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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영

수필가

추수를 하기 위해 시댁의 사 남매 가족과 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남편은 농기구를 챙기고 나는 새참과 점심을 먹는 데 필요한 음식 재료와 식기류를 챙겼다. 생각날 때마다 준비한 것을 현관 앞에 모아놓으니 일하러 가는 것인지 놀러 가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되었다.

모든 짐을 싣고 밭으로 향했다. 운전하는 남편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가을걷이해서 동생들하고 나눠 먹을 생각을 하면 기쁜 모양이다. 신나게 달려간 밭에는 아무도 없었다. 먼저 와서 다행이라고 마음속으로 안도하며 차에서 연장을 꺼내고 모자와 장갑을 착용하였다.

땅콩과 고구마 수확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밭을 둘러보고 있는데 큰 시누이 내외가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도착을 알린다. 줄지어 시동생 식구와 막내 시누이네 식구들도 아이들과 같이 왔다. 밭에는 금방 파란 가을 하늘 같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판을 날아다녔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에 오이, 상추, 고추, 토마토, 땅콩 등 10여 가지의 모종을 사서 심었다. 그날도 오늘처럼 시댁 식구가 모두 모여 모종을 심었다. 어른들은 농촌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워낙 오래전의 일이라 농사일이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도시에서 자란 조카들이 겁 없이 일을 거둔다고 여러 종류의 모종을 들고 밭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대견하였다. 조카의 고사리 같은 손이 고추 모종을 구멍에 넣고 흙을 덮는 일을 하는 모습은 어른과 별 차이가 없었다.

오늘도 아이들이 일손을 보탠다. 작게는 초등 1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아이들이 다섯 명이다. 초등 1학년, 5학년인 조카 여식은 작은 손에 커다란 목장갑을 끼고 나타났다. 아니 걸치고 있다고 해야 옳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진지한지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남편은 몇이랑 안 되는 고구마 덤불을 걷어내고, 큰 시누이와 조카가 고구마를 캔다. 큰 시누이 남편이 땅콩을 캐서 쌓아 놓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땅콩에 붙어있는 흙을 털고 플라스틱 상자에 힘껏 내리쳐서 땅콩을 턴다. 원래대로라면 땅콩을 캐서 밭에 널어 말리는 게 맞지만, 얼마 되지 않는 양이기에 한군데 모아 마르게 널어놓는다.

시끌벅적하던 밭이 갑자기 조용해져 주위를 둘러본다. 어린 조카는 이미 밭을 이탈하고 큰 조카의 모습이 힘겨워 보인다. 이른 시간에 달려와 서툰 일을 하다 보니 점점 기운이 떨어지고 진력도 났을 것이다. '이걸 언제 다하나·' 어른인 나도 걱정을 하는데 아이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이즈음에 준비해온 음식으로 새참을 먹으며 가족 간의 정을 쌓고 기운 빠진 몸도 충전하는 시간을 가진다.

막걸리를 먹은 덕분일까. 땅콩을 캐는 남편은 시원하게 삽질을 한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땅콩을 들어 보이며 사람들을 불러댄다. 모두의 눈이 한곳으로 몰리며 와! 하는 환호성이 함께 울린다. 튼실한 땅콩이 한 식구가 되어 매달려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언제나 고락(苦樂)을 같이하는 시댁 식구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였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던 가을걷이가 여러 사람의 협조로 빨리 끝났다. 그제서야 모두의 얼굴에 환한 웃음기가 보였다. 다른 식구들은 남아있는 고추나 가지 등을 따고 나는 점심 먹을 준비를 한다. 언제나 점심은 삼겹살을 준비한다. 열심히 일하고 먹는 음식이 얼마나 맛있겠는가. 잘 익은 고기를 상추에 싸서 서로 먹여주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흐뭇하여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 같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정리를 했다. 수확한 농작물을 사 남매가 나누었다. 농사란 농자재나 농약값을 빼면 솔직히 남는 게 없다. 어쩌면 돈 주고 사 먹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식구들과 모여 일하면서 정을 쌓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농촌 체험을 하였으니 '일거양득'이라 할 수 있다.

오늘 우리 가족은 또 하나의 추억을 주웠다. 가을을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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