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아들의 다툼

2018.07.01 15:13:23

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고 김환기 화백의 아들 김화영씨가 환기재단을 상대로 한 '동산인도청구소송' 항소가 기각됐다. 어머니가 환기미술관에 기증한 아버지의 유작 130점 중 5점을 반환하라며 제소한 소송에서 패소한 것이다.

환기미술관은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화가 김환기 화백의 유작을 영구 보전하기 위해 김화백의 부인 고 김향안 여사가 1992년 서울 부암동에 설립한 미술관이다. 김향안씨는 2004년 타계했다.

잘 나가던 사립미술관이 내분으로 어수선해진 것은 지난 2008년 김화영 환기재단 이사장이 환기미술관 소장 작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부터였다. 김 이사장은 미술관 측에 '작품대여 확인증'을 요구하며 환기미술관장과 재단이사가 아버지의 작품을 임의로 내다팔고 있다고 주장해 파란을 일으켰다.

결국 김 이사장은 당시 관장을 횡령과 사문서 위조 등으로 고소했다. 그러나 김 이사장이 주장하는 임의 매각을 입증할 수 없어 사건은 무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다만 문화체육관광부 감사 결과 1994년 미술관 등록 시 수록된 작품 130점 중 5점이 사라진 점은 확인됐었다.

고소를 당한 이사진들은 김 이사장의 해임을 의결했고, 환기재단 이사회의 이사장 해임 사유가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미술관은 내분으로 인해 관람객의 출입이 제한되는 등 한동안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야했다.

재단과 운영 문제를 놓고 다투던 김화영씨는 이어서 어머니가 환기미술관에 기증한 작품 130점 중 5점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냈다. 법원은 김 씨의 소유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김 여사가 일부 작품을 사유재산으로 남겨놓고 자손에게 상속시킬 의사가 있었다면 '김 화백 작품 영구보존'이라는 재단 설립 목적이 무색해진다"는 것이 2015년 당시 1심 재판부의 결정이었다.

1심 패소 판결에 불복한 김 씨의 항소가 최근 기각됨에 따라 김 화백의 아들은 아버지 작품에 대한 소유권을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됐다.

김환기 작품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높인 사람은 김 화백의 부인 김향안씨다. 1974년 김환기 화백이 타계한 후 부인은 환기재단과 환기미술관을 설립해 남편의 작품을 지키고 관리했다.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기리기 위해 기울인 김 여사의 집념은 대단했다고 한다.

김향안씨의 본명은 변동림(卞東琳)이다. 재원이었던 그녀는 1936년 21세 때 이복언니 변동숙의 의붓아들이던 화가 구본웅의 소개로 천재시인 이상(李箱)을 만나 결혼했으나 4개월 만에 사별했다.

남편 이상을 황망하게 보내고 난 7년 후 그녀는 김환기를 만나게 된다. 세련되고 지성적인 변동림이 마음에 들었으나 김환기는 선뜻 구애할 자신이 없었다. 아이가 셋이나 딸린 이혼남의 처지였기 때문이다.

김환기와 그녀는 매일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웠다. 그러나 김환기의 우려대로 변동림의 집안에서 김환기와의 결혼을 극렬히 반대했다.

가족들의 벽에 부딪친 그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김환기에게 갔다. 변동림이란 본명마저도 버렸다. 개명한 이름인 '김향안'은 김환기의 성에 김환기의 아호 향안을 붙여서 지은 이름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물려받고 온전히 그의 안으로 들어간 영화 같은 결합이었다.

김환기는 전처와의 사이에 세 딸을 두고 있었으나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김 화백 부부는 양자를 들였는데, 이들의 양자가 바로 아버지 작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동산인도청구소송으로 세간의 이목을 끈 김화영씨다.

셰익스피어는 인생을 연극에 비유했다. 신의 연극을 상연하는 무대가 인생이라면 김환기 일가는 스펙터클한 무대를 연출한 사람들이다. 예술, 사랑, 갈등, 모두 스케일이 남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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