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금으로 되지 않는 두 가지

2024.11.26 14:51:31

류경희

객원논설위원

'인생에서 억만금으로 되지 않는 두 가지가 골프와 자식이다' 작고한 재벌회장과 한 대형교회 목사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두 문제를 이렇게 한탄했다고 한다. 지금 이와 같은 심정을 가장 절감하는 사람이 자식비리로 속이 문드러졌을 태영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이 아닐까.

2016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로 근무하다 망명한 태영호는 국회의원에 이어 탈북민 최초로 차관급 임명직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태영호는 그동안 저서와 인터뷰 등을 통해 망명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장남의 북한 강제귀국 명령 때문이라고 했다.

두 아들의 자유로운 미래를 위해 망명을 선택한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대한민국에서 멀쩡히 대학을 졸업한 태영호의 장남 태민우는 사기, 횡령혐의에 이어 마약관련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식농사라고 하지만 서른이 넘은 아들의 탈선을 보는 태영호의 마음은 여느 아버지보다 더 착잡할 것 같다.

이야기를 꺼낸 김에 제법 그럴듯하게 엮은 골프와 자식의 공통점 열 가지를 풀어 보자.

첫째, 한번 인연을 맺으면 죽을 때까지 끊을 수 없다. 아무리 못마땅해도 천륜이기에 끊을 수 없는 자식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는 당장 때려 치고 싶지만 다시 잡게 되는 것이 골프채다.

둘째, 언제나 바른 길로 가길 기도한다. 자식은 올바른 길로, 골프공은 똑바로 가주길 바란다.

셋째, 끝까지 눈을 떼지 말고 집중해야 한다. 자식과 골프 모두 끝까지 눈을 떼지 않아야 원하는 방향 비슷하게라도 간다.

넷째, 간혹 부부싸움을 부르는 원인이 된다. 지나치게 빠지다보면 서로 다른 생각과 방식의 차이로 배우자와 충돌할 수 있다. 다섯째, 안 될수록 패지 말고 띄워줘야 한다. 자식은 꾸지람보다 칭찬과 격려를, 골프는 성질을 죽이고 부드럽게 스윙해야 한다.

여섯째, 잘못 때리면 다른 길로 빠져나가 삐뚤어지기 십상이다. 자식은 엄하게 훈육하여 체벌하면 자칫 엇나가기 쉽고, 골프공을 잘못 때리면 딴 길로 들어 낭패를 보게 된다. 일곱째, 남들에게 이야기할 때 허풍이 들어간다. 남들에게 자랑할 때는 뻥을 치게 된다는 말이다.

여덟째, 같은 배 속에서 나왔는데 성격은 모두 다르다. 같은 뱃속에서 나온 형제도 성격과 하는 짓이 다른 것처럼 같은 브랜드, 같은 모델의 골프채로 샷을 해도 공가는 방향이 제각각이다.

아홉째, 비싼 과외를 해도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비싼 과외비를 쏟아 부어도 원하는 만큼 아이의 성적이 오르기 힘들고, 고액 골프레슨을 받는다고 해서 눈에 보이게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열 번째, 열여덟이 지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자식이 열여덟 살이 지나 대학에 가면 부모는 간섭을 끊어야하고 골프도 18홀이 지나면 끝내야 한다.

열거한 열 가지 공통점 외에 몇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내 맘대로 안가고 제 맘대로 가며, 종종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깊은 러프나 벙커처럼 한번 나쁜 길로 빠지면 페어웨이같이 좋은 길로 인도하기 힘들다. 남에게 잘 빌려주지 않는다. 잘 하면 날아갈 듯 자랑하고 싶고, 못하면 엄청나게 열 받는다. 정성들여 연습해도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없다. 힘보다 한 스텝씩 믿음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자식복은 자식을 얻는 복과 자식 덕분에 누리는 복이다. 그런데 인생에서 누리고 싶은 다섯 가지 복중엔 자식복의 자리가 없다. 오복인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은 모두 나를 중심으로 한 내 몸의 안녕을 바라는 덕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식의 훈육을 골프와 비교하면서 애를 쓰는 이유도 탈 없이 자라 제발 내 짐이 되지 않기를 바라서 일 것이다. 그러나 짐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내려놓기 힘든 짐이기에 석가모니는 아들의 이름을 '라훌라'라 지었나 보다. '장애'라는 의미의.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