이었다. 평소 내가 알고 있던 노인의 모습이 아니어서 내 눈을 의심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노인은 불행하게도 옆집에 세 들어 살던 할아버지였다.

혼자 살고 계셨던 할아버지는 원룸에서 사셨다. 가끔 쓰레기를 버리러 밖에 나올 때면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하곤 하였다. 젊은 시절엔 수학선생님도 하셨다고 하였다. 그래서일까 딸 같은 내게 항상 존댓말을 할 정도로 예의가 바르셨다. 내게 고향이 어디냐고 묻기에 충주라고 대답하니 할아버지도 같다고 하시며 반가워하셨다. 나는 혼자서 얼마나 외로우실까 생각하며 종종 말벗을 해드리곤 하였다.

할아버지는 같은 집에 사는 젊은 여자와 함께 재활용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하셨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처럼 아침이면 리어카를 끌고 거리로 나섰다. 두 사람은 생활보호 대상자로 시에서 보호를 받고 있었지만 그 돈으로는 생활이 어려웠을 것이다. 열심히 사는 두 사람에게 골목에 사는 사람들도 돈이 될 만한 헌옷이나 박스 등 재활용이 되는 물건을 모아서 갖다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를 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가까운 곳에 영구 임대아파트가 있는데 때마침 순서가 왔단다. 잘된 일이었다. 방 한 칸에서 답답하게 사셨는데 넓은 곳으로 가신다니 마음이 좋았다. 가끔 사는 이야기도 나누며 좋았는데 허전한 마음이 앞섰다. 이삿짐 싸는 것을 도와드리며 건강하게 잘 지내시란 말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우리 동네를 떠나셨다.

그 후로도 두어 번 길에서 우연히 만나 근황을 알 수 있었다. 문득문득 궁금해서 이웃에게 물어보면 가끔 길에서 봤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그러면 나는 돌아가시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심하였다. 그러던 차에 오늘 우연히 만난 것이다. 아니 멀리서 뵙기만 한 것이다.

할아버지의 초췌한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몇 년 사이에 몰라보게 변해버린 모습이 측은하다 못해 너무 불쌍해 보였다. 이렇게 길에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내가 놀라웠다.

힘겹게 구루마를 밀고 가는 할아버지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어떤 마음으로 재활용 쓰레기를 모으러 다니시는 걸까.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사람은 희망으로 산다고 하는데 구십 세 가 넘으신 할아버지는 어떤 희망으로 사실까. 나는 가슴 한구석이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터덜터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헤매고 다녔다. 달려가서 인사를 드렸어야 했고 따뜻한 음식 대접이라도 해야 했다고 자신에게 질책을 하였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인 것 같다. 어쩌면 모르기에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닥쳐올 앞일을 안다면 우리는 어쩌면 미리 포기하는 삶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신은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미래를 알 수 없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믿고 싶다. 비록 허름한 차림에 아픈 몸을 끌고 다니더라도 할아버지는 지푸라기 같은 희망이 있어 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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