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자궁을 스스로 관리할 권리

2018.05.27 15:50:31

여성가족부가 낙태죄 폐지 입장을 공표했다. 낙태죄 위헌소송 공개변론이 펼쳐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것이다.

하지만 법무부는 여전히 낙태죄 폐지에 강한 반대 입장이다. 설상가상 '합의에 의한 성관계는 응당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란 변론요지서의 한 문장이 심각한 여성폄훼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자 법무부가 바로 해명자료를 내긴 했다. 그러나 "낙태를 허용하면 더 큰 사회 병리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취지였을 뿐"이란 해명은 진화에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합의에 의한 성관계는 응당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라는 턱없이 헛갈리는 용어를 쉽게 풀어보자. 둘이 마음이 맞아 성관계를 했을 때 당연히 임신할 수 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성관계는 하면서 아이는 낳지 않겠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말이겠다.

아무리 너그럽게 해석을 하려해도 여성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 분별없는 의견이다.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에 따른 임신을 '원하지 않은 임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은 곧 출산을 할 수 없는 사정이 있어 낙태를 원하는 여성은 '성관계만을 원하고 태아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하는 무책임한 인간'이란 힐난이 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임신중절을 불법화할 경우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에 대한 법무부의 생각이다. 법무부는 낙태죄 폐지 요구를 마약 합법화 상황에 빗대 반박했다. "네덜란드처럼 대마를 합법화하지 않으면 더 중독성이 강한 화학 물질로 이뤄진 마약에 수요가 몰려 결국 인간의 생명과 신체에 더 위해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는 주장"이라는 황당한 의견이다.

법률용어를 분석하는 전문가가 아니라도 법무부 변론요지서가 지극히 가부장적 인식에서 나온 발상임을 알 수 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대결구도로 몰아 임신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전적으로 돌리고 있는 점도 불쾌하지만 여성의 낙태에 대한 선택을 마약범죄에 빗대 비판 점은 해명이 아니라 사과가 따라야할 사안이다.

우리나라는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으나 대다수 국가들은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있다. 일본의 모체보건법으로 '사회경제적 사유'를 인정한다. 미국은 만 23주, 영국은 만 24주, 프랑스는 만 12주 미만의 중절을 전면 허용하고 있으며 독일은 12주 미만일 시 의사 상담 후 요건이 되면 허용한다. 스웨덴 역시 임신 18주 이후에라도 보건당국의 허가를 받아 합법적인 낙태가 가능하다.

낙태를 엄격히 금하는 나라도 있다. 아일랜드와 중남미 일부 국가 등 가톨릭 전통이 깊은 나라들이다. 국민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인 아일랜드는 성폭행이나 근친상간, 태아와 산모의 생명에 지장이 있는 경우에도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태아와 임산부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한 1983년 수정헌법 제8조에 의해 낙태는 최대 14년의 징역형을 받는다고 한다.

불법 낙태로 여성의 건강이 위협을 받게 되자 아일랜드 의회는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 3월8일 낙태 금지를 뒷받침하는 수정헌법 제8조의 개헌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법안을 발의하고 국민투표 실시를 결정했다.

가장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로 낙태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는 폴란드는 2016년 낙태 허용 예외 조항마저 없애고 이를 어길 경우 최대 징역 5년형까지 처하는 내용의 낙태전면금지법을 통과시키고자 했다.

집권당의 독선에 반대하는 수만 명의 군중이 검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와 '검은 옷 시위'를 벌였다. 이들이 외쳤던 구호가 "나의 자궁은 나의 것"이다. 낙태전면금지 입법은 국민의 거센 반대여론에 밀려 결국 무산됐다.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자기 선택권은 기본적인 인권이다.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어떤 권력이 구속하려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불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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