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송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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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소개한 통영이 낳은 '바다의 화가 전혁림'에 대해 쓰는 과정에서 인터넷 자료들을 검색하다가 '가짜뉴스'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쇼킹한 신문 기사를 보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39년 전인 1984년 12월 27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고아로 알려진 가수 송창식씨 아버지 전혁림 화백을 찾았다"는 제목의 기사였다. 의심스러운 맘을 떨구지 못하고 중앙일보 홈페이지에 들어가 검색해 보니 정식기사로 등재돼 있는 '진짜 뉴스'였다.
기사 외 더 찾아본 자료에 따르면 송창식의 어머니 안동 김씨(1928~ )는 전혁림과 헤어진 후 인천으로 가 경찰관인 송영숙(1922-1951)을 만나 결혼하고 1947년 송창식을 낳는다. 송창식의 계부인 송영숙은 6·25전쟁 중 전사하고 행상하던 어머니도 가출해 버려 송창식은 조부모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고 한다.
어린 시절 모짜르트라 불릴 정도로 음악에 재능이 있던 송창식은 공부까지 잘해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수석으로 들어가지만 지독한 가난으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그때 같이 다니던 동기가 지휘자 금난새(1947~ )이다. 금난새는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 "음악에 정말 천재였던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가난해서 매일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기억이 난다"고 송창식을 얘기하고 있다.
갓난아기를 안은 한 여인이 어색하게 엉거주춤 서 있는 한 남자와 만나는 장면이 떠오른다. '미워도 다시 한번' 같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부자지간인 전혁림 화백과 가수 송창식이 얼마나 닮았나 확인하기 위해 사진을 찾아 나란히 놓아 보니 '국화빵'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씨 도둑은 못한다'는 말들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1983년 전국을 달궜던 'KBS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에서 헤어진 가족들의 얼굴이 동시에 올라왔을 때 누가 얘기해주지 않아도 시청자들은 같은 피붙이임을 한눈에 알아봤을 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어느 음악평론가는 "가왕 조용필의 맞은편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단 한 명의 가수가 송창식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고 노래한 송창식의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은 아버지 전혁림에게 물려받은 예술적 DNA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음악과 미술은 표현 방법만 다를 뿐 같은 예술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인기 가수 중 미술을 전공한 이들이 많다.
'아침이슬', '친구'를 만들고 부른 가수 김민기는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개여울'을 부른 가수 정미조(수원대 서양화과 명예교수)는 이화여대 서양화과, 필자가 졸업한 충북대 미술교육과 선배이자 자작곡 '바람 바람 바람'을 부른 김범용, 테리우스같이 잘생긴 신성우는 중앙대학교 조소과, '섬소년'을 부른 이정선은 서울대 조소과, 복면가왕에서 큰 화재를 불러일으킨 음악대장 하현우는 배재대학교 디자인과, '애인있어요'라는 노래로 유명한 이소라는 인천대학교 산업디자인과, 벚꽃노래로 유명한 장범준은 상명대 애니메이션과를 졸업하는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외에 화투 그림으로 유명한 가수 조영남은 서울대에서 성악을 전공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예외는 꼭 있다. 필자는 대학 다닐 때 교육방송국(CUBS) 아나운서를 할 정도로 듣기 좋은 목소리를 부모님께 물려 받았다. 주변 분들은 목소리만 들어보면 노래를 엄청 잘할 것 같다고 기대하다가 노래방에 가 뚜껑을 열었을 때 많이 실망한다. 조물주는 멋진 목소리는 주셨지만 노래 잘하는 능력까지는 주시지 않은 것이다.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필자는 음악적 재능이 없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이다. 노래 잘하는 재주까지 있었다면 분명 한눈을 팔아 연예인이 되어 그림을 안 그렸을 것이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