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의 '그림이야기' - 황창배 화백

2023.10.16 17:06:51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다는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 대학교수로 역임하는 등 화가라면 누구나 부러울 만한 것을 다 갖춘 스타 작가가 있었다.

게다가 와인 광고모델을 할 정도 잘생긴 외모와 대학시절 연극으로 단련된 세련된 언변, 못하는 운동이 없는 만능 스포츠맨이기까지 했다.

신은 공평하지 않게 너무나 많은 것을 한 사람에게 줬는데, 그의 이름은 소정(素丁) 황창배(黃昌培·1947~2001)다.

미술계와 대학교수로 잘 나가던 소정은 그림에만 몰두하겠다는 생각으로 40대 중반의 나이에 충북 괴산군 백봉리 첩첩산중으로 내려온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내려오겠다는 결심을 한 소정도 대단하지만, 가장을 믿고 따른 가족도 대단하다.

앞서 열거한 여러 가지 복보다 그에게는 가족들의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이 가장 큰 복이다.

이동우 미술관을 방문한 황창배 화백 가족.

소정은 철농 이기우(1920~1993)에게 서예와 전각을 배웠는데, 스승의 딸과 부부의 연을 맺는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조금도 어렵거나 힘들지 않았어요. 갑자기 떠난 뒤 작품관리가 어려웠어요. 제가 먼저 그만두라고 했어요. 학교생활을 무척 힘들어했거든요. 어떻게 사냐고 묻기에 어떻게 해서든 먹고 살 수 있다고 큰 소리쳤죠. 자기 작업엔 철저했지만, 가족과 남들에게는 늘 다감하고 너그러웠던 사람이었어요"

그의 부인인 '황창배 미술관' 이재온 관장은 모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작가의 생전 모습을 추억했다.

이재온 관장은 현재 서울 연희동에 검이불루한 건물을 짓고 '황창배 미술관'을 꾸며 소정의 작품들을 관리하고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미술관 1층에는 아버지 대를 이어 미술을 전공한 황은아 작가가 찻집을 열어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도맡고 있다.
괴산 작업실로 내려온 소정은 든든한 아내의 지원으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그림 작업에 몰두한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넘나들며 1990년대 한국화 화단에 황창배 신도롬을 일으킨다.

한국화의 테러리스트로 불리며, 동양화 정신에 기반하면서도 비구상의 자유로움을 아우르는 분방한 회화 세계를 펼쳐낸다.

보수적인 엘리트 코스를 차례로 밟아온 이력과 달리 황창배의 작품세계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한국화 전통에서 벗어나 아크릴과 유화물감, 연탄재, 흑연가루까지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고, 물감을 뿌리거나 나이프로 긁고 종이를 오려 붙이는 등 기법도 자유자재였다.

한국화는 황창배를 기점으로 시대로 구분할 정도로 그의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한국화는 어떤 재료를 써야 된다든지 하는 식의 생각은 제가 보기에는 너무 답답한 생각이다. 밀가루로는 빵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수나 수제비도 만든다"고 말하던 그의 자유분방한 작품은 정체되고 변방으로 밀리던 한국화의 지형을 바꿔 놓았다.

1980~1990년대 대학에서 한국화를 공부한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줬는데, 필자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가 나온 'TV 미술관' 프로그램을 녹화해 반복 시청할 정도였다.

그때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는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하지만, 그의 어머니가 아들 그림 그리는 데 사용하라고 연탄재를 가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난다.

사람들은 무법, 혼합, 공존, 융합, 창의, 재미, 새로움 이라는 수식어로 그를 평한다.

지난 2017년 '김달진 미술자료 박물관'에서 기획한 20세기 한국화가 중 재조명돼야 할 작가 1위에 선정되기도 한다.

10년간 백봉리 산속 작업실에서 은둔하며 작품활동에 몰두하던 그에게 '천재는 요절한다', '선하고 유능한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일 시키기 위해 일찍 불러들인다'는 말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담도암이 찾아온다.

간호대학을 나온 부인의 극진한 병간호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 그는 50대 중반에 하늘나라로 가고 만다.

이제 그가 떠난 지 20년이 넘었다.
충북 영동에서 10년을 살다 청주로 발령을 받아 이사 온 필자는 청주 근교에 있다는 그의 체취가 남아있는 작업실이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괴산 어느 산골짜기라는 말만 들었지, 정확한 주소를 아는 이가 주위에는 없었다.

단서라고는 잡지에 소개된 기사가 전부였다.

그러다 지난해 SNS에 그의 작품세계에 관한 글을 쓰다가 이재온 관장과 연결됐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돼 있다'는 말처럼 소정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늦게나마 그의 가족들과 연결된 것이다.

그 후 서울과 증평을 오가며 소정 가족들과 교류하고, 증평 이동우 미술관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황창배 작업실을 가끔 들리곤 한다.

자칭 '황창배 팬클럽 괴산·증평지부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백봉리에 가면 20년간 주인을 잃은 빈 작업실과 작업실 뒤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양지바른 곳에 소정의 묘가 있다.

소박한 오석에 "그림 좋아하던 황창배 여기서 그림 그리다 가다"라는 소정의 글씨를 집자한 묘비가 반긴다.

그림이 안 풀리고 심란할 때 이곳을 찾으면 소정의 좋은 기를 받아서인지 맘이 편안해진다.

얼마 전에도 장마가 지나간 후 피해가 없나 가 보았다.

묘 주변에 잡초가 무성한 것이 눈에 밟혀 이재온 관장에게 "추석 명절 전에 벌초해 드리고 싶다"고 작은 뜻을 전하니 많이 감사해 한다.

집은 사람의 온기가 사라지면 흉가가 된다.

소정의 작품을 탐낸 양상군자가 방문한 후 작업실은 20년이상 방치되고 있다.

작업실을 찾을 때마다 많이 안타깝다.

소정을 닮은 작가가 입주해 예술혼을 불태운다면 하늘나라에 있는 소정은 특유의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뻐할 것이다.

이동우

미술관장·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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