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다 유튜브

2024.06.11 15:31:10

류경희

객원논설위원

밀양 성폭행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된 남성이 운영하던 막창집이 문을 닫았다. 가해자가 종업원으로 일했던 청도 국밥집이 휴업을 밝힌 이후 두 번째 폐업이다. 신분이 공개된 또 다른 가해자였던 수입차 판매직원은 해고당했고 대기업 직원은 임시발령조치 됐다고 한다.

유튜브를 통한 무서운 사적 제재(私的制裁)의 힘이다. 피해자 동의 없이 올린 영상이 문제가 되자 가해자를 최초로 공개했던 유튜브는 영상을 모두 내렸으나 다른 유튜버들에 의해 피해사실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범죄사실이 연이어 추가 폭로되면서 해당 사건과 관련된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등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는 고소, 진정 건도 계속 경찰에 접수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가해자들을 향한 비난 여론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부에선 피해자의 동의 없이 제작한 영상으로 폭발적 조회수를 올리고 있는 유튜브 콘텐츠가 사적 제재가 아닌 사적 수입을 위해 밀양사건 가해자를 공개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하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역시 피해자의 일상회복이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일방적인 영상 업로드를 통해 조회수를 올리는 유튜버들이 당황스럽다며 우려를 표했다.

개인이나 집단이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결정하여 집행하는 사회적 제재가 사적 제재다. 폭행인 린치(Lynch:私刑)는 대표적 사적 제재다.

버지니아 주 베드포드의 치안판사 찰스 린치(Charles Lynch)의 이름에서 린치(Lynch)가 비롯됐다는데, 법원이 제 기능을 할 수 없었던 미국 독립전쟁 당시 치안판사 찰스 린치는 비공식 법정에서 법을 집행했다. 반역범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기도 했으나 린치 판사는 태형과 벌금형 정도의 가벼운 판결을 주로 내렸다.

세월이 지나며 찰스 린치의 비공식 법정에 대한 기억은 독립전쟁 지지자인 찰스가 반대파를 자의적으로 처벌한 것으로만 기억되어 복수를 자행한 폭도의 재판으로 왜곡되었다.

지난 2012년 12월16일,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영화를 보고 귀가하던 23세 여대생 '조티 싱'이 남자친구와 함께 버스에 탔다가 운전기사 등 6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범인들은 남자친구를 저항 못하게 구타한 후 여대생을 성폭행했는데 범행 후 쇠막대기로 장기를 훼손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버스에서 1시간 동안 유린당한 뒤 알몸으로 길거리에 버려진 조티 싱은 13일 뒤 숨졌고,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긴 이 사건을 영국 BBC 방송이 다큐로 제작했다.

범인과 변호인, 여성 인권운동가를 취재한 다큐감독 '레슬리 우드윈'은 다큐 방영에 앞서 '문제는 단순히 성폭행에 있지 않고 사회에 있었다'며 참담한 인도여성의 인권을 폭로했다. 인도 법원과 정부는 나라망신을 걱정해 국내방영을 금지시키고 외국상영의 중단까지 요구했으나 다큐 '인도의 딸(India's Daughter)'은 우여곡절 끝에 방송됐다.

사건은 버스 운전사이자 성폭행범 중 한명인 무케시의 발언 때문에 일어났다. 방영된 다큐에서 무케시는 빙글빙글 웃으며 "정숙한 여자라면 밤 9시에 싸돌아다니지 않는다. 성폭행당할 때 그녀가 조용히 받아들였다면 버스에서 내려줬을 것"이라며 모든 잘못이 여자의 탓이라 지껄였던 것이다.

그의 망발이 언론을 타고 퍼지자 격노한 인도 국민들은 공사용 중장비로 교도소 문을 부수고 들어가 수감돼있던 다른 사건의 성폭행범을 끌어냈다. 본보기로 걸려든 성폭행범은 오랜 시간 끌려 다니며 린치당한 뒤 거리에서 숨이 끊어졌는데 그래도 분이 삭지 않은 군중은 시체를 광장 높이 매달았다. 인도 정부는 흉악범 살해에 참여한 사람들을 살인죄로 사법 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으나 처벌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사적 제재는 불법적 행위다. 하지만 대중은 사적 제재에 대해 관심을 넘어 때로는 뜨거운 응원을 보내기도 한다. 사적 제재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도 강력 범죄자에 대한 통쾌한 응징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사법 불신이 심할수록 이런 현상이 더 강해진다. 사적 제재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은 공적 사법체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한참 미흡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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