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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소풍길 - 부용 강변길

붉게 물든 가을…한겨울 이겨낼 희망의 군불인가

  • 웹출고시간2011.12.15 18:19:5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금강에 찬란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낙엽이 지고 마른 가지만 앙상하다. 바람은 소슬하고 차다. 고개 숙인 수수대궁은 바람만 스쳐도 흐느끼며 바스락거린다. 이처럼 낙엽 지는 가을에는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상처받고 눈물겹다. 사람의 마음은 막막하거나 무심한데 분침을 따라가는 초침소리는 쉬지 않는다. 앙상한 가지에 세월의 서리만 하얗게 쌓여가고 내 마음은 끝끝내 허공을 맴돌고 있다.

따뜻한 커피나 그윽한 향의 차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일회용 컵이나 투명한 유리컵 대신 도자기로 만든 예쁜 잔을 하나 마련하고 싶은 때이기도 하다. 차의 맛과 향은 코와 입으로 느끼고, 눈으로는 찻잔의 우아한 디자인을 감상하는 것이다. 웰빙이니 슬로우푸드니 뭐니 해서 퍽들 다도에 관심이 많다.

초겨울에 마시는 차맛은 새롭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지내고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곱게 익은 국화차와 지난 여름 한낮에 따내 발효시킨 연꽃(연잎)차, 그리고 화창한 봄날에 어린 아이 속살 같은 작은 잎을 따낸 뒤 덖어서 잘 보관해 두었던 녹차를 꺼내 마시는 그 느낌은 한마디로 신비롭다. 찬바람이 불어와 만물이 생기를 되찾을 때 차 맛도 인생의 맛도 새롭고 멋있는 것이다. 국화는 산속 깊은 곳에서 자연에 기대어 흐드러지게 핀 것을 차로 만들면 으뜸이고 연꽃은 나흘 동안 피는데 이틀째 피어날 때의 향기가 절정이다. 녹차는 곡우穀雨 전에 아침이슬을 먹은 어린잎을 잘 덖은 게 일품이다.


찻잔의 종류도 가지각색이고 그 느낌 또한 천양지차다. 봄과 여름에는 백자가 산뜻해서 좋지만 가을과 겨울에는 분청사기나 갈색계통의 그릇이 포근하다. 말차가루를 거품 낸 뒤 마실 때는 다완 으뜸이고, 녹차를 마실 때는 여럿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며 마실 수 있는 다기세트가 좋은데 우리나라 장작가마의 투박함과 멋스러움을 따라갈 그릇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다도茶道는 맑음을 지키는 일이다. 회색빛 콘크리트 숲에서 일상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에게 깨어있는 정신을 갖게 하는 최고의 예술이자 퍼포먼스다. 다도는 또 상호간의 눈뜸開眼과 소통이다. 사람은 저마다 따로따로 자기 세계를 가꾸면서 공유하는 법인데 차를 대접하는 사람이나 대접받는 사람 모두 하나되는 순간이다. 말이 없어도 맛으로,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찻잔속의 미세한 울림으로 상대방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다도는 절제된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참으로 많은 말들을 쏟아낸다. 그 속에는 거짓과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한 자신의 이중성이 내포돼 있는데도 열심히 떠들고 바삐들 움직인다. 그렇지만 다도를 하는 순간만큼은 불필요한 것을 다 털어내고 나서 최소한의 꼭 있어야 될 행동과 말만 있을 뿐이다. 다도의 진정한 운치는 담백하고 간결한데 있다. 쓰는 용기들이 지나치게 호사스러우면 차의 진정한 운치를 느낄 수 없다. 번거로운 형식이나 값비싼 그릇이 아닌, 투박한 맛과 멋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부용면 금호리를 호젓하게 걷다 붉은 홍시를 만났다. 햇살과 바람에 온 몸이 부서지며 붉게 익었으리라.

늦가을, 아니 겨울 초입에 거니는 부용은 호젓하다. 차 한 잔의 여유와 때묻지 않은 시골사람들의 인심과 겨울채비에 들어간 산과 들과 강과 호수 모두 오달지고 마뜩할 뿐이다. 도시의 번잡한 일상을 잡시 뒤로 하고 대자연과 옛 사람들의 문화를 호흡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이 보다 더 좋은 곳이 또 있을까. 부용은 대전과 청주의 중간쯤, 그러니까 문명과 문명의 언덕배기쯤에 위치해 있다. 욕심 많은 사람들에 의해 파헤쳐지고 부서지고 훼손됐을 법도 한데 옛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 있다. 오랜 역사의 끈을 놓지 않고 여기까지 와 준 게 고마울 따름이다.

금강이 굽이굽이 흘러 산과 바위에 맞닿은 금호리에는 검시나루가 있었다. 삼국시대부터 금강을 거슬러 내륙으로 들어오는 길목이었는데 당나라 상인들의 왕래가 빈번한 곳이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인근의 새나루를 지나다가 강가에 부용화芙蓉花가 흐드러지게 핀 것을 보고 감탄했다는 이야기와 곡선을 이루며 흐르는 금강의 모양이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형국을 이루었다는 이야기가 부용의 유래로 전해지고 있다.

물길은 뱃길을 만들고, 뱃길은 다시 사람의 길과 역사의 길을 만든다. 부용은 물길을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투고 싸운 치열한 역사의 현장이다. 백제의 섬세함과 신라의 화려함, 그리고 고구려의 간결함이 공존했던 이곳에는 역사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태뫼를 중심으로 남성골산성 성재산성 북두산성 독안산성 등 10여개의 성이 있고, 이곳에서 고구려시대 토기류와 장신구 등이 출토돼 당시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 장수 연개소문과 관련된 전설을 비롯해 낡고 허름한 성곽마다 옛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니 그 속살과 내밀함을 훔쳐보지 않은 사람은 부강을 이야기할 수 없다.

은빛억새가 호숫가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금호리에는 나루터와 미루나무 숲이 있고 그 주변의 넓은 백사장에는 여름철마다 젊은이들이 꿈을 낚는 야영장과 수영장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지금은 찾는 이가 없지만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부강약수는 피부병과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고 해서 외지 사람들이 즐겨 찾았고 약수터 앞 유원지에서는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유계화(중요민속자료 제138호)가옥과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지어진 부강초등학교 강당(충북유형문화재 제215호) 등 발 닿는 곳마다 눈길 마주치는 곳마다 가슴 시린 추억들로 가득하다.

최근에는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금강지류 개발이 한창이다. 물길과 산길, 들길과 사람의 길이 함께하고 있는 이곳에 대규모 호수길이 조성될 모양이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개발논리에 밀려 마구 파헤쳐졌을 법도 한데 자연의 숨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크고 작은 공장들로 어수선한 부용면소재지와는 달리 강길을 끼고 있는 시골 마을은 아름답다 못해 처연하다. 물고기와 물새가 떼를 지어 노닐고 있으니 이들에겐 낙원이 따로 없겠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억새밭은 온 종일 바스락거리고 논두렁 밭두렁에도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다. 시골집 앞마당에 붉은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부서지는 늦가을 햇살을 온 몸으로 품었는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나그네의 마음도 터질 것 같다. 물 맑고 볕 좋으니 여기서 가던 길 멈춰야겠다. 낯선 시골풍경을 원 없이 보고 느끼며 즐길 시간이다.

금강 수놓는 철새들의 군무. 겨울이 되면 금강은 철새들의 낙원이다.

사람들은 오늘도 금강의 젓줄이 무심히 흐르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얼큰하고 진한 민물매운탕에 마음 빼앗긴다. 찌그러진 양푼이 냄비에 자연의 미학과 시골 인심 가득 넣었으니 맛과 멋과 향이 일품일 수밖에. 허나, 사람들의 마음은 얄팍하기 짝이 없어 이토록 아름답던 추억도 언젠가는 한 줌의 흙이 되고 이슬이 될 것이다. 나그네의 삶도 허망하게 끝나기 전에 희망의 군불을 지펴야겠다. 더 추워지기 전에 시인의 집을 지어야겠다.

겨울 길목에서 서성이는 늦가을은 온통 붉다.

여름 내내 돌담을 기어오르며 푸른 청춘을 노래하던

담쟁이는 붉게 물들어가고

빨갛게 익어가는 홍시와

그 곁에서 발그레 미소 짓는 잎사귀도 붉다.

푸른 하늘 아래 넘실거리는 들녘도 붉고

춤추는 하늬바람도 빨갛게 타 오른다.

햇살에 익어가는 과일,

그들을 완성시켜 단즙이 입안을 충만케 하는 여인과

이글거리는 노을도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붉게 타 오르고 있다.

하여, 초조하고 초라한 내 마음까지

젖고 있으니 나긋한 걸음을 좇기에 부산하다.

첫 눈이 오기 전에 잘 익은 과일처럼

누군가의 몸과 마음에 따뜻한 사랑으로 남고 싶다.

/글 변광섭(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 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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