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아들을 얻은 이재명

2024.06.25 14:49:32

류경희

객원논설위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어머니란다. 10여 년 전 영국문화협회가 세계 102개 비영어권 국가 4만 명을 대상으로 한 '가장 아름다운 영어단어'를 묻는 설문조사의 결과다. 1위로 선정된 어머니(Mother)에 이어 열정(Passion), 미소(Smile), 사랑(Love) 등이 차례로 순위를 차지했다.

혹자는 이 모든 단어가 어머니와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어머니의 열정,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따뜻한 웃음과 사랑을 누가,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그런데 아버지(Father)는 10위 안에 없다. 아름다운 아버지가 없어서라기보다 강하고 든든한 아버지를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이 부적절해서 일 것이다. 굳이 순위를 정한다면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단어가 아닐까.

우골탑을 쌓던 아버지/끝내 뼛골이 빠지도록 일하다가/한 마리 소가 된 아버지//살을 다 주고 사골도 푹푹 고아져/누구의 몸보신 된 후/피골상접했던 껍데기는 가죽이 되어//끝내 잘못도 없었던 생/북이 되어 신나게 두들겨 맞으며/세상 흥을 돋우네.//내게 속고 세상에 속아 북이 된 아버지/나도 모르게 북채를 들고/북이 된 아버지를 둥둥 치네/아들아, 아들아 부르는 아버지를 치네.

김왕노 시인의 시 '아버지 그 후'처럼 소가 되어 소처럼 일하고 살과 뼈 가죽까지 남김없이 자식에게 헌신하는 사람이 보통의 아버지다. 그래서 함부로 재거나 다룰 수 없는 것이 아버지의 무게다.

본래 친 아버지가 아닌 사람에겐 아버지란 말을 잘 쓰지 않았다. 며느리도 시아버지를 아버님이라고 불렀고 다른 사람의 아버지라면 어르신이나 춘부장(春府長)이란 호칭을 썼다.

가족관계가 아닌 특별한 의미의 아버지가 있기는 하다. '교육의 아버지 페스탈로치'처럼 어떤 일을 처음 시작했거나 최고의 기량을 보인 사람에게 부여한 상징적인 호칭이 그 예다. 아무에게나 가볍게 붙이지도 않았고, 붙여서도 안 되며, 붙이면 우스워지기도 한다. 그것이 아버지란 단어가 품고 있는 엄숙한 무게다.

최근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된 더불어민주당 강민구 신임 최고위원이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자신을 임명해주신 대표님께 감사드린다는 간절한 충성맹세와 함께 '민주당의 아버지'라는 칭송을 이재명 대표 면전에 올렸다.

발언을 마친 강 최고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재명 대표에게 허리 반절을 꺾자 이재명 대표는 밝게 웃으며 악수했다. 수많은 기자와 카메라가 지켜보는 공개된 공간에서 칼 각도의 절과 함께 아버지란 말을 들었으니 이 대표도 조금은 당황했을 것이다. 이 대표와 강 최고위원은 1964년생 동갑내기에 이웃인 안동과 의성에서 태어난 동향출신이다.

강민구의 아버지 발언에 대해 국민의힘은 '명사부일체에 명비어천가'라며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라 공격했다. 개혁신당 또한 논평을 통해 '그렇다면 어머니는 김혜경 여사란 말이냐'라고 빈정거렸다. 민주당에서도 '자질의 문제, 적절치 않은 과잉표출' 등의 비판적 목소리를 내었다.

여야가 일제히 지나치다고 비난하자 강민구는 "헨델이 '음악의 어머니'라고 한 것을 왜 남자를 어머니라고 하느냐 반문하는 격"이라 반발하며 깊은 인사는 '영남 남인의 예법'이라고 불쾌해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영남지역 유림들이 일제히 성토에 나섰다. 영남 남인의 예법 어디에 '아버지' 운운하는 아부의 극치가 있으며, 퇴계 이황의 학풍을 이어받은 영남 양반 인사예법 어디에 새의 깃털처럼 가벼운 언행이 있느냐란 유림들의 질타에 강민구는 어떤 해명을 해야 할지 골머리가 아플 것이다.

'음악의 어머니 헨델'을 들먹인 발언도 고쳐주고 싶다. 그보다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 부르듯 자신도 이 대표에 대한 칭송의 마음을 아버지라 표현한 것이라 했다면 덜 어색하지 않았을까. 결과가 모두 웃음거리가 될 것이긴 마찬가지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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