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이나 드시지요

2017.08.20 15:20:52

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제갈각은 삼국시대 오나라의 정치인으로 2대 황제 손량의 섭정이었다가 암살된 인물이다. 비상한 두뇌와 식견이 있었던 그는 안하무인인 성품으로 공을 깎아 먹었었나 보다.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제갈각에 대해 "재주와 지략은 칭찬받을 만하였으나 교만하고 도량이 좁았다"는 평을 했다. 아버지인 제갈근도 "장차 우리 집안을 말아먹고 일족을 멸하게 만들 놈"이라 걱정했다.

아버지 제갈근과 숙부 제갈량의 우려대로 제갈각은 권력을 잡은 지 1년도 안 돼 손준에게 암살당하고 가문을 망쳤다. 오만한 성품이 화를 자초한 것이다.

약관의 나이에 기도위로 임명되어 손권의 태자 손등을 모셨던 제갈각의 일화 중 달걀에 관한 것이 있다.

한 날 손등은 심사가 틀어져 제갈각에게 심통을 부리며 조롱했다. "제갈은 말똥이나 먹게" 제갈각은 태자의 말을 되받아 쳤다. "그럼 태자께선 달걀을 드시지요"

곁에서 듣고 있던 손권이 제갈각에게 물었다. "태자가 말똥을 먹으라고 한 욕에 대해 경은 왜 달걀을 먹으라고 대꾸했는가·" 제갈각은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나오는 곳이 같아서 입니다" 손권은 제갈각의 재치를 크게 웃어 넘겼다고 한다.

배설물과 알이 같은 부위에서 나옴을 빗대 태자를 놀렸던 제갈각의 말처럼 닭은 항문으로 달걀을 낳는다. 달걀이 나오는 수란관이 직장과 연결된 조류의 총배설공 구조 때문이다. 배설과 산란을 하나의 관으로 처리하다 보니 달걀의 겉면에는 닭의 배설물이 묻게 마련이다. 이와 같은 분변에 자생하는 살모넬라균 등으로 인해 위생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식중독 문제가 따라오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달걀이 귀했을 시절엔 달걀 특유의 노린내가 배설물 냄새처럼 느껴진다며 달걀을 사양하는 어른도 있었다. 아마도 기호에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달걀을 양보하기 위한 배려에서였을 것이다.

대량생산이 가능하지 않았던 근대까지 달걀은 귀한 식재료였다. 구한말 물가자료에 기록된 달걀의 가격은 같은 무게의 소고기 가격과 맞먹을 만큼 높았다. 서양 역시 달걀의 가치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달걀의 생산량이 미미하다보니 전통 달걀요리는 단순하다. 문헌에 나오는 달걀반찬은 수란(水卵), 건수란(乾水卵), 팽란(烹卵)정도가 일반적이다.

수란은 국자에 기름을 바르고 달걀을 깨 넣은 후 더운 물에 살짝 쪄낸 반찬이다. 건수란은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깨어 넣은 달걀에 소금을 약간 뿌려서 지진 반찬으로 지금 손쉽게 먹는 달걀프라이와 조리법이 같다. 팽란은 글자 뜻대로 삶은 달걀이다.

현대 지구인들은 한 사람당 1년에 약 9kg의 달걀을 먹어 치운다고 한다. 약 640억 kg, 약 1조 2천억 개 이상이란 어마어마한 양이다. 우리나라는 1인당 약 12kg, 하루 4000만개 가량의 달걀을 소비하고 있다.

살충제 달걀 사태로 전국이 패닉상태다. 쌀통에 쌀은 떨어져도 냉장고에 달걀은 반드시 챙겼던 터라 수소폭탄을 맞은 듯한 충격이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들불처럼 번지자 대한의사협회가 뜬금없이 살충제 달걀의 급성독성이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영유아가 하루에 살충제 달걀 2개를 섭취한다고 해도 급성독성은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했다. 대다수 살충제 성분이 보통 1개월 안팎으로 몸에서 완전히 배출된다고도 했다. 불안을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울화와 의혹까지 보태주는 의견이다. 전체 의사의 입장인양 의사협회를 내세운 것도 부적절했다.

살충제 달걀에 대한 정부의 전수조사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오죽하면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국무총리가 사태를 파악조차 하지 못한 식약처장에게 "브리핑을 하지 말라"며 역정을 냈겠는가.

부실조사와 부실대응을 세트플레이하는 정부에게 '제갈각'의 달걀을 권한다. 양껏 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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