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의 '그림이야기' - 이중섭과 자전거

2024.05.16 13:14:56

이중섭, 시인 구상의 가족, 1955, 32.0 x 49.5, 개인소장.

ⓒ뉴시스
이중섭의 그림 중 '시인 구상의 가족'이 있다. 1955년 대구 근처 왜관에 있는 시인 구상의 집에 머무르고 있을 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친구에게 그려준 것으로 구상이 아내와 함께 어린 아들에게 자전거를 태우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요즘 같으면 휴대폰 카메라로 간단하게 찍을 수 있는 장면을 그려서 준 것이다.

그림을 보면 소설의 삽화 같은 느낌으로, 구상은 맨발로 쪼그리고 앉아 웃으면서 세발 자전거를 타는 작은 아들과 놀아주고 있다. 구상의 부인은 멀찍이 뒤에 서서 행복한 부자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이 부인 옆에는 두 여자아이가 있는데 한 여자 아이는 뒤돌아 서 있다. 이 아이는 구상의 친구이자 소설가인 최태응의 딸이다. 행복한 보이는 아빠 친구 가족을 뒤로하고 대구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듯하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이중섭은 무표정한 얼굴로 물끄러미 구상이 아들과 노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본인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그는 아래와 같이 일본에 있는 아들들에게 수도 없이 자전거를 사 주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1

태현이, 태성이, 잘 지내나요?

오늘은 종이가 다 떨어져서 한 장만 그려서 보낼게요.

태성이, 태현이 둘이서 사이좋게 보세요.

요 다음엔 재미있는 그림을 한 장씩 그려서 편지와 함께 보낼게요.

태현, 태성, 둘이서 사이좋게 아빠를 기다려 주세요.

아빠가 가면 자전거 사 줄게요.

-편지2

태현이에게

멋진 아들 태현아 편지 고마워요.

덕분에 아빠는 더욱 더 힘을 내어 열심히 그림을 그려요.

엄마랑 동생이랑 같이 보았던 영화 재미있었나요?

아빠가 나중에 한 달쯤 지나서….

도쿄에 가면 꼭 자전거 사 줄게요. 마음 놓고 건강하게 공부도 열심히.

엄마랑 태성이와 사이좋게 기다리고 있어요.

아빠는 하루 종일 태현이와 태성이와 엄마가 보고 싶어 견딜수가 없어요.

곧 만날 생각을 하니…. 아아, 아빠는 너무 즐거워요.

편지지 한 귀퉁이에 자전거까지 그려 위와 같은 편지를 여러 통 보내지만, 그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한다. 이중섭은 자전거를 타고 노는 친구 구상 부자가 많이 부러웠을 것이다. 악수하듯이 내민 이중섭의 손이 구상 아들의 손 끝에 아슬아슬하게 닿아 있는 것은 봤을 때, 자신의 아들들을 많이 그리워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속 이중섭의 모습은 가장 크게 그려져 있는데, 이런 불균형적인 구도를 통해 당시 이중섭이 처해 있던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중섭, 아버지와 장난치는 두 아들, oil on paper, 31×48.5cm, 1952-1953, signed on the lower left.

ⓒ 뉴시스
한국전쟁 중 피난지에서 처자식을 건사할 수 없자 일본 처가로 떠나 보낸 후 이중섭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견디기 어려운 외로움에 시달리면서 가족과의 재회를 꿈꿨다. 이중섭은 친구 구상 가족들의 단란함을 볼 때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외로움이 컸을 것이다. 그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가족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냈다. 처음에는 언제든 곧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즐겁고 다정다감한 편지를 많이 썼다. 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아들을 염려하며, 그림을 곁들인 사랑스러운 편지들을 많이 남겼다. 그러나 1955년 중반 이후 점차 절망 속으로 빠져들면서 편지를 거의 쓰지 않았으며, 심지어 아내로부터 온 편지를 읽어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는 서울 미도파 백화점 전시회와 구상이 주선해 준 대구 미국 공보원 개인전을 통해 일본으로 떠나 보낸 처자식을 만나러 갈 여비를 마련할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작품은 어느 정도 팔렸으나, 구매자가 돈을 주지 않고 작품을 빼돌리는 통에 재미를 못 본 것이다. 요즘도 전업 작가로 산다는 것이 힘든 일인데, 전쟁 직후에는 오죽했을까 짐작이 가고 남는다. 거기다 한국은 그 당시 세계 최빈국이었다. 전시회 수익이 없자 이중섭이 일본에 갈 길은 더 멀어졌다. 그의 심중은 실망과 한탄으로 가득했고,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말수도 크게 줄어든다.

서울로 돌아온 뒤 이런 절망감이 결국 정신분열로 악화돼, 화가 이중섭을 끝내 죽음으로 몰고 갔다. 황달, 정신병, 거식증 등이 겹쳐 안타깝게 39세라는 한창 나이에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무연고자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다. 죽은 지 사흘 후에나 문병 온 선배에 의해 그의 죽음이 알려졌다고 한다.

돈이 없어도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돈이 너무 많아도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불행하게도 이중섭은 돈이 없어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가족과 헤어졌고 죽음을 맞이한 작가다. 이중섭의 남아있는 그림들은 제대로 된 캔버스에 그려진 것은 없고 종이나 담배갑 속 은박지와 같은 허접한 재료에 그려진 것이 대부분이다. 그의 그림들은 고독과 그리움을 표현한 몸부림의 산물인 것이다. 빵과 재료비 걱정을 안 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필자는 치열하게 살다간 선배 화가 이중섭을 생각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자꾸 든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고,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겨야 되겠다는 다짐을 하며 오늘도 작업실인 이동우 미술관에 출근한다.

이동우

미술관장·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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