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주 대신 지지자들만 왜

2018.04.01 13:19:14

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정치적 음모론을 운운하며 기세등등하던 정봉주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거짓 해명을 시인하자 그를 믿고 응원했던 지지자들이 세상 민망한 처지가 돼 버렸다.

정봉주 관련 기사 댓글은 정봉주 말만 믿고 피해자를 모욕했던 경솔함에 용서를 비는 내용으로 도배다. '반성한다, 미안하다'로 그동안의 오해가 대충 정리되는 상황인데, 유독 김비오 민주당 부산 중ㆍ영도지역위원장만 독박을 쓰고 있다. 정봉주의 결백에 거금 1억 원을 배팅하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정봉주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의 법률 대리인을 자처한 박훈 변호사가 SNS를 통해 정봉주가 제시한 알리바이 사진이 사실이라면 1억 원을 지급하겠다고 하자, 김비오 위원장은 즉각 정봉주의 결백에 1억 원을 베팅한다는 대응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었다. 박 변호사를 디스하는 내용을 덧붙여서다.

"평소에 존경했던 분인데, 요즘 근황을 보면 실망스럽습니다. 1억 포상금. 저는 그 시간에 정봉주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다는 것에 1억 원을 베팅합니다."

정봉주 측이 결백하다면 공개 사과와 함께 빚을 내서라도 손해배상액 '1억 원'을 정봉주 전 의원에게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던 박훈 변호사는 정봉주의 결백에 1억 원을 배팅한다는 김 위원장의 제안 글에 댓글로 콜을 받았다. "계약 수락합니다. 정봉주가 거짓말했으면 2억 받겠습니다."

정봉주가 자신에 대한 의혹을 인정하자 풀이 꺾인 김 위원장은 바로 사과문을 올렸다. 박 변호사와 피해를 주장한 여성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노름판 같은 희한한 사태를 지켜보던 대중들은 판돈 1억을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말로만 뱉었다면 실언이었다며 대충 넘어가도 그만이었겠지만 글로 남겼으니 꼼짝없이 약속을 이행해야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2차 가해를 선동하고 사과 한마디로 넘어 가려는 거냐'며 '1억 원은 어떻게 되는 건지' 따지고 드는 열화와 같은 성화에 김비오 위원장은 약속한 1억 원을 순차적으로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 위안부 피해 여성 등 폭력 앞에 희생되고 상처받은 분들을 찾아 1천만 원씩 차근차근 기부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진실 규명에 앞서 가볍게 이뤄진 제 행동을 깊이 반성한다"는 그의 발언에 착잡함이 묻어있다.

오랜 동지였던 정봉주의 진정성을 믿었기에 손잡아주고 싶어 그랬다는 김비오는 나름 의리 있는 사나이다. 철석같이 믿었던 정봉주에게 뒤통수를 맞고 1억이란 거금을 내놓게 된 그의 심정을 주변인들이 어찌 헤아릴까. 어떤 위로라도 비아냥처럼 들릴 것이다.

설상가상, 1억 원을 기부한다고 했지만 칭찬도 못 듣는 기부다. 실시간 올라오는 트위터의 관련 의견 역시 격려나 위로가 아닌 질책으로 수선스럽다.

1억 받고 2억이라 계약했는데 혹시 천만 원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것이냐는 식의 빈정거림이 시선을 잡는다. 조목조목 계산에 밝은 이는 첫째, 금액은 1억이 아니라 2억이 맞고 둘째, 처분 권한은 박훈 변호사에게 있으며 셋째, 피해 여성들의 명예를 상당부분 훼손시키는 내기였기에 일부는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는데 사용되는 게 맞다는 지적을 했다.

1억에 1억을 얹어 판을 키운 김비오와 계약을 수락한다며 2억을 받겠다고 한 박훈의 가벼움을 싸잡아 나무라며 피해자가 당한 성추행을 내기 판으로 우습게 만든 두 사람에게 일침을 가한 이성적인 글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이 모든 원인을 제공한 정봉주는 피해자에 대한 사과를 외면한 채 "자연인으로 돌아갈래"를 외치고 있으니 별 일이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정봉주 전 의원이 성추행 피해자에게 이중인격 살인을 저질렀다고 했다. 하나는 성추행이고 다른 하나는 지지자들이 가한 댓글 폭력이란 얘기다.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고 해서 자연스레 용서될 잘못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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