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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힐링여행 - 일본의 민낯을 찾아서

군국주의 그늘 속 한 줄기 빛을 만나다

  • 웹출고시간2014.01.23 20:14:51
  • 최종수정2014.01.23 20:14:51
부산 밤바다에 정박해 있는 하카다행 카멜리아호에 오르니 일개 범인(凡人)의 가슴에도 문득 비정의 역사가 일렁인다. 전에 비행기로 쉽게 일본 상공을 건넜던 것과는 반대로 복잡한 심사가 얽힌다. 나의 외조부도 일제강점기에 약관이 채 못 된 나이에 이 어둔 바다를 건너 생업을 구하신 적이 있다. 얼마나 숱한 이들의 눈물이 떨어진 바다이더냐. 깊고 어둡게 일렁이는 밤바다에 오욕의 역사가 어른거린다.

밤 10시 30분에 출발한 배는 다음 날 새벽 4시쯤 후쿠오카의 하카다항에 닿았다. 후쿠오카하면 또한 윤동주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물여덟의 청춘으로 스러져 영원히 맑고 푸른 청년 시인의 전설이 된 윤동주! 그러나 저들은 윤동주를 쓰러뜨렸으나 또한 현재 후쿠오카에는 순수 일본인들로 구성된 '윤동주 시를 사랑하는 모임'도 있으니, 군국주의의 그늘이 짙은 가운데도 한 줄기 밝은 눈빛은 살아 있다. 그 빛이 이끄는 대로 일본의 민낯을 만나보기로 한다.

모든 신들이 모여 사는 곳 남장원

남장원 가는길

남장원으로 향하는 길, 비가 내렸던지 물기 품은 도로가 정갈하게 반짝인다. 마치 손님을 위해 말갛게 물걸레질해 놓은 느낌이다. 우리보다 폭이 좁은 도로임에도 정체가 되거나 클랙슨 소리가 없다. 군더더기 없는 깨끗한 정적의 첫인상에서 역시 처음부터 선진 일본의 정수를 맛보는 듯하다.

남장원은 큐슈 총본산인 유서 깊은 절이다. 남장원 주지 스님이 미얀마에 의약품을 많이 보냈는데 그쪽 불교회에서 답례로 불사리를 많이 보내왔다고 한다. 그 사리를 안치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 세계 최대의 청동 와불이라고 하는데,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옆으로 길게 누워 있다. 마치 거실에 편안히 누워 식구들을 따뜻이 포용하듯 바라보는 가장의 모습을 닮았다. 발을 만지면 건강해진다 하여 와불의 발은 유난히 반들거린다.

남장원 누워있는 와불.

남장원에는 거대 와불 뿐 아니라 곳곳에 아기자기 숨어 있는 신들이 볼거리다. 죽은 아기들을 위무하기 위한 턱받이 차림의 아기 돌부처, 귀여운 모양의 고양이 신, 만지면 아들을 낳게 해준다는 배불뚝이 신-청동으로 만들어진 이 신의 둥그런 배만 반들반들 닳아서 금빛으로 빛난다-, 사업 잘되게 해준다는 칠복신, 심지어 로또 신당까지 있다.

경사진 산길을 가벼운 걸음으로 내려가는데 일행 중 내 또래의 장년배가 지팡이 짚고도 허리가 절반으로 꺾인 구순의 아버님을 부축하여 천천히 내려가고 있다. 1미터80은 족히 넘어 보이는 껑충한 키의 그가 아버지의 눈높이에 맞춰 어설프게 허리를 구부리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일순 부처로 보인다.

세상의 학부모는 태재부에서 모두 같다


태재부는 일본 헤이안 시대 천재 학자인 스기와라 미치자네를 학문의 신으로 모시고 있는 신사다. 마침 오늘 1월 18일이 이곳 일본 대학들이 입시를 치르는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태재부 천만궁 신사에는 평소에는 학생층이 많다는데, 오늘은 중장년층 참배객들이 대거 몰려 있었다. 입시가 아니더라도 자녀를 둔 일본의 학부모라면 반드시 한번은 찾는 곳이라 한다.


입구의 우물가 같이 생긴 곳에 사람들이 몰려 약수를 떠먹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입 안을 헹구고 간단히 손을 씻는 곳이다. 신사 참배 전의 의식이다. 사실 신사의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1800년대 미국에 견문을 갔던 엘리트 관료 유학생들이 자유분방해 보이는 미국인들이 일요일이면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생활의 질서를 잡는다고 생각하여 도입했다고 한다. 원래 여러 신을 모시던 풍습이 미국 예배당을 베껴오며 신사라는 형태로 외형적 질서까지 자기네 것으로 체질화한 셈이다.

태재부 천년된 부부나무

태재부를 감싸고 있는 것은 천 년 넘은 거목들이다. 습기가 많은 지역이라 고목들에 붙은 이끼가 푸르게 살아 일렁이며 난초처럼 길게 자라 있는 것들도 있었다. 거목의 생동하는 기운과 학문의 신을 모셨다는 상징이 조화롭게 어울려 맑고 드높은 지성의 향기가 감도는 것 같았다. 그 기운이 발목을 붙잡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천년 누대를 살아온 거목들이 집 안의 정정하고도 강직한 큰 어르신들의 모습처럼, 세상 배움길에 나선 학동을 배웅해 주는 것 같았다.

무사정신으로 구축된 구마모토 성

일본 도심의 한복판에는 큰 공원이나 성이 있어서 도시의 허파 역할을 한다고 한다. 구마모토 성도 마찬가지다. 이 성은 오백 년 이상 된 나무들이 많아 거대한 공원과도 같아서 아이들의 소풍지나 시민들의 산책 장소로 사랑받는 곳이라고 한다.

성의 입구 벤치에 한 할아버지가 앉아 있는데 관광객 무리가 지나갈 때마다 계속 고개를 숙이며 '곤니치와'를 연발하고 있다. 관광객이 잠시 끊길 때면 그제서야 모자를 바로 쓰고 쉬다가 사람들이 또 앞을 지나가면 다시 인사를 반복한다. 일본도 요즘 치매 문제가 심각하다던데 할아버지도 아마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 일본과의 불편한 역사의식 때문인지 대부분 한국 관광객들에 바쳐지는 그 인사가 마치 일본의 잘못된 과오를 반성하는 상징적 모습으로 읽혀졌다.

성의 천수각에 올라보니 주변의 시원한 풍취가 한 눈에 일별된다. 거리를 두고 성벽을 바라보니 그 완만한 경사의 묘한 기울기가 눈에 더욱 잘 들어온다. 성을 공격하는 군사들이 오르지 못하고 뒤로 나동그라질 수밖에 없는 각도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성의 오른편에는 가토 기요마사 영주가 살던 집을 고스란히 복원해 놓았다. 축소지향의 일본인답지 않게 큰 규모의 다다미방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정원으로 난 마루를 비끼는 저녁 햇살이 쓸쓸하다. 소설 '대망'에서 읽은 막부 시대 걸출한 인물들의 이름이 잠시 눈앞에 명멸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혼다 마사노부……. 한때의 부귀영화도 이렇게 관람객의 발 아래 매일 낙조처럼 스러지는 것을…….

구마모토성에서 공연하는 연극인들

현 아베총리의 정신적 지주라 일컬어지는 요시다 쇼인의 유혼록에는 이런 유서가 남겨져 있다. "몸이 무사시 들판에 썩어도 세상에 남겨지는 야마토 다마시." 야마토 다마시(大和魂) 정신은 일본 무사정신의 응축이며 죽음의 미학이다. 위기 앞에서 죽음을 초월하는 단결적 희생정신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겠다. 그 무사들이 이제 돈을 벌기 위해 성의 앞마당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애교 섞인 칼춤을 추고 있다.

아소팜 빌리지 숙소

숙소인 아소팜 빌리지로 가기 위해 아소산을 오르니 눈발이 조금씩 흩날린다. 어머니의 자궁을 본따 만들었다는 동그란 버섯 모양의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늑하고 포근하다. 일명 스머프 마을에 계속 평화롭게 눈이 내렸다.

/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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