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의 '그림이야기' - 낭만과 예술의 나라 프랑스 한달살기③

2024.08.08 16:16:28

프랑스 가정식.

ⓒ이동우 작가
◇삶의 여유

올림픽 종목에 밥(음식)빨리 먹기로 메달을 주는 종목이 생긴다면? 아마 태권도, 양궁 종목처럼 우리나라가 금메달을 휩쓸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는 밥을 빨리 먹는다. 이에 비해 프랑스 사람들은 식사시간을 비롯해 모든 것이 답답할 정도로 느리다. 프랑스 음식점에서 현지인들과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밤 9시에 시작해 11시에 끝났다. 3시간에 걸쳐 다양한 음식들이 조금씩 끝없이 나왔다. 그리고 그들의 음식값은 우리와 비교해 많이 비싼 편인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번 자리를 차지하면 영업 종료까지 자리 회전율이 전무하다. 술을 마시는 것도 우리는 취하기 위해 급하게 술을 마시지만, 그들은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천천히 와인을 즐기며, 과음은 절대로 하지 않고 운전하며 귀가한다. 대리운전이 발붙일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집으로 손님을 초대하는 문화에서는 실용주의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와 달리 손님을 초대하는 것에 많은 부담을 느끼지 않으며 스파게티와 같은 간단한 음식만으로도 손님들을 초대해 와인을 즐기며 대화의 꽃을 피우는 것을 보고 부러웠다. 이렇게 삶을 즐길 줄 아는 문화가 프랑스를 예술의 나라로 만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빨리' 문화가 짧은 기간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뤘지만, 이제는 살만해졌으니 '느리게 느리게'를 우리 생활에 끌어들여 여유있는 삶을 즐길 때가 된 것 같다. 잘 노는 것도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다.

프랑스 거리의 플라타너스 가로수.

ⓒ이동우 작가
◇불쌍한 한국의 플라타너스 가로수여!

프랑스와 청주의 가로수 플라타너스는 같은 나무인가? 싶을 정도로 많은 차이점이 있다. 프랑스의 플라타너스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그 자태를 뽐내며 자라고 있는데, 청주의 플라타너스는 인간에게 잘 길들여진, 우리 속에 있는 한 마리 맹수를 보는 느낌이다. 어느 분은 해마다 가지가 전지돼 기형적인 모습으로 서 있는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닭발', '좀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같은 나무인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꽃가루가 날려 눈 건강에 안 좋다. 가지가 무성해지면 건물을 가리고 운전하는데 장애물이 된다'는 등 여러 가지를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프랑스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아 자유롭게 키우고 있는 것일까? 사고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불편함이 있지만, 이를 감수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키우는 쪽에 우선순위를 둔 것이다. 자연은 자연스럽게 놔두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무야 못 지켜줘 미안하다.

보르도 분수대.

ⓒ이동우 작가
◇프랑스 부동산 시세

3주간 숙식을 제공해준 호스트 맘 안나(입양동포)의 집은 대지 8천 평, 건평 200평(120년 된 2층 석조 건물)정도라고 한다. 넓은 초원에는 말, 염소, 닭 서너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고, 무위도식하며 잠만 자는 큰 개 2마리는 실내에서 사람들과 사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개들은 코를 심하게 골아 가끔씩 웃음을 주는 것이 하는 일의 전부다. 집 가격이 궁금해 안나에게 물어보니 시골은 도시에 비해 비싸지 않아 한화 3억3천만 원 정도 한다고 한다. 집은 오래돼 포함시키지 않고 대지 가격만 보면 4만 원×8천 평=3억2천만 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필자가 살고 있는 증평, 괴산지역은 귀촌했다가 농촌 생활에 적응 못하고 도시 아파트로 돌아가는 분들이 내놓은 전원주택(대지 200평, 건평 30평)들이 2억~3억 원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처음 지을 때는 더 많은 비용이 들었겠지만,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내놓은 매물들이다. 같은 3억 원대 돈으로 프랑스는 8천 평, 한국은 200평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무려 40배 면적 차이가 나는 것으로, 프랑스는 땅덩어리가 넓고 인구가 적어서 우리나라보다 많이 저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도시 집값은 얼마나 할까? 이틀 묵었던 보르도 시내 주택은 지상 3층, 지하 1층, 대지는 100평 정도 되는 200년 넘은 고택이었는데, 호스트맘에게 집 가격을 여쭤보니, 평생 살 집이라 시세를 알아보지 않아 알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집에 자주 드나드는 한국 젊은이에게 물어보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수십억 원은 하는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프랑스 곳곳에는 숙박업소나 수련원 등으로 리모델링해서 사용되고 있는 고성들이 있는데, 대략 20억 원 정도 한다고 한다. 이를 볼 때 우리나라 지방에 있는 아파트를 팔면 프랑스에서는 8천 평 되는 시골집에서 전원생활 할 수 있고, 서울 강남에 있는 아파트를 팔면 프랑스 지방 도시에 있는 3층짜리 집을 살 수 있거나, 고성의 성주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 프랑스 의료시설

아픈 곳이 있으면 예약하고 몇 주에서 몇 달 동안 기다렸다가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급하게 아플 경우에는 병원 응급실을 이용한다. 진료 기다리다 병이 완쾌됐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병원에 갈 수 있는 우리나라가 '의료천국'이라는 것을 느꼈다.

◇복지예산

프랑스는 대학 등록금이 저렴하고, 의료비가 공짜이고, 노후에는 연금도 나오는 복지 천국이다. 그러면 이 많은 예산을 어디에서 확보할까? 수입의 60% 정도를 세금으로 걷어 해결한다고 한다. 월 100만 원 번다고 하면 60만 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도 프랑스와 같이 이 제도를 도입해 복지 천국을 만든다면 어떤 반응들을 보일까?

2024 프랑스 한글학교 입양동포캠프 수업 모습.

ⓒ이동우 작가
◇해외 입양아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부끄럽게도 '해외입양아'라는 이름으로 어린아이들을 많이 수출했다. 수출했다는 것은 돈을 받고 팔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렴풋이 '해외입양아'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번에 입양동포 단체의 초청으로 프랑스 한달 살기를 하며, 그들을 만나보니 실상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당시 아이들은 프랑스의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가정으로만 간 것이 아니라, 정부의 혜택을 받기 위해 지원한 열악한 환경의 집으로도 많이 갔다는 것이다. 그런 집에 입양된 아이들은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말이 안 통하고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었을 어린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리고 순수한 고아뿐만 아니라 길잃은 아이와 돈벌이를 위해 남의 집 귀한 아이를 납치해 해외입양아로 보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해외로 입양아를 보내는 일은 우리가 살만해진 1980년대까지 자행됐다는 것이다. 세금고지서 한 귀퉁이와 버스터미널 벽에 붙어있던 아이를 찾는다는 수많은 포스터 속 아이들 중에도 해외로 팔려나간 아이들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무척 안타깝다. 아이를 납치해서 해외에 수출해 부를 축적한 무리들을 지금이라도 추적해 재산을 몰수하고, 죗값을 치르게 하자는 여론이 있다고 하는데, 여의도에 계신 분들이 발 벗고 나설 때가 된 것 같다.

2024 프랑스 한글학교에서 진행한 민화그리기 수업 수강생들이 직접 그린 민화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동우 작가
◇한류의 힘, 한글학교

프랑스 입양동포들은 대부분 우리말을 못한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짧은 우리말과 영어를 섞어 의사소통을 겨우겨우 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원하지 않은 이국땅에서 외국인으로 살고 있는 그들을 보면 미안하고 맘이 짠해진다. 이제 나라가 살만하니깐 대한민국 정부는 한글학교, 한불문화협회 등과 같은 단체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들 단체를 통해 늦게나마 우리글과 언어, 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위 단체에는 우리 동포뿐만 아니라 한류의 영향으로 프랑스인들이 많이 지원해 우리 문화와 글을 배우고 있다. 프랑스 아주머니들에게 한국드라마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민화 그리기 시간에 임금님 뒤 병풍 그림으로 많이 그려진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를 보자마자 우리나라 사극에 빠져있는 여성분이 '전하!'라고 소리쳐 많은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일부 중·고등학교에서는 한국어가 정식 외국어 과목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고등학교 다닐 때 영어 이외에 독일어, 불어, 중국어, 일어 중 선택해서 배웠던 기억이 되살아나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었고, 한류 문화가 전 세계에 퍼진 덕분이다. 우리 문화가 요즘 갑자기 높아진 것이 아니라 원래 우수했는데, 그동안 나라의 힘이 없어 전 세계에 알리지를 못했을 뿐이었다고 생각되었다.

단군 이래 반 만년 역사에 이런 시대는 처음인 듯 하다. 우리는 이 호황기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정신 바짝 차리고 힘을 합쳐야 한다. 조상보다 잘 살고, 후손보다 잘사는 마지막 세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정신 줄을 놓으면 일장춘몽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위안부, 해외입양아, 환향년, 공녀, 공물, 삼전도의 굴욕, 신사참배, 강제징용, 정신대, 문화재 약탈 등등, 다 나라의 힘이 없을 때 생긴 슬픈 단어들이다. 나라의 힘이 있어야만 백성과 문화재를 지켜 줄 수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낀 프랑스 한달살기였다. 힘이 있어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이동우

미술관장·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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