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의 '그림이야기' - 천경자 '미인도'

2022.10.13 17:37:27

오래전 군 복무가 힘들었을 때, 제대한 남자들은 본인이 근무한 군부대를 향해서는 소변도 안 본다는 우수갯소리가 있었다. 기억하기조차 싫다는 것을 강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유명여류화가 중에 미국으로 떠나 살면서 대한민국 쪽을 쳐다보지도 않을 만큼 맘고생 하다가 생을 마쳤을 것 같은 분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천경자 화백이다.

천경자 화백은 전남 고흥 출생으로 우리나라 동양화 채색화 분야의 대가이다.

일제강점기에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 다니면서 곱고 섬세하게 표현하는 채색화기법을 배워 1954년부터 20여년간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에서 후학들을 길러낸다.

그녀는 꽃이나 여인을 소재로 한 그림을 주로 그렸으며 주요 작품은 '생태'이다.

이 '생태'시리즈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를 통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 작가로 작품 90여점을 시립미술관에 기증하기도 한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상의 묘사를 넘어 생태적인 색채감각의 순수조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해외여행이 쉽지 않았던 시절인 60년대와 70년대에 유럽과 남태평양,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그 곳에서 얻은 이국 풍물을 소재로 독특한 색감과 형태미를 그림으로 풀어낸다.

오늘 얘기하려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의 집에 있다가 국가에서 압수해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을, "미술관측은 진품이라 하고, 천경자 화백은 내가 그린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미인도 사건'이다.

전시회 포스터로 제작된 '미인도'에 대해 화가 자신이 위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위조범이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한국화랑협회에서도 덩달아 진품이라고 감정을 내린다.

자존심을 먹고사는 작가에게 '자신의 그림도 몰라보는 화가'라는 견디기 어려운 불명예를 안겨준 것이다.

천경자는 창작자의 의견을 무시한 채 내린 감정 결과에 대해 회의를 표하며 활동 중단을 선언한다.

"내 작품은 내 영혼이 담겨있는 핏줄이나 다름없습니다.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결코 그 그림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없습니다.

붓을 들기 두렵습니다.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 채 가짜를 진짜로 우기는 풍토에서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1991년 절필 선언하고. 딸들이 있는 미국으로 떠나고 만다.

그 후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뉴욕에 있는 큰딸 집에 머무르다, 2015년 10월에 생을 마감했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 온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92세였다.

2016년 천경자 화백의 유족은 국립현대미술관장을 포함한 5명을 저작권법 위반혐의로 고소하며 "미인도가 위작이 아니라 진품이란 것은 어머니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밝힌다.

서울중앙지검은 세계최고감정기관인 프랑스 뤼미에르테크놀로지(Lumiere Technology)의 감정팀을 초청해 '미인도'를 감정평가한다. 감정 결과, 뤼미에르 감정팀은 '미인도'에 대해 위작이라고 감정하지만 검찰은 참고자료로 사용하겠다고 밝히면서, 미인도는 진품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수사과정에서 "담당검사가 전화를 걸어 이거 그냥 진품이라고 보면 어때요?"라고 말했다고 검찰 측이 선정한 감정위원 중 한 사람은 당시 미인도가 검찰이 진품이라는 결론을 요구했다고 증언한다. 이에 대해 A검사는 "그런 사실이 전혀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라고 오리발을 내민다.

이에 유족측은 "검찰이 불법적인 수사를 통해 미인도가 어머니의 작품이 맞다는 결론을 내려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3천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작가들은 체계적인 작품 관리를, 미술관련기관에서는 부실한 작품감정시스템의 개선이,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는 미술품 비자금 조성 감시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한 개인과 국가와의 줄다리기, 이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이다.

우리는 왜 태어나고 자란 나라를 조국(祖(할아비)國), 혹은 모국(母(어미)國)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 사건은 조만간 '신비한TV서프라이즈'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동우

충북미술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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