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를 조이고 가슴을 받쳐주기 위한 체형보정 속옷이 코르셋이다. BC 2000년경 청동기시대 미노아 문명의 크레타인들이 처음 입기 시작했다는데 체형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옷 위에 넓은 벨트처럼 착용했다. 첨단 패션 아이템 중의 하나인 코르셋 벨트의 원형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겠다.
코르셋이 여성 속옷의 대명사가 됐지만 처음엔 남성들이 역삼각형 몸매를 만들기 위한 상체 교정 목적으로 코르셋을 입었다고 한다. 남성의 옷장에서 여성의 옷장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옮긴 셈이다.
코르셋의 앞면에는 가슴을 지지하고 보정 효과를 높이기 위해 지지대인 버스크를 넣는다. 고래 뼈나 강철 등이 일반적인 버스크의 재료였으나 상류층 여성들은 은이나 상아 같은 재료로 버스크를 넣어 부를 과시했다. 버스크에 시 구절을 새겨 넣기도 했는데, 성적인 이미지가 강한 버스크를 코르셋에서 빼내는 행동은 이성에 대한 유혹으로 여겼다.
세뇌된 미적 기준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조인 코르셋의 부작용은 여성 건강에 치명적이었다. 요통과 변비는 필수였고 탈장과 내출혈이 오는가하면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찌르는 바람에 사망하기도 했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여성들이 툭하면 졸도했던 이유도 코르셋 착용 때문이었다. 코르셋으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해지자 17세기말부터 여성의 몸을 구속하는 코르셋에 대한 반발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지만 대중의 호응을 이끌지 못했다.
답답한 코르셋에 갇혀 있던 여성의 몸을 한결 가볍게 도와 준 브래지어가 등장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다. 1907년 미국의 패션매거진 보그(Vogue)지에 처음으로 브래지어라는 용어가 등장했는데, 프랑스어의 '브르쉬르(brassiere)'에서 유래된 말로 아기에게 젖을 물릴 때 가슴부위를 쉽게 여닫을 수 있게 만든 옷을 지칭했다.
그러나 브래지어 역시 코르셋을 간소화 시킨 속옷일 뿐이다. 1960년대에 페미니스트들은 여성해방의 상징으로 거리에 몰려나와 여성의 몸을 구속하는 브래지어 소각시위를 벌였다.
여성해방을 외친 여인들이 브래지어 화형 퍼포먼스를 벌인 것은 여성의 가슴을 여성 자신의 것으로 가져오자는 주장에서였다. 이게 뭔 뜬금없는 주장이냐. 네 가슴이 네 것이지 지나가는 행인 것이냐며 어이없어 할 일이 아니다.
미국 스텐포드대 교수 '메릴린 예롬'은 그의 저서 '유방의 역사'를 통해 인류 역사상 여성의 유방은 한 번도 여성 자신의 소유였던 적이 없었다고 했다. 남성에게는 즐거움으로, 정치가에게는 국가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브래지어 장사에겐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여성의 유방이 이용만 당해왔다는 설명이다.
여성해방을 유방해방으로 본 저자는 모유로 아이를 키우건, 가슴에 칼을 대어 유방을 다시 만들 건, 유방에 대한 모든 행위를 여성 스스로 결정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브래지어 화형식을 두둔했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브래지어를 착용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가 지나서였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한국여성들이 '탈 코르셋'을 외치고 있다. 사회적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겠다는 주체적 의지로 들린다.
탈 코르셋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일주 여성들은 여성의 몸에 대한 '시선의 구속'에서 벗어나겠다며 상의 탈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광장에 나온 젊은 여성들은 "브라 없는 맨가슴을 꿈꾼다" 등을 쓴 피켓을 들고 탈의한 상체를 당당히 드러냈다. 여성들의 몸을 가리기 위해 이불을 들고 동분서주하는 경찰들의 모습이 대비된 이날의 시위는 여성성의 가치기준에 큰 울림이 됐다.
나의 건강과 나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겠다는 탈 코르셋의 취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나 선뜻 따라 하기엔 큰 용기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