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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설영의 세계여행 도전기 - 크루즈로 떠나는 아프리카Ⅰ

이름만으로도 감성을 자극시키는 촉촉한 도시 '카사블랑카'

  • 웹출고시간2013.03.17 18:23:0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 교차로 모로코. 난생 처음 가보는 아프리카는 내 심장 박동소리마저 둔탁하게 만들었고, 첫사랑을 만나 듯 가슴이 설레었다.

모로코는 아프리카 북서단에 있는 입헌군주국가로 1830년 프랑스령이 되어 1912년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보호령으로 분할, 1956년 3월 프랑스로부터 독립, 4월에 에스파냐가 보호령의 지배권을 포기하여 왕국이 발족되었다고 한다.

또한 3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 북아프리카의 문화 중심지, 경제 발전의 환경 보존, 프랑스와 스페인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왕국, 현대와의 전통 계승 사이에서 고민하는 개발도상국이라는 수많은 수식어가 공존하는 나라이다.

아프리카에 속해 있으면서도 지중해를 통해 유럽과 맞닿아 있는 모로코는 유럽색이 짙은 국가이다. 유럽인가 하면 황량한 사막과 오아시스가 펼쳐지고, 미로 같은 시가지의 골목길 사이로 화려하고 웅장한 이슬람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다양하지만 어느 하나 이색적이지 않은 곳이 없는 곳이라고 한다.

'알헤시라스'로 이동하는 유람선에 우리들 기대에 찬 마음을 실었다. 유람선은 지브롤타 해협을 건너 아프리카 북부의 항구도시인 탕헤르가 목적지이다. 유람선 안에 모인 세계 사람들은 저마다 가지고 온 서로 다른 목적들을 향해 몸과 마음을 분주히 움직였다.

배를 타고 가면서 가이드는 우리나라와 모로코간의 외교관계에 대한 유익한 이야기로 지루함을 달래주었다. 1962년 7월 6일에 우리나라와 모로코와의 외교관계가 수립되었고, 같은 해 9월에 주 모로코 한국 대사관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대외적으로 비동맹 중립정책을 표방함에도 불구하고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지지하여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갑자기 모로코가 남이 아닌 형제의 나라처럼 느껴졌다.

옆자리에 앉은 흑인 꼬마 아이와 아저씨가 마치 이웃에 사는 동네 사람들처럼 친근하기만 하였다. 그 때 갑자기 아기 울음소리가 작렬히 울려 퍼졌다. 배 안은 온통 아기울음 소리 혼자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한 눈에 받았다.

#흑백 영화의 낭만 '카사블랑카'

카사블랑카 해변

아프리카와 유럽의 접점인 항만 도시 카사블랑카. 카사블랑카는 스페인어로 '하얀 집'이라는 뜻으로 인구 300여만의 도시로 모로코 최대의 도시이다. 모로코의 수도는 '리바트'지만 이는 정치적 수도이고 경제적 수도는 '카사블랑카'라 할 수 있다.

대서양 연안에 자리잡은 카사블랑카는 북쪽에 수도 '리바트'가 있지만 관공소나 기업체 등이 몰려있는 행정 중심가인 카사블랑카야말로 모로코를 대표하는 관광도시이자 경제도시이다. 야자수가 늘어선 시가지들과 대형 화물선과 여객선 그리고 작은 고깃배들이 어우러져 한 식구처럼 사이좋게 오손도선 살아가는 모습에서 친근한 형제 나라라는 짙은 인상마저 불러일으켰다.

1941년경 카사블랑카의 한 남자의 옛사랑에 대한 미련과 그를 위한 희생을 그린 미국 영화로 더욱 잘 알려진 영화 '카사블랑카'로 우리들에게 더 친근한 도시이기도 하다. 차에서 듣는 가이드님의 실감나는 카사블랑카 이야기는 피곤한 잠도 물리치고, 마구 치솟는 우리들의 졸음도 뒤로한 체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북아프리카 지중해의 카사블랑카에서 이념을 초월한 사랑을 나누는 연인이 등장한다. 중동에 위치한 요지,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는 전란을 피하여 미국으로 가려는 사람들의 기항지로 붐빈다. 이곳에서 술집을 경영하는 미국인 '릭'은 이런 와중에서 많은 돈을 번 유지이다.

어느 날 밤, 반나치의 리더인 '라즐로'와 그의 아내 '일리자'가 '릭'의 술집으로 찾아온다. 이들 부부는 '릭'에게 여권을 부탁하러 온 참인데 '일리자'를 본 '릭'은 깜짝 놀란다. 꿈같던 파리 시절, '릭'과 '일리자'는 과거에 사랑하던 사이였다. 이루지 못한 옛사랑을 위해 '일리자'를 붙잡아 두고픈 생각이 온몸을 휘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릭'은 처음에 냉대하게 쫓기던 몸인 '라즐로'에게 '일리자'를 위하여 이들을 도울 결심을 한다.

이윽고 이별의 시간은 오고 온갖 착찹한 마음을 뒤로하고 '릭'과 '일리자'는 서로 응시한 체 이별을 고한다. 사라지는 비행기를 한동안 떠나지 못하고 바라보는 '릭'의 사랑에 다시금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랑이란 그 사람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 더 행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지금보다 더 많이 웃게 하는 것, 아무도 없다고 생각할 때 곁에 있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의 영화가 가져다준 메시지가 여행을 하는 내내 잊혀지질 않았다.

여행을 하면서도 영화나 음악 등으로 더 유명해진 곳을 접할 때마다 다시금 경직되어 있던 삶의 방정식이 술술 풀리듯 내게 정답을 안겨 준다. 여행은 나를 치료하고 성장시켜주는 친절한 주치의다.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 가운데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이 낭만적인 전쟁 멜로드라마는 1942년에 촬영하였는데 모든 것은 헐리우드의 스튜디오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곳 카사블랑카에는 영화 촬영과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허탈감마저 일어났다. 그러나 이 영화 한편으로 유명세를 탄 이곳 '카사블랑카'는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아마도 신이 내린 선물 같은 지명임에 틀림없다.

영화에 대한 낭만 때문인지 머릿속에는 '카사블랑카'노래가 자꾸 흘러 나왔다. 촬영 되지도 않은 도시에서 만난 카사블랑카가 세계인의 가슴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마도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시키는 촉촉한 매력의 도시라 그런 것은 아닐까!

# 카사블랑카의 상징 모하메드 5세 광장

모하메드 5세 광장

카사블랑카의 중심 모하메드 5세 광장. 아프리카 모로코에 도착하여 가장 처음 만난 곳이바로 이 곳이다. 이 광장은 카사블랑카의 도시 중심에 있는 광장으로 여기서부터 간선 도로가 시작되어 뻗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카사블랑카 시내관광이나 쇼핑의 기점이 된다고 한다.

모하메드 5세는 1912년에 태어나 1961년에 생을 마감한 모로코 국부로서 현 국왕의 조부이다. 그에 대해서 앞으로 남은 일정에 다시 거론되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도 아프리카의 상징적인 인물로 믿어진다.

'지금부터 하나씩 궁금증을 파헤쳐 보리라!' 생각하니 갑자기 눈도 커지고, 귀도 커지고, 마음도 커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처음에 유럽의 유적들과는 차별화 된 그들만의 모습에 놀랐고, 다른 대륙에 와서 느끼는 낯선 이국적임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감탄을 하는 동안에도 나의 눈과 손과 가슴은 뛰고 있었으며, 혹시라도 하나라도 놓칠까 잔뜩 긴장한 내 표정에 쏴한 냉기까지 감돌았다.

모하메드 광장

광장에는 여가를 즐기는 시민들과 광광객들로 가득 차 있었으며 중앙에 분수대를 기점으로 공을 차며 노는 아이들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들 그리고 수많은 비둘기들과 대화를 하러 나온 사람들까지 모여 시간을 맛있게 요리하고 있다. 그들만의 비법과 그들만의 향신료를 가미하여 색다르게 펼치는 레시피로 광장이라는 식탁에 모여 앉아 파티를 하고 있다. 아마도 이곳은 카사블랑카 시민들이 즐겨 찾는 도심 속의 가장 크고 맛있는 휴양지임에 틀림없었다.

모하메드 5세 광장의 '핫산 메스키타'. 100만명 정도가 예배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광장 근처에 있는 또 다른 볼거리, '핫산 메스키타'로의 이동이다. 아프리카에서 제일 큰 규모의 모스크로서 검은 대륙 안의 이슬람사원이라고 한다. 모로코 카사블랑카의 대서양 해안을 굽어보며 서 있으며 이곳에서 약 100만명 정도가 예배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였다.

광장 건너편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는 가이드의 의도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의 건물 두 개를 발견하였다. 이곳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이슬람 양식의 건물들이 눈길을 끄는데 법원과 시청사가 바로 그것이다. 흰색과 고동색 딱 두 가지로 외벽을 칠해 놓은 그들의 단순하고도 세련된 감각을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새로운 곳에 대한 도전은 우리를 설레게 하고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늘 보던 그런 평범함이 아니라 새롭게 다가오는 문화와 삶이 또 다른 인생 시작을 알리 듯 가슴 가득 부풀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행은 그렇게 우리들의 삶을 세탁해 주고, 새 옷도 입혀주고, 나태해지려는 자아를 일으켜 세우는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호기심과 배움을 늦추지 않는 사람은 늘 청춘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여행을 통해 죽을 때까지 청춘시기로 살 수 있는 희망을 꿈꾼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광장 주변에는 현대식 빌딩들과 기념품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상점들을 일일이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밖에서 본 건물들 모습이 아프리카의 파리를 연상케 할 만큼 많은 부분이 닮아 있었다.

처음 본 모로코의 모습 속에서 앞으로 이어질 내용들에 기대가 된다. 빨리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우리를 더 파릇파릇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힘이 솟는다. 기대가 밀려온다. 예상치 못한 스릴과 서스펜스가 우리를 도전가로 만들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본다.

# 모로코 최대의 걸작 하산탑

모로코의 수도 리바트. 정식 명칭은 '리바트엘파티프'이다. 대서양에 면한 '카사블랑카' 다음 가는 대도시이다. '카사블랑카'의 북동쪽, 대서양 연안의 '부레그레그강' 하구에 있으며, 북아프리카에서 인구 10만명 이상의 도시 중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알려져 있다.

고대 로마의 식민 도시였으나, 현재의 시가는 10-11세기에 이슬람교도인 베르베르인이 이단자를 수용하기 위하여 건설한 것이 기원이다.

리바트 하산탑

리바트에서 가장 사랑받는 하산탑은 한 변이 16m인 정사각형으로 높이 44m까지 올라가다 중단되었다. 지금도 탑의 남쪽에는 300개 이상의 돌기둥이 남아 있다. 완성 되었다면 아마 아프리카 최대의 모스크가 되었을 것이다.

하산탑 성벽

이곳의 특이한 점은 하산탑 주변의 붉은 빛의 성벽에 뚫어놓은 바람 구멍이다. 그곳에 비둘기들이 집을 짓고 들락거리면서 안락한 집터를 차지하고 있다. 비둘기들과 사람들이 성벽 주변에 자리를 잡고서 하나가 되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에서 함께 공존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하산탑과 돌기둥

하산탑은 모로코의 수도 리바트의 기념비적인 탑으로 베르베르 왕조인 '야크브 알만수르'가 1195년에 계획했던 장대한 모스크의 첨탑이라고 한다. 이 탑은 1199년 그가 죽음으로써 공사가 중단된 체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하산탑은 정갈하면서도 깔끔한 외모 덕분에 눈과 발걸음은 우리들을 그곳에 묶어 놓고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유럽에서의 화려하고 웅장한 것과는 전혀 다른 얼굴,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있다. 분위기도 달라서 곧 이곳의 매력에 허우적거리며 역시 아프리카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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