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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영

수필가

소확행(小確幸)이 올해 삶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랑겔한스 섬의 오후'라는 수필집에 나오는데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가 아니어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깨알 같은 행복을 느끼며 살지 않을까. 주부가 직업인 내가 느끼는 소확행은 아주 단순하다.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가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을 바라볼 때나 어제 보지 못한 화초가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볼 때다.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한 잔의 커피와 마주할 때도 또한 행복은 슬며시 마음을 흔든다. 이처럼 혼자만의 작은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가운데 이웃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내게 소소한 행복을 선물한다.

15년 전 빌라 단지로 이사를 왔다. 모든 것이 낯설고 적응이 안 되어 허전함을 느끼고 있을 때 새로 이사 온 옆집 아저씨가 골목 모임을 주선해 만들었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식사하는 것으로 모임을 이어갔다. 그 이후로 남편들끼리 아내들끼리 한층 더 가까워졌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진화하듯이 우리의 모임 형태도 점점 발전하여 애경사도 서로 챙겨주고 여행도 다니며 친목을 다지고 있다.

며칠 전에도 앞집 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내게 어디냐고 물으며 콩나물을 줄 테니 빨리 나오란다. 냉장고에는 마트에서 사 온 콩나물이 있었지만 고마운 마음에 대답하며 밖으로 나갔다. 골목에는 벌써 다른 이웃도 몇 명 나와 서 있었다. 손에는 모두 콩나물 봉지가 매달려 있다. 나도 고마운 마음으로 덥석 콩나물 봉지를 받았다. 지인을 돕기 위해 사서 나눠주는 거란다. 결국 언니의 선행은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한 셈이다.

지난달에도 박 여사의 부름에 나가보니 마찬가지로 이웃의 그녀들이 나와 있다. 승용차 트렁크에는 마늘 종다리가 몇 자루 실려 있었다. 그녀는 커다란 비닐봉지에 묶지도 못할 정도로 많이 담아 이웃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수고 없이 받아든 손이 부끄러워 고맙다며 잘 먹겠다고 인사를 했다. 그녀는 마늘종을 뽑으며 무척 재미있었다고 하며 괜찮다고 한다. 그녀의 말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 양이 워낙 많아 나도 또 다른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 사람의 선행이 또 다른 사람으로 이어져 골목엔 모양도 색깔도 없는 행복이 날아다녔다.

그날 저녁 밥상 위에는 잘 무쳐진 콩나물과 간장과 식초가 적당히 발효된 마늘 종다리 반찬이 식탁의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였다. 콩나물 한 젓가락 먹을 때마다 앞집 언니의 웃는 얼굴이 생각나고 마늘종 반찬을 먹을 때마다 박 여사 얼굴이 떠올랐다. '음식에서 인심 난다'고 하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이웃의 안주인들은 신기하게도 하나같이 특별한 직업이 없다. 그래서 좋아하는 취미나 특기를 살려 예술 활동을 하며 여가를 보낸다. 나는 도서관의 수필교실에서 좋은 인연을 맺으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옆집 언니의 서예는 프로 수준이고 작년부터 한국화를 배우고 있다. 친구처럼 지내는 이 여사는 노래교실에서 대중가요를 배운다. 또한 장구와 민요를 잘하는 앞집 언니는 국악에 열중이고 박 여사도 햇병아리 수준이지만 피아노를 열심히 배운다. 어쩌면 좋아하는 것도 아롱이다롱이 인지 신기할 뿐이다. 서로가 장르가 달라서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나름대로 특기를 살려 문화생활을 하고 사는 그녀들 또한 소소하지만,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결혼해서 시부모 공양하면서 자식들 다 키우고 노년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들이다. 오늘의 작은 행복은 결코 무상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각자 개인의 성공을 위하여 수많은 날을 고뇌하며 열심히 살아온 우리들이기에 행복하게 살아갈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초승달이 마중을 나오는 시간, 소박하지만 따로 또 같이 행복했던 하루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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