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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설영의 세계여행 도전기 - 오스트리아 Ⅱ

모차르트의 심장은 아직도 도시곳곳 살아 숨쉰다

  • 웹출고시간2013.05.26 21:21:3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음악의 도시이자 모차르트의 고향 찰츠부르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마리아 수녀가 두 팔을 벌리고 드넓은 초원 위를 달리면서 노래했던 것처럼 '찰츠부르크'는 음악의 소리가 살아 움직이는 낭만의 도시다. 짧은 시간의 여정이 이렇게 마음의 평온을 안겨다줄 수 있다는 것은 '찰츠부르크'가 우리들에게 안겨다 준 행운이기도 하다.

'찰츠부르크'에서 더 더욱 우리들 가슴을 뛰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모차르트가 악장으로 몸담고 있었던 '찰츠부루크 대성당'이다. 이 대성당은 구시가지의 중앙에 자리잡은 이태리 바로크식 성당으로 12세기에 세워져 독일까지 카톨릭을 전파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역사적인 성당인 것이다.

#모차르트의 세례식 장소인 찰츠부르크 대성당

모차르트가 악장으로 몸 담았던 찰츠부르크 대성당.

744년 대주교인 '비르길'이 처음으로 지었는데 1598년 일어난 대화재로 지붕이 내려앉자 당시 대주교였던 '디트리히'가 로마의 성당을 모방한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지었다고 한다. 1944년 10월 16일에는 연합군의 공중 투하 폭탄 공세로 성당의 반구 천장이 파괴되고 이후 복구를 추진하여 1959년 5월 1일 완료되었다고 한다.

숱한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찰츠부르크 대성당'은 아마도 보이지 않는 모차르트의 위대함이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히 식지 않는 세기의 음악가로 존재하고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확실한 추측을 해본다.

찰츠부르크 대성당 내부의 모습.

대성당 안에는 '모차르트'가 연주하던 파이프오르간과 유아 영세를 받았던 성수함 등 그의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는 유물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특히 '황소오르간'이라고 불릴 만큼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파이프 오르간은 6천개의 파이프로 이루어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것으로 마치 우리들을 감동의 선율로 집어 삼킬듯한 웅장함을 과시했다.

그가 연주하던 모습과 소리들이 성당 안을 가득 메우고 있어 환영 속에 빠져들 것 같은 착각이 불을 피우듯 번져갔다. 오스트리아는 온통 모차르트의 세상이라고 크게 외치지 않아도 거리마다 즐비한 유적들과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말하고 있다. 그의 심장이 아직도 도시 곳곳에서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의 고향과 그가 몸담고 있었던 대성당을 둘러보니 나도 몰래 대학시절 음악과 친구들과 어울려 본 영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한 장면으로 마구 빠져들었다. 라이벌인 '살리에르'가 '모차르트'의 음악이 신의 경지에 닿는 것을 질투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그의 음악은 다분히 짧은 생이 보여준 것처럼 너무나도 인간적이었다.

첫사랑 '알로이지에 베버'를 위해 아리아를 만들면서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하는 것처럼 노래도 부르는 사람에게 맞아 떨어져야 한다.'고 편지를 썼던 것처럼 그는 당시 대다수의 젊은이와 같은 방식으로 살지는 않았다. 순수하고 낭만적이며 건전하고 도덕적인 그의 젊은 시절이 나의 대학시절 영화를 보면서 참다운 청춘에 대한 가치관을 세우는데 분명 일조하였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루하루 가난을 떨쳐내려 했던 집요함이 있긴 했지만 밤마다 잠자리에 들면서 이대로 내일을 맞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살면서 죽음에 대한 초연함이 함께 존재했다.

천재가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생의 애처로움을 밝고 다양하게 변화하는 멜로디로 극복한 천재 중의 천재 그가 바로 모차르트인 것이다.

# 따뜻한 오렌지색 모짜르트 생가

찰츠부르크 대성당의 모차르트 동상.

'게트라이트 거리'의 명소 모차르트 생가.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가 1756년 1월 27일에 태어난 곳인 '모차르트 생가'는 누가 보아도 건물이 눈에 확 드러나는 외관을 가지고 있다. 잘 생긴 외모만큼이나 떡 벌어진 어깨와 오밀조밀 함께 살아가는 주변의 다정한 건물들과의 조화로 평범한 일상속 건물인 듯 더욱 인작적인 면모가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국제 모차르트 재단'은 1880년 6월 15일에 게트라이트 9번지의 이 생가를 박물관으로 만들어, 지난 수년 동안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수리하면서 전세계의 관광객들로부터 사랑받는 관광지가 되었다.

이 집에서 모차르트 가족은 1773년까지 살다가 미라벨 정원 근처에 있는 '마카르트광장 8번지'로 이사했으며 그 후 이곳이 '모차르트 박물관'이 되었다고 한다.

모차르트 생가 1층에 자리잡고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

외형상으로만 보는 '모차르트' 생가는 따뜻한 오렌지 색으로 외관이 정돈되어 있고 맨 아래층에 자리 잡은 아이스크림 가게가 왠지 '모차르트'의 어린시절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도 이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었다면 음악을 창작하면서 머리를 식히느라 '모차르트'가 꽤 많이 즐겨 먹었을 것 같은 상상을 해본다.

이곳에서 모차르트가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하니 그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착각마저 일었다. 생가와 같이 찍는 사진은 마치 '모차르트'와 함께 찍는 기분이어서 그의 체온까지 밖으로 나와 즐거운 한 때를 즐기듯 신이 났다.

모차르트 가족들은 26년 동안 이 건물의 3층에 살았으며 "Hagenauer House"라는 이름이 건물 목에 걸려 있었는데 이것은 건물 소유주인 모차르트의 친구인 'Johann Lorenz Hagenauer'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생가 내부에는 부엌, 작은 침실, 거실 그리고 공부방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이 역사적인 방들에는 모차르트의 친필이 담긴 문서들, 서류들, 유품들 그리고 가족들의 초상화 등이 우리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었다.

세기의 음악들을 탄생시킨 장본인인 역사적인 악기들로는 모차르트 콘서트 피아노, 클라비코드, 모차르트의 콘서트 바이올린, 어린 시절의 바이올린 그리고 비올라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곳은 목표가 흔들릴 때 와보면 많이 자극받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천재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것을 '모차르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250년이 넘도록 세계적인 음악가 '모차르트'의 음악이 더욱 더 감동을 주는 이유는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 '칠츠부르크'에서 태어났기 때문인 것 같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절대 실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 게트라이트 거리의 보석같은 간판들

모짜르트 생가를 만나 보기 위해 찾았던 게트라이트 거리. 중세와 현대의 모든 것이 어우러져 있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거리이다. 교회당으로부터 시작해서 모차르트 생가까지 숱한 간판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저마다의 몸에 맞는 옷들을 차려입고 사람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다.

'찰츠부르크' 구시가지에 있는 이곳은 '찰츠부르크'의 위대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보행자 전용 거리로 빈의 중심지 1구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고도 중요한 쇼핑가라고 한다.

대성당 근처의 건물들

특히 이 거리에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브랜드 '스와로브스키', '프라이 빌레' 매장을 비롯해 기념품 전문 매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유명 카페 등 수많은 상점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곳곳에 거리 공연자들로 붐비는 흥미진진한 곳으로, 국립오페라 극장에서 북쪽으로 뻗어나가 '성 슈테판 대성당'까지 이어진다.

이곳의 간판은 고기 모양이 걸린 어물전, 별이 그려져 금을 나타낸 호텔 간판, 여러 개의 꽃으로 빙 둘러 쌓아 행복한 삶을 나타내는 듯한 은행 간판, 러블리한 긴 꽃모양의 카페, 약유발과 유봉과 헤르메스 지팡이로 나타낸 세계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약국의 심볼마크로 이루어진 약국 간판 등이 거리를 온통 화려하게 물들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고 칭송받고 있는 이곳은 처음에는 문맹인을 위해 상점 간판에 판매하는 물건을 새기던 관습이 아름다운 철제 장식의 간판으로 발전해 지금의 화려한 거리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그 '시작은 미비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을 실감이라도 하듯 이 거리의 재탄생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들이 모여있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작은 따뜻함으로 시작한 이곳 사람들의 배려와 아름다운 마음씨가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끄는 중심가가 되었다는 것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참다운 성공은 나 혼자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꿈과 함께 가는 것이라는 진실 앞에서 여행이 주는 가르침을 또 배운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살아있는 지혜를 가르쳐 주었다.

여행을 하면서 '함께'라는 말과 '우리'라는 말이 안겨다주는 메시지에서 우리들 몸을 이루는 미세한 세포들 하나에까지 깨달음의 전율이 회오리처럼 불어 닥쳤다. '함께하는 일은 힘이 세다'는 것과 '우리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할 수 있는 마음들이 모인 최고경영자의 인격체가 모인 집단'이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는 값진 시간이었다.

이곳에 온 모든 사람들이 간판과 거리와의 조화로움에 도취되어 간판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동화되기에 바빴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 보았지만 단연 세계 제1의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대는 꼭 화려함이라는 단편적인 이유만 가지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간판 하나가 거리를 의미있고 쓸모있게 바꾸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커다란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여행 체험이 가져다준 살아있는 지혜인 것이다.

여행 오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는 우리 두 모녀의 가슴속에 '여행의 꿈'이 현실로 자리매김하면서 점점 벅차오르는 우리들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꿈은 똑똑한 뇌가 아닌 성실한 두 발로 평생 키워나가는 것'이라는 산 명제 앞에서 오늘도 꿈을 향해 묵묵히 전진하려한다. 또한 '꿈은 성공이 아니라 성장이며 성공은 내 꿈을 만들어 가는 도중에 잠시 손에 쥐는 트로피'라는 것을 깨닫는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여행은 성공을 위한 깊은 여정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도 여행이 가르쳐 주는 울림으로 울려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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