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이름을 더럽힌 아버지

2024.06.18 14:52:54

류경희

객원논설위원

2007년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한국인 최초로 헌액된 박세리는 설명이 필요 없는 레전드 골퍼다. 당시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측은 "박세리는 골프 개척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다. 1998년 박세리의 US여자오픈 우승은 현재 LPGA투어를 휩쓸고 있는 많은 한국 여성 골퍼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극찬했다.

1998년 7월 미국 위스콘신주 쾰러의 블랙 울프런 골프장에서 열린 제 53회 US여자오픈 대회에서 거둔 박세리의 우승 신화는 국가적 경제위기를 겪고 있던 한국 국민에게 벅찬 감동과 용기를 준 극적인 드라마였다.

초등학교 시절 육상선수로 스포츠에 입문한 박세리는 싱글핸디 캐퍼였던 아버지 박준철의 지도로 골프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딸을 엄격하게 훈련시켰다. 10대 초반의 어린 소녀는 새벽 2시까지 훈련장에 남아 연습을 했다고 한다.

박세리가 국민의 우상으로 떠오르자 덩달아 박세리의 아버지도 조명을 받았다. TV에 출현한 아버지는 자신이 딸을 어떻게 골프 신동으로 키웠는지를 자랑했는데, 담력을 키워주기 위해 한밤중 공동묘지에서 연습을 시켰다는 발언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아동학대가 아닌가하는 이유에서다.

박세리는 연습이 끝나고 귀가하는 길에 공동묘지와 비슷한 곳을 지났던 일이 와전됐다며 공동묘지 훈련에 대해 손사래를 쳤지만 딸을 무섭게 훈련시켰을 아버지의 모습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박준철은 딸에게 골프를 시킨 이유를 질문받자 '돈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딸은 성공했고 떼돈을 안겨 주었다. 박세리는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서의 모든 돈 관리는 부모님이 하신다고 밝혔다.

자신을 도와주고 힘들 때마다 힘을 준 부모님께서 좋아하는 것이면 뭐든지 하셔야 한다며 은퇴 전까지 미국에서만 상금으로 126억 원 정도를 벌었고 추가적인 비용까지 모두 합치면 500억 원 정도를 모았는데 상금과 계약금 모두를 부모님께 드렸다고 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효녀 박세리다.

그런데 효녀 딸 덕분에 호의호식하며 노년을 잘 즐기고 있는 줄 알았던 박준철씨가 큰 사고를 쳤다. 하필이면 딸이 이사장으로 있는 '박세리 희망재단'의 법인 도장을 위조해 3천억 원대 골프레저 관광사업을 하겠다는 위조 의향서를 정부에 제출한 혐의다.

재단은 박세리 부친을 사문서위조 혐의로 고소했고, 경찰은 기소 의견으로 해당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상태다. 재단 측은 "박세리 개인이 고소한 게 아니라 재단 이사회를 통해 고소한 것이므로 부녀 갈등이라고 생각하는 건 과하다"며 박세리 개인의 판단으로 고소가 이뤄진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박세리 희망재단 이사장인 박세리 이름으로 박준철을 고소를 했으니 결국 딸이 아버지를 고소한 모양새가 되었다.

딸이 부모를 위해 마련한 주택과 대지가 최근 강제 경매에 넘어갔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눈물겨운 효심으로 맡긴 그 많은 딸의 재산을 모두 탕진했다는 것인가.

초나라의 섭공(葉公)이 공자에게 자랑했다. "우리 마을에 참으로 정직한 자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양을 훔쳤는데 아들이 그것을 고발했습니다."

이에 공자가 머리를 흔들었다. "우리 마을의 정직한 자는 이와 다르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숨겨 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 준다. 정직은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논어의 '자로'편에 전하는 이야기다.

추상적 도덕원리의 기초를 합리적 직분에서 찾은 공자는 양을 훔친 행위가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천륜에 얽힌 관계의 특수성을 예로써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공자의 말처럼 천륜으로 이어진 관계는 무조건 싸안아 덮어야함이 바른 행동일까. 지금 아버지를 고발한 박세리를 심하다 말하는 이는 한사람도 없다.

박세리 아버지는 낼 모레가 오십인 딸을 아직 13세 소녀로 생각했었나 보다. 우리를 위로했던 박세리에게 어떤 위로를 전해야할지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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