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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소풍길 - 제천의림지와 박달재

한해를 보내는 발걸음, 들뜬 근심 다 지운다

  • 웹출고시간2011.12.22 18:13:3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눈 속에 고립된 의림지 풍경. 볼수록 호젓하고 아름답다.

ⓒ 홍대기
찬바람이 밀려온다. 한 해를 마무리 할 때 즈음이면 스산한 바람이 가슴속까지 밀려들어와 왠지 심란하고 근심걱정도 많아진다. 사람들의 마음은 들뜨게 되고 사색과 명상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으려 한다. 황동규 시인은 <더 쨍한 사랑노래>라는 시에서 "저어새 하나 엷은 석양 물에 두 발목 담그고/무연히 서 있다./흘러온 반대편이 그래도 가야 할 곳,/수평선 있는 쪽이 바다였던가·"라고 노래했는데 진정 나의 길은 어디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봄 대지는 만화방창萬化方暢, 봄꽃 터지는 소리로 요란했다. 찬란했던 여름을 지나 가을하늘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이처럼 자연은 지난 한 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세상의 빛이 되었다. 바로 그 자리, 아름다움으로 물결쳤던 산과 들과 계곡이 숙연해 졌다. 하얀 눈꽃으로 새 옷을 갈아입고 숨죽이고 있다. 순결하다. 아니, 영롱하다. 비움의 미학이란 저런 것이구나. 자신의 역할과 몫을 다 한 사람에게도 저 대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신비함이 있지 않을까.

북풍한설을 뚫고 자박자박 자연의 숲을 따라 걷다보면 보일 듯 말 듯, 들릴 듯 말듯, 느낄 듯 말듯 숨쉬는 자연의 기운을 엿볼 수 있다. 가볍게 보면 잠들어 있는 대자연의 일상에 불과하겠지만 마음으로 보면 새로운 봄날을 준비하는 미세한 울림을 느낄 수 있다. 이를 두고 우리는 정중동이라고 하던가. 12월의 소풍길은 지난날을 반추反芻하고 새로운 날을 준비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저 대자연의 신비를 가슴에 품고 지금보다 더 뜨겁고 가치있는 삶을 다짐해야 한다.

한해를 보내며 즐기는 호젓한 소풍길은 단연 제천이 으뜸이다. 때묻지 않은 산과 계곡과 호수와 들녘과 아련한 추억과 역사의 오솔길이 있기 때문이다. 제천 방문길의 첫 번째 코스는 의림지. 역사의 숨결로 내 마음이 들뜰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호수 주변은 놀이터와 식당가와 산업화된 시설물로 가득했다. 그나마 물결치는 호수와 물새와 수백 년 수령의 소나무 숲이 방랑자의 마음을 달래고 있으니 참으로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노자의 <도덕경>처럼 이곳을 거닐고 있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넉넉하고 유유히 흐르고 있다.

의림지의 봄 여름 풍경. 자연과 사람이 하나되는 은밀함이 있다.

ⓒ 홍대기
삼국시대 때 축조된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축조연대는 알 수 없지만 신라 진흥왕 때 악성 우륵이 인근의 용두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든 것이 시초라고 전해지고 있다. 조선 순조 때 세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 그리고 소나무숲과 수양버들과 자연폭포가 역사의 오솔길을 만들어주고 있다. 악성 우륵은 이곳에서 맑고 고운 물과 공기와 소나무 향기를 온 몸으로 품으며 가야금을 타고 자연을 노래했으리라. 화조풍월을 즐겼으리라. 나도 이곳에서 시를 읊고 춤을 추며 대자연과 하나 되고 싶다. "겨울빛 훈훈한 촌길을 거닐며/아롱아롱 졸음을 부르는 햇살과 물살과 바람처럼/넋 놓고 건들건들 유람하는 방랑자여,/작은 입김 하나에도 파르르 파르르 소스라치는 가냘픈 삶/더 이상 슬퍼하지 말라./그동안 외롭고 슬프고 막막했던 것은/누군가를 곡진하게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하니 방랑자여, 더 이상 아파하지 말라./북풍한설 호숫가를 비추는 별밤지기/반짝이는 눈꽃으로 하얗게 밤이 새고/아아, 내 몸 속에 마지막 남은 꽃잎 주머니/이왕이면 보랏빛 꽃을 품고 싶구나."

박달재를 거닐다 만난 갈대숲. 갈대는 혼자 울지 않는다.

ⓒ 홍대기
박달재는 노래로도, 영화로도, 악극으로도 유명하다. 나훈아, 남일, 김선아, 박재홍, 주현미·백승태 등 많은 가수들이 불렀는데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물 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 구려/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신님아/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도토리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한사코 우는 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를 애달프게 부르지 않았던가.

문희, 남진 주연의 <울고 넘는 박달재>는 말 그대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다. 박달재를 넘어 시집을 간 선녀는 고생스러운 시집살이 때문에 고달픈 나날을 보낸다. 시어머니는 시샘이 대단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편은 방탕스러웠다. 어느 날 그녀는 실화범으로 쫓기는 남편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그녀는 옥중에서 아이를 분만한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미워한 나머지 감옥으로 찾아와서 아이를 데리고 가며 나중에 출옥하더라도 아예 시집에 발붙일 생각도 말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출옥한 후에 열심히 돈을 모아 쓰러져가는 시집을 도와준다. 마침내 시어머니는 회개를 하게 되고 그녀는 시집의 알뜰한 살림꾼이 된다는 내용이다.

이왕이면 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 머무르면서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추억을 만들면 좋겠다. 한양을 넘나들던 옛 길에 서서 콧노래를 부르면 어떨까. 금봉이의 슬픈 사랑 이야기에 젖으면 또 어떠한가. 밤하늘에 빛나는 붉은 달을 품으며 한 없이 쏟아지는 별들과 소꿉장난이라도 즐겨보자.

제천에는 이름만 대도 몸과 마을이 들뜨기 시작하는 명소 10경이 있다. 제1경은 우리나라 최고의 저수지로 알려진 의림지고, 제2경은 울고 넘는 박달재다. 제3경은 국립공원 월악산인데 우리나라 5대 산에 속하는 명산이다. 소나무 숲과 바위섬으로 가득해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신라 경순왕과 마의태자 덕주공주에 얽힌 전설과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제4경은 청풍문화재단지. 충주댐 수몰로 인해 사장위기에 놓여있는 생활문화유산을 한 곳에 모아 재건한 곳인데 53점의 문화재와 2천여 점의 생활유물이 전시돼 있다. 뒤로는 풍광 좋은 산맥이, 앞으로는 시원한 호수가 사계절 햇살에 춤을 추고 있으니 역사와 문화와 생태와 조화로운 호젓한 곳이다.

ⓒ 강호생
제5경은 금수산이다. 퇴계 이황이 가을이면 비단에 수를 놓은 듯 단풍이 아름답다고 하여 금수산이라 이름 붙인 명산이다. 이곳에는 무암사, 정방사, 용담폭포, 선녀탕, 얼음골, 능강계곡 등 스토리텔링과 생태가 함께하고 있어 온 가족이 한나절 소풍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제6경 용하구곡은 월악산의 동편 골짜기에 위치해 있는데 수문동 폭포, 수곡용담, 관폭대, 청벽대, 선미대, 수룡담, 활래담, 강서대, 수렴선대를 용하구곡이라 한다. 제7경 송계계곡은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자연대, 월광폭포, 수경대, 하소대, 망폭대, 와룡대, 팔랑소 등의 명소가 있는데 여름이면 도시 사람들의 나들이 코스로 인기만점이다.

제8경 옥순봉은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 위치해 있는데 단양 8경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조선 초 청풍군에 속해 있는 옥순봉은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부임해 이곳을 둘러보니 마치 대나무 순이 솟아오른 것처럼 아름다워 옥순봉玉筍峰이라 이름 지었다. 단원 김홍도는 이곳의 아름다움을 병진년화첩에 담기도 했다. 유람선에서 옥순봉의 빼어난 자태를 감상해도 좋고, 직접 올라가 대자연의 아찔함을 즐겨도 좋다. 제9경 탁사정은 백사장과 맑은 물, 노송이 어우러져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을 얻고 있으며, 제10경 배론성지는 한국의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에 숨어 지낸 곳으로 황사영이 박해 상황을 알리기 위해 백서를 쓰고 성요셉 신학교가 세워졌던 곳이다. 배론성지를 방문할 때는 김훈의 신작 <흑산>을 가슴에 품으면 좋다. 조선후기 진보적 지식인이자 천주교 신봉자였던 정약전의 삶과 애환을 그린 책이기 때문이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번잡한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대자연과 호흡하며 나만의 결과 나만의 향과 나만의 멋을 만들면 좋겠다.

글 변광섭(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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