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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소풍길 - 중원미륵리사지와 하늘재

고려초기 석굴사원터에 10m 넘는 석불 '오롯이'
월악산 하늘재로 이어지는 역사의 오솔길 일품

  • 웹출고시간2011.12.08 19:06:3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월악산 미륵리사지와 하늘재가 있는 월악산 풍경. 바위를 뚫고 솟아오른 소나무 숲을 보며 생명의 질김과 경외감을 젖는다.

ⓒ 홍대기
눈발이라도 날리려는지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다. 괴산을 지나 수안보온천을 넘어 하늘재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이러다가 해 지고 눈보라가 밀려오면 내 마음은 시리고 아플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처음부터 마음이 급했던 것은 아니었다.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사색과 명상을 즐길 만한 산책로를 찾아가려 했다. 이왕 떠난 여행, 역사의 오솔길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길이었다. 단풍잎 지는 소슬한 바람, 저잣거리의 사람냄새보다 생명의 숲으로 가득하고 신화와 전설이 묻어있는 곳에서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미륵리의 석불입상은 생얼미인이다. 석공의 기예와 불자의 염원과 자연의 순결함을 모두 품고 있다.

ⓒ 홍대기
그 길이 멀고 험할 줄은 몰랐다. 깊고 느리며, 낮고 두터운 산길과 들길을 끝없이 달려야 했다. 칼바람에 호수는 쪽빛으로 물결치고 낙엽은 하릴없이 흩날리고 있었다. 이따금씩 부딪히는 사람들도 발걸음이 부산했다. 겨울 초입의 하늘재 가늘 길은 이처럼 어렵고 난망했다. 성질 급한 사람들은 핸들을 되돌릴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중원미륵리사지에 도달했다. 심드렁하게 돌계단을 밟으며 오르는 순간 먼발치서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반기는 이가 있었다. 10m가 넘는 석불이다. 전국에 수많은 석불이 있는데 어느 것 하나 똑 같은 게 없다. 경주 약수골의 마애여래입상은 마치 바위 위에 옷을 걸쳐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경주 남산의 열암곡 석조여래좌상은 깨달음에 이르는 순간을 맑은 얼굴과 아래로 늘어진 손바닥으로 표현하고 있다. 서산 용현리의 마애삼존불 본존상은 얼굴과 손가락의 표정이 살아있는 듯해 마치 주술이라도 외는 것 같으며 양산 미타암의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은 곡선의 미를 통해 부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미륵리의 석불입상은 낮은 육계와 나발, 초승달 같은 긴 눈썹, 눈을 살짝 감고 깊은 사색에 젖어있는 표정과 두터운 입술, 그리고 두 손으로 가슴을 따뜻하게 품고 있는 듯하다. 관용과 베풂과 지혜와 깨달음을 모두 갖고 있는 것 같다. 투덜거리는 내게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어서 오라, 쉬어 가라, 비우고 가라 하신다. 사람들은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한다. 눈발이 날릴 것 같더니 이내 햇살이 눈부시다. 햇살은 석불과 흔들리는 낙엽과 오가는 사람들의 입가에도 난반사됐다. 잠시라도 세속의 찌든 때를 벗을 수 있으니 이만한 호사도 드물 것이다.

ⓒ 강호생
중원 미륵리사지는 고려 초기의 석굴사원터다. 월악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절 터는 온통 크고 작은 바위와 돌들이 짝짓기를 하고 있다. 석불입상을 향해 오르는 길과 계곡 모두 돌계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높이 6m에 달하는 오층석탑은 인공의 미를 발견할 수 없다. 자연석을 모아 짜깁기 한 것처럼 엉성하다. 그렇지만 그 엉성함 속에서 자연의 미가 살아 숨쉬고 있고 투박하지만 멋스러움이 돋보인다. 미륵리사지는 그러하다. 모든 것이 사람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겠지만 석공의 기예와 불자의 염원과 자연의 순결함을 모두 품고 있다. 주변의 크고 작은 숲들과 조화로움을 꾀하고 있으니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능 징검다리가 아닐까.

절터 구경을 한 바퀴 하고 내려오는데 할머니가 나그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더덕, 고사리, 호박말랭이 등을 팔고 있다. 옆에서는 자글자글 검게 그을린 할아버지가 칡즙을 직접 갈아서 한 잔씩 판다. 더덕 한 더미 손에 취고 칡즙 한잔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미륵리사지만 보고 하산하면 안된다. 월악산 하늘재로 이어지는 역사의 길, 생명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하늘재는 세속의 땅에서 하늘의 세계로 가는 미지의 길이다. 그래서 오르는 길은 더욱 더디고 신령스러우며 멋스럽다. 봄꽃과 여름의 녹음, 그리고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눈발이 오가는 사람 마음에 잔잔하게 감동으로 밀려온다. 산은 높을수록 우러러보게 마련인데 이곳은 이름 그대로 하늘재이기 때문에 끝없이 오르고, 끝없이 우러르며, 끝없이 존경하고 경외의 대상이다.

하늘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다. 충주 미륵리와 문경 관음리를 이어주는 고갯길인데 1850여 년 전인 156년 신라 제8대 이달라왕이 북진을 위해 개척한 길이다. 그 뒤로 신라가 한강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교두보 역할을 했고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하는 전략 거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이 몽진할 때도, 신라 망국의 한을 품고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금강산으로 향할 때도 이 고개를 이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청운의 뜻을 품고 서울 과거길에 오른 영남 선비들이 많이 이용하기도 했다. 하늘재를 사이에 두고 있는 미륵리와 관음리의 지명도 흥미롭다. 미륵리는 '내세'를, 관음리는 '현세'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갈림길이 하늘재인 것이다. 게다가 백두대간을 넘는 이 땅의 중심산맥이자 요동치는 역사의 한 자락에 있는 고갯길이다.

이곳이 사계절 세상 사람들의 오솔길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이처럼 역사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는 것 외에도 숲과 계곡과 하늘이 맞닿아 있는 천혜의 조건 때문이기도 하다. 전나무와 굴참나무와 소나무 숲이 빼곡하게 늘어져 있다. 햇살과 바람과 구름이 조잘조잘 수다를 떤다. 햇살이 나뭇잎에 걸리더니 이내 숲속으로 달려가 바람과 신나는 짝짓기를 한다. 정지된 듯 조용하던 숲속에 일순간 햇살이 난반사되고 바람소리로 요란스럽다. 송계계곡의 맑은 물에도 햇살이 부서지고 자잘자잘 소란스럽다. 산새들은 숲과 계곡을 넘나들며 까불거리고 숲속에 있는 악동들의 잔치가 이어진다. 생명의 숲이자 생태계의 보고寶庫다. 구름은 지근거리에서 길 벗이 되어준다. 말없이 따라오고 말없이 품어주고 말없이 웃어준다. 욕망의 옷을 벗고 그냥 그렇게 살라 한다. 한 줌의 흙처럼, 한 그루 나무처럼, 한 떨기 꽃처럼 그렇게 살라 한다.

1시간 넘게 걸으면 하늘재 기념비가 눈에 들어오는데 정상이다. 발밑에는 월악산의 풍광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눈 위로는 푸른 하늘이 끝없이 열려 있다. 마치 온 몸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신비감에 가슴 설렌다. 숲속이 온통 붉은 기운으로 가득하다. 흩날리는 단풍은 나그네의 발끝에도, 계곡물에도, 돌 틈 사이에도 가득하다. 나그네 마음까지 붉게 타오르고 있다. 이 길도 머잖아 하얀 옷으로 갈아입을 것이다. 북풍한설을 온 몸으로 품으며 새로운 길, 희망의 길을 자박자박 걸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미륵리사지와 하늘재에서 마음의 때를 벗겨냈다면 하산하는 길에 수안보온천을 들러야 한다. 몸의 때를 벗기고 누적된 피로를 말끔히 씻겨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이 함께 1박을 한다면 호텔보다 주변의 펜션을 강추하고 싶다. 음식도 해 먹고 장기자랑을 하면 좋겠다. 촘촘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사랑노래를 부르면 또 어떠한가. 한 해를 보내면서 들뜬 근심 다 지우며 비루한 마음 달래고 싶다면 하늘재로 발걸음을 향하라.

글 변광섭(에세이스트,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그림 강호생(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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