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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소풍길 - 연재를 마치며

꽃처럼, 나비처럼, 바람처럼, 햇살처럼

  • 웹출고시간2011.12.29 19:04:5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 강호생
나는 최근 몇 해 동안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바람의 서슬이 빌딩사이에서 부딪히는 낯선 땅, 낯선 도시를 숲속의 보물 찾듯 헤매고 다녔다.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에서부터 뒷골목의 아기자기한 이야기와 삶과 문화와 생태와 디자인과 심지어는 그들의 생리적인 근원까지 속속들이 들춰보고 싶었다.

때로는 여기가 어디인지, 왜 내가 방랑자처럼 낯선 도시를 떠돌아야 하는지 치매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가 세상탐구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정처 없고 아리송하며 몽매한 상태에서 엉거주춤 사는 것 보다 명확한 목표를 갖고 나만의 자존을 갈구했기 때문이다. 해외 각국을 순례할 때는 가슴이 시리고 정신까지 혼미해져 견딜 수 없었다. 모든 나라가 그러한 건 아니지만 필자가 방문한 대부분의 도시는 전통과 현대, 문화와 예술, 삶과 디자인, 유희와 실용, 인공과 자연이 어찌 이리 조화로울 수 있는 것인지 부럽기도 하고 배가 아프기까지 해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시작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라도 제대로 알고 이해하며 새로운 문화가치를 만들어 보자는 각오로 지난 1년 동안 충청북도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즐거운 소풍길'이라는 테마의 연재를 시작할 때 나는 이렇게 취지를 설명했다. "즐거운 소풍길을 만들기 위한 생각의 탄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충북 구석구석의 속살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 나갈 것이다. 가슴 시리고 아팠던 추억과 아름답고 소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절절이 담을 것이다. 여기에 맑고 향기로운 이 땅의 사계와 골목길 풍경과 멋과 맛을 소달구지에 가득 실어 나를 것이다." 연재를 마치고 나니 시간에 쫓기고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나의 능력에 좌절하면서 처음의 열정과 소신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부끄럽고 난망해 독자 여러분께 죄송하다. 그렇지만 충북에도 참으로 가치 있는 문화와 생태, 역사와 삶의 이야기가 오롯이 남아있음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변주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북풍한설에도 기개를 자랑하는 상당산성

ⓒ 홍대기
성곽의 이끼 속에서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상당산성, 은빛 물결 호사스러운 풍경을 품고 있는 대청호, 담배를 생산하던 공장이 문화를 생산하고 문화를 수출하는 곳으로 변신한 옛 청주연초제조창, 오방색으로 물들어 눈부시게 아름다운 천년사찰 공림사, 단재의 고결한 삶을 가슴에 품을 수 있는 귀래리, 알싸한 물맛과 세종대왕의 스토리가 살아있는 초정약수, 삿된 마음 버리고 세상과 소통하려는 울림으로 가득한 곳 흥덕사지, 역사와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화양계곡, 도심속에서 만나는 아날로그의 세계 수암골, 번잡한 마음을 강물에 실어 보내고 벚꽃 향기로움으로 여백을 채우는 무심천, 봄빛 머금은 천년의 종이를 만드는 곳 벌랏마을, 물길따라 15리 생명의 숲을 거닐 수 있는 산막이 옛길, 초록의 숲 향기를 마시는 곳 미동산수목원, 사색과 치유와 역사의 공간인 법주사, 문명의 틈새에 자리잡은 천혜의 풍광 부강, 자전거를 타고 논길 밭길 달리면 좋은 가덕, 우리의 열정으로 지은 99칸 한옥 선병국 가옥, 천년의 거리 청춘의 거리 성안길과 중앙공원, 자연이 준 풍요로움으로 삶의 빈 자리를 채우는 곳 오창, 과거와 미래의 플랫폼 오송, 아티스트 33인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진천공예마을 등을 온 몸으로 품었다.

오창 호숫가와 바람에 나부끼는 버들강아지

ⓒ 홍대기
어디 이 뿐인가. 숲의 방랑자 강변의 시인이 되고픈 곳 옥천 향수 30리, 해탈에 이르는 길은 느리고 질김을 일러주는 난계와 영국사, 자연과 내가 하나되는 물한계곡과 도마령, 천년의 다리 농다리, 장인의 혼으로 울리는 천년의 소리를 만날 수 있는 종박물관, 마음으로 듣고 붓끝으로 전하는 운보의 집, 인심과 추억을 가득 안고 오는 곳 증평 장뜰시장,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철박물관, 3대째 술익는 마을 덕산, 충북의 역사를 품은 곳 국립청주박물관, 땀으로 이어가는 전통의 숨결 방곡도예촌, 울긋불긋 소백산을 품은 절 구인사, 한반도의 중심 중앙탑, 강따라 흐르는 오솔길 비내길, 하늘재로 이어지는 역사의 길 중원미륵리사지, 들뜬 근심 다 지우는 제천 의림지와 박달재 등을 자박자박 걷고 또 걸었다. 화가 강호생님, 사진작가 홍대기님이 <즐거운 소풍길>을 함께 했기에 외롭지 않았다. 두 분의 아름다운 동행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2011년 신묘년이 저물고 있다. 시간에는 본래 구분이 없는데, 인간에 의해 쪼개진 12개의 조각 맨 끝자락에 서면 왠지 심란하고 사색에 젖는다. 나는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그리고 그간의 노정이 무익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기도 한다. 때로는 이럴 순 없다며 외치고 발버둥 쳐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마음의 상처만 깊어갈 뿐이다. 이유 없이 열병에 시달리고 걸신들린 것처럼 두리번거려도 그 무엇 하나, 그 누구 하나 내게 손 내밀지 않는다. 아프고, 외롭고, 슬프고, 어둡고, 가난함에 몸부림쳐 보지만 사회적 자아만이 하얗고 냉랭할 뿐이다. 그래, 삶이란 이런 것이다.

그러니 아프다고 눈물 흘리지 마라. 아픔을 겪지 않고 이 땅에 태어난 생명이 있을까. 얼었던 대지위에 초록 새싹이 돋고 있다. 아파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눈물 한 번 보이지 않고 하늘 향해 솟아오르고 꽃을 피우지 않던가. 살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자잘한 아픔을 겪고 견디며 이겨내는 과정이니 아플수록 더욱 단단하고 알곡진 열매로 남아야 한다.

슬프다고 얼굴 찌푸리지 마라. 사랑해서 슬프고, 헤어져서 슬프고, 다시 만나 정을 나누면서 가슴 시리도록 슬픈 게 인생이 아니던가. 비바람 불고 눈보라 치며 햇살 부서지는 태양 아래서도 우리는 아파하고 슬퍼하지 않았던가. 슬프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아니, 생명이 아니다. 그러니 슬프다고 눈물 흘리고 얼굴 찌푸리지 마라. 때로는 눈물 흘리는 것도 사치다. 그 시간에 자신만의 내밀하고 강인의 힘을 만들어야 한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화양동의 계곡물 쏟아지는 모습

ⓒ 홍대기
춥다고, 외롭다고 움츠리지 마라. 외로움 없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북풍한설을 딛고 일어선 복수초는 기나긴 시간을 추위와 고독을 품으며 일어서지 않았던가. 그러하니 외로움은 나의 지적 자양분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홀씨가 아니던가. 차면 찰수록 정신은 더욱 맑고 향기로운 법, 그러니 추울수록, 외로울수록 자신만의 DNA를 만들어야 한다.

어둡다고 고민하지 마라.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고,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다. 어두움 없는 밝음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햇살과 바람은 단 한 번도 누구의 편에 서는 법이 없으니 내가 있는 이 자리를 어둡고 누추하다고 생각 말라. 맨홀뚜껑을 비집고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습하고 누추한 곳에서 희망의 씨앗을 품어보자.

부족하다고 아쉬어 마라. 어차피 인생이라는 그릇은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법. 나만의 그릇에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나만의 바다와 나만의 숲을 만들면 그것이 인생이 아니고 무엇이던가. 때로는 넘쳐서 흘러내리는 꽉 찬 인생보다는 부족하고 헐렁하더라도 오달지고 마뜩한 나만의 색감을 만들면 좋겠다.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아는 순간 행복이 밀려오지 않던가.

가난하다고 부끄러워 마라. 인생은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법. 맨발이면 또 어떠한가. 꿈을 꾸고 꿈을 일구며 꿈이 영그는 그날까지 달려가면 되고 텅 빈 충만을 노래하면 되지 않는가. 아픔 없이 피는 꽃이 어디 있겠는가.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어디 있으랴. 순간 순간을 열심히 살며 사랑하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꽃봉우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공림사의 한유로운 풍경

ⓒ 홍대기
들판의 풀잎들도 눈부신 햇살과 바람과 눈보라에 온 몸이 부서지는 아픔을 겪는다. 아프고 슬프고 외롭고 어두운 길, 이따금씩 나의 존재가 작고 왜소해 보일지라도 이 모든 것을 품을 때 희망의 뱃고동이 울리지 않을까. 어차피 삶이란 부족하고 헐렁한 길을 하나 둘 채워가며 사랑을 주고받는 것. 지금 창밖에는 찬바람이 거세고 눈꽃송이 내 마음 속으로 밀려오고 있다. 그 속에서 누군가를 위해 따뜻한 한 줌의 불쏘시개가 돼 주면 또 어떠한가.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되고, 길을 걷다 힘들면 잠시 앉아 쉬었다 가면 되고, 혼자가기 외로우면 여럿이 함께 어깨동무 하면 되고, 어둠이 밀려올 때는 작은 등대나 촛불 하나 켜면 되지 않던가. 그 때부터 비로소 새로운 길이 열리고, 새로운 희망이 되고, 새로운 생명이 싹트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러해야 한다. 꽃처럼, 나비처럼, 바람처럼, 햇살처럼 아름다움으로 물결치는 삶이어야 한다.

글 변광섭(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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