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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영

수필가

육거리 종합시장을 향해서 영운 천(川)을 따라 걷는다. 흐르는 물소리가 청아하다. 마른 풀 섶에서는 새들이 숨바꼭질하는 듯 연신 드나든다. 조금 있으면 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봄까치'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풀꽃이 연보라색으로 수를 놓을 것이다. 아직도 얼굴에 닿는 바람은 차갑지만 내 마음은 이미 봄 마중을 나가 있다.

시장을 보는 재미는 뭐니 뭐니 해도 좋은 물건을 싸게 사는 것이다. 목표달성을 하려면 시장 입구에 형성된 난전이 제격이다. 그곳은 주로 할머니들이 한 평도 못 되는 장소에서 곡물이나 채소를 펴놓고 파신다. 가끔 젊은 농업인이 직접 지은 농산물을 가져와서 싸게 팔기도 하는데 그날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다. 싱싱하고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어 좋고 덤은 보너스다.

오늘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난전이 한산했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활기찬 모습을 기대했던 나는 조금 실망했지만, 시장 안에는 평소 그대로여서 기분이 좋았다. 매대 위에는 싱싱한 수산물과 과일, 채소가 풍성하게 차려져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더 많은 물건을 팔기 위하여 외치는 상인의 목소리가 듣기에 좋고 오랜만에 눈이 호강을 한다.

시장통 중간을 가르며 혼자 걷는다. 수많은 사람이 내 옆을 지나가지만, 그 많은 사람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문득 외로운 생각이 가슴에 닿자 십수 년 년 전 음성 금왕에서 살던 생각이 났다.

음성 금왕은 제2의 고향이라 할 만큼 정든 곳이다. 그곳은 5일마다 장이 서는데 그다지 살 물건이 없어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웃과 시장엘 가곤 했다. 시장을 한 바퀴 돌다가 사 먹는 어묵과 호떡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친절한 주인의 단골 가게가 있어 아픈 다리를 쉬어갈 수 있어 정말 좋았다.

이사는 왔지만 한 달에 한 번 하는 모임 때문에 금왕을 간다. 어쩌다 장날이 걸리는 날이면 지인을 만나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반가움의 기쁨은 두 배가 되고 두 손 마주 잡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읍 단위지만 장이 서는 날만큼은 육거리 시장처럼 모든 것이 풍성하다. 그래서 청주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농산물을 사서 들고 온 적도 있다.

육거리 시장은 전국에서 꽤 알려진 시장이지만 평균 한 달에 두 번 정도 이용한다. 그 이유는 동네 마트도 많고 걸어서 십여 분 거리에 대형마트가 있어서 편리함만 추구하다 보니 전통시장을 이용하는 기회가 적어지는 것 같다.

혼자 걷는 길이 외롭긴 하지만 상인들의 부지런한 모습을 바라보면 나도 따라 힘이 생기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필요한 물건을 사는 재미가 또한 쏠쏠하다. 제일 처음에 옷가게에 들렀다. 그곳은 가격이 저렴하고 정가제여서 흥정을 할 필요가 없기에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먼저 매장을 한 바퀴 돌며 필요한 물건을 물색한다. 먼저 아들의 티셔츠 두 장을 골랐다. 그리고 여성 코너에 눈을 돌리는데 레이스가 달린 검은색 블라우스가 눈에 번쩍 들어온다. 나는 순간 시어머님을 떠올렸다. 시골에 사시고 연세도 많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지만 평소에 즐겨 입는 것을 자주 보아온 터라 기분 좋게 샀다.

가던 길을 다시 되돌아오며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산다. 인상이 좋아 보이는 할머니한테는 남편이 좋아하는 물미역을 사고, 닭발을 살 때는 상인 아주머니께 얼굴이 곱다며 너스레도 떨어본다. 꽁치를 사면서도 아저씨 인상이 좋아서 샀다고 하니 인상만 그렇다고 겸손해한다.

생각 한번 바꾸면 여러 사람이 이렇게 행복해하는데 나는 오늘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 행복해졌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가방 가득 들어 있는 옷가지들이나 채소, 과일, 생선을 바라보며 가족들이 좋아하는 상상을 한다. 그러므로 시장을 보는 일은 내가 느끼는 작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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