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로 무너진 고은시인의 명예

2018.02.11 13:38:11

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최영미 시인의 미투 동참으로 한국문단 내 성추행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최 시인의 고발대로라면 몇몇 원로 문인들의 어른답지 못한 행태는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할 수준이다.

종편채널에 출연한 최영미 시인은 문단 내 성추행을 언급하면서, 신인 여성문인이 칼자루를 쥔 남성 문인의 성적인 요구를 거절하면 작품에 대한 불이익 등의 보복을 당하게 된다고 폭로했다.

소위 문단 권력자라 불리는 인물들이 자행했다는 보복의 방법이란 것이 시정잡배의 만행보다 치졸하다. 최시인은 추천사 안 써주기, 작품 평 안 좋게 남기기, 메이저 문학지에 소개하지 않기 등의 보복으로 문단에서 인정받지 못한 여성 문인들이 많다고 밝혔다.

특히 그녀가 발표한 시를 통해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한 고은 시인의 추태는 평소 그를 존경했던 많은 독자들에게 상처가 됐다. 성추행을 한 것은 잘못이지만 작가의 족적과 문학작품까지 비난하는 것은 자제해 달라는 일부 문단 인사들의 부탁 역시 전혀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최영미 시인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젊은 시절, 기라성 같은 문단의 중견 작가들과 어울린 술자리에서 자신을 성희롱한 선배 작가의 뺨을 후려친 뒤 자리를 털고 나갔다는 일화는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최영미가 문단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멋모르고 고은 시인 옆에 앉았다가 추행을 당했던 일이 있었나 보다. 그 때의 치욕을 가슴에 품고 있던 최영미는 몇 년 뒤 출판사 망년회에서 고은 시인을 만나게 됐다.

또 다른 여성에게 못된 손장난을 치고 있던 원로 시인에게 최영미가 원색적인 지적을 퍼부었다는 폭로가 화제가 되고 있는 그녀의 시 '괴물'의 내용이다. 내친 김에 문제의 시 '괴물'을 살펴보자.

'En 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 거든/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 선생 옆에 앉았다가/Me too/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 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내가 소리쳤다/"이 교활한 늙은이야!"/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받고 나는 도망쳤다(중략)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그런데 그 물이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불쌍한 대중들/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En이 노털상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괴물을 잡아야 하나'

원로시인 고은의 성추행을 고발한 최영미 시인의 '괴물'은 지난해 12월 계간지 황해문화의 겨울 특집호에 게재된 시다. 황해문화은 겨울호의 주제를 '페미니즘과 젠더'로 정하고 최시인에게 작품을 청탁했다. 부당한 성적 요구를 거절했다가 문단에서 외면당한 후, 10년 만에 문예지로부터 받은 청탁이었다고 한다.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성폭력 피해 경험을 털어놓는 캠페인인 '미투 운동(나도 피해자:me too)'은 2006년 미국의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시작한 캠페인이다. 여배우와 부하직원들을 30년간 성추행한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에 분노한 연예인 알리사 밀라노가 제안하여 작년 10월 시작된 2017 미투 운동은 연예계뿐만 아니라 문화계와 언론계, 정계, 재계 등이 동참했고 일부 남성 피해자까지 연대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며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할지 칼을 갈았던 최영미는 결국 거대한 원로시인을 망신시키는데 성공했다. 아무나할 수 없는 일을 해낸 용감한 최영미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PC버전으로 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