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커밍아웃

2025.04.22 14:27:46

류경희

객원논설위원

이제는 제법 귀에 익은 단어다. 커밍아웃(Coming out), 성 소수자가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주위에 밝힌다는 뜻으로 벽장에서 밖으로 나온다는 'come out of closet'을 줄여 coming out이 됐다.

자신의 성적 취향을 숨기고 벽장 속에 갇힌 것처럼 지내다가 드디어 벽장에서 나왔다란 비유겠다. 커밍아웃은 자신의 성 지향성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가족이나 동료, 사회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알리는 용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벽장에서 나오는 커밍아웃은 동성애 사실이 타인에 의해 밝혀지는 아웃팅(outing)과 차이가 크다. '누군가를 벽장 밖으로 끄집어내는(taking someone out of the closet)'행위인 아우팅은 다른 사람의 정치, 종교적 성향이나 은밀한 치부를 고의로 들춰낸다는 의미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자임을 실토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타인의 성적 취향에 관대한 허리우드에서조차 커밍아웃 선언은 특별한 가십거리였으니.

미국 군대에서도 암묵해야 하는 DADT가 있다. 물어보지 않을 테니 스스로 실토할 필요도 없다(Don't ask, don't tell)라는 의미로 성소수자가 스스로 커밍아웃하지 않는다면 성소수자임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불문율이다.

배우 윤여정이 영화 '결혼 피로연' 홍보를 위한 할리우드 매체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를 통해 첫째 아들의 커밍아웃 사실을 공개했다. 동성애자 손자를 둔 영화 속 자신의 캐릭터를 소개하면서 꺼낸 이야기다.

"한국은 보수적인 나라라서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나에게 아주 개인적인 문제였다"라고 밝힌 윤여정은 연출을 맡은 앤드류 안 감독과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영화에서 동성애자인 손자에게 한 대사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녹여 감독과 함께 쓴 것이라고 한 윤여정의 발언 행간에 복잡했을 엄마의 마음이 읽혀진다.

홍콩 매체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도 아들의 이야기를 했다. 2000년에 커밍아웃한 아들의 결혼식을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뉴욕에서 열어줬다는 윤여정은 인터뷰 공개 뒤 한국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다며 비난을 걱정하기도 했다.

한국 이민자 자녀인 앤드류 안 감독이 연출한 '결혼 피로연'은 지난 1993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대상인 황금곰상 등을 수상한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의 동명 영화 '결혼 피로연'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은 미국에서 사는 대만계 청년이 동성애자임을 숨기기 위해 영주권이 필요한 여성과 위장결혼을 하면서 벌어지는 코미디다. 주인공은 완벽한 연기로 무사히 위장결혼식을 치른다. 그런데 결혼 피로연에서 마신 술로 인해 파트너가 임신을 하게 되면서 소동이 벌어진다. 주인공 웨이퉁이 순수한 게이가 아닌 양성애자란 설정이 대 환장 포인트다.

리메이크작인 이번 영화는 배경이 대만에서 한국으로, 상대 여성도 일반여성에서 레즈비언으로 바뀌었다. 윤여정의 역할은 동성애자 손자를 지지하는 할머니다. 동성애 문제를 다룬 영화에 출연한 윤여정은 영화 속 동성애자 손자의 고민이 지난날 자신의 속앓이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아들보다 사위가 더 좋다"고 한 윤여정의 말 중 '지금은'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윤여정은 "한국이 마음을 열기를 바란다"고 했다. 괜한 걱정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생각이 아직 경직돼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누구라도 개인의 행복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면 주제넘은 참견이다. 어머니 윤여정의 결정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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