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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소풍길 - 단양 구인사

울긋불긋 소백산 품은 절…기도 도량 유명
100여명이 열흘 걸려 1만여 포기 김장 담가

  • 웹출고시간2011.11.17 19:37:1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구인사는 온통 붉은 물결로 가득하다. 사찰도 붉고 숲과 계곡 붉고 기도 도량에 여념없는 사람들의 마음도 붉다.

영겁(永劫)의 시간, 천년의 세월이 지났다. 올해가 고려대장경이 조성된 지 천년이 되는 해라는 뜻이다. 어느 시대든 당대의 이야기와 기억을 담기 위한 저장고가 있었다. 문자와 활자가 없던 시대에도 그들만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그 무엇을 담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선사시대에 그려진것으로 유추되는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10개의 바위에 각종 동물과 사람, 배, 작살 등이 담겨져 있다. 이는 사냥과 풍년에 대한 그들만의 염원을 담고 있으며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단양 구인사

ⓒ 홍대기
아름다움을 탐하고 보다 실용적이며 가치있는 삶을 기록하고 싶은 인간은 이후 글자와 종이를 만들었으며 목판활자에 이어 금속활자를 만들면서 정보혁명의 신기원을 기록했다. 근대에 와서는 필름과 디지털과 컴퓨터 등이 수많은 이야기를 담는 그릇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인간의 창조적 역량과 진화는 쉬이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대장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담는 그릇이다. 장(藏)은 간직하다, 저장하다 등의 의미이고 경(經)은 실이나 끈을 가리키는 수트라를 번역한 것으로 '부처님의 말씀'이란 뜻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저장고가 곧 대장경인 것이다. 입으로만 전해지던 부처님의 말씀을 목판인쇄술로 만들었고 세월이 지나 1377년에는 청주에서 금속활자로 '직지'라는 책을 새롭게 선보이게 되었다. 목판인쇄술보다 훨씬 정교한 기술과 혁신적인 역량을 보이게 된 것이다.

팔만대장경을 전부 쌓으면 높이 2744m로 백두산보다 높다. 길이로 치면 60km에 달하며 280톤의 무게에 5,200만자의 글자가 들어있고 다 읽으려면 30년이 걸린다. 이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는 1237년에 시작해 12년간 계속되었다. 동원된 연인원만 130만 명에 달한다. 목재를 뻘에 담그거나 소금물에 찌고 스님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써 내려가면 원본을 판목에 붙여 정성스레 새긴다. 판각이 끝난 경판은 교정을 거쳐 닥나무 껍질과 풀을 섞어 만든 종이로 인쇄를 한다. 이처럼 최고의 기술과 정성으로 만들었으니 영겁의 세월이 흘러도 흐트러짐 없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앞서 1011년에 고려초조대장경이 만들어졌다. 1232년 몽고의 침략으로 소실되면서 국내에는 300여 권이 남아있다.

직지는 또 어떠한가. 글자본을 제작하고 밀랍을 녹여 판형틀에 붓고 응고시켜 밀납판형을 만들었으며 그 위에 결정된 글자본을 뒤집어 붙였다. 이어 어미자를 만들고 밀납가지와 주형(거푸집)을 만들었으며 청동을 녹여 주형의 입에 쇳물을 붓고 쇳물이 식으면 단단해진 거푸집을 파내서 활자 가지쇠를 들어냈다. 그리고 쇠톱을 사용해 활자를 하나씩 떼어내 인쇄틀에 조판을 한 뒤 인쇄를 하기 시작했다. 인쇄용지는 닥나무 껍질을 베고, 찌고, 담그고, 짜고, 말리는 등 99번의 과정을 거쳐 100번째 장인의 손에서 나온다는 한지만을 사용했으며 금속에 잘 묻는 유연먹으로 애벌인쇄를 했다.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바스락, 바스락. 기와지붕에 수북이 쌓여있는 낙엽에서 살아있는 생명력을 느낀다.

누가 말했던가. 쉬운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어느 스님은 "먼 곳을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고,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살다보면 수많은 욕망의 덫과 유혹에 빠지겠지만 그 욕망을 잠재울 수 있는 내밀함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선(禪)"이라고 했다. 굳이 선을 이야기 하지 않아도 대장경이나 직지는 수많은 장인들의 땀과 기예와 열정과 창조정신이 있었기만 만들 수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최고의 가치를 이루고자 하는 염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의 삶이 아슬아슬하다. 지금 우리는 조상들이 이토록 찬연하고 훌륭한 가치를 물려준 창조 DNA를 원 없이 활용하고 있는지, 행여 비루하고 눅눅한 삶에 주저앉아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천년의 향기를 품고 그 길 위에 서보자. 나는 누구이며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그리하여 나의 삶의 긍극적인 목표는 무엇이며 어떤 그릇을 만들어야 하는지 코발트블루 가을 빛 앞에서 나긋한 걸음을 좇으며 고민하면 좋겠다. 천년의 지혜, 불멸의 향기를 위해서 말이다.

ⓒ 강호생
구인사는 단양군 영춘면 백자리 해발 600m의 고지에 위치한 천태종 총본산이다. 산 속에 대법당, 광명당, 사천왕문, 청동사천왕상 등 수십 개의 우람한 건물들과 불상이 들어서 있다. 사연 많은 중생들은 하루에도 수백 명, 수천 명이 이곳으로 몰려온다. 때 묻지 않은 대자연이 구인사를 품고 있기 때문에 회색도시의 삶에 찌들고 정신은 혼미하며 육체까지 허기진 사람들이 이른 새벽부터 모여들고 있다. 남루한 삶의 때를 벗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 위한 기도 도량으로 인기다. 구인사는 11월 한 달 겨울채비에 여념이 없다. 오늘은 김장배추 절이는 날이다. 1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여 배추를 다듬고 소금에 절이고 있었는데 1만여 포기를 담아야 하기 때문에 꼬박 열흘 걸린다고 한다. 차멀미 한다던 딸은 김장 담그는 진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난생 처음 보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구인사가 김장 담그는 날. 1만 여 포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장관이다

돌아오는 길에 산촌체험마을인 피화기 마을을 들렀다. 이곳 역시 가을채비가 한창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배추와 무를 뽑고 나르느라 낯선 손님은 안중에도 없다. 고구려 체험을 즐기려는 사람은 온달동굴과 온달오픈세트장을 투어하면 좋다. 이곳은 고구려와 신라가 치열한 영토전쟁을 벌이던 곳인데 온달산성을 비롯해 온달동굴, 테마공원이 있으며 온달오픈세트장은 태왕사신기, 연개소문, 일지매, 바람의 나라, 천추태후 등의 드라마 촬영지였다. 소백산의 싱그러운 향기와 소슬한 역사를 온 몸으로 품을 수 있는 곳이다.

글·사 진 / 변광섭(문화기획자,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그림 / 강호생(화가, 충북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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