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의 '그림이야기' - 그림 임자는 따로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2023.05.11 17:16:53

사례1

동양화가 Y화백의 얘기다. 70년대 초에 어느 화상(畵商)이 민화 병풍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림이 시원찮아 돌려보내려고 했다가 꽃·새·바위·나비가 그려져 있는 것을 그림 그리는 데 참고나 하려고 구입했다. 고가가 아닌 그림이라 화실 구석에 세워놓았는데, 어느 날 Y화백은 고화(古畵) 전문가들이 횡재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한 사람이 시골에서 민화 병풍을 구매했는데 병풍 속에서 당채(唐彩)로 그려진 고가의 그림이 나왔다는 것이다. '당채'라는 것은 중국 당나라 때 만들어진 고급물감을 뜻한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Y화백도 지난번 구매한 병풍 속에도 좋은 그림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화실로 달려온다. 구석에 세워둔 병풍을 꺼내 면도칼로 한 꺼풀 벗겨내니 밑에 채색이 보였다고 한다. 표구 전문가를 시켜 물칠하면서 시원찮은 민화를 벗겨내니, 속에는 장지에 당채로 그린 민화가 나왔다고 한다. 화려한 당채색이 변하지 않고 고태가 나는 것이 그림의 기법으로 봐 대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걸작을 얻은 것이다. 옛날에는 병풍 틀이 귀해, 병풍을 사용하다가 때가 묻고 오래되면 그림에 새 종이를 붙여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사례2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일본에서 외교사를 전공한 박 모 교수는 희귀본 찾는 재미로 일본 고서점을 들렸다고 한다. 책들을 둘러보다가 '청전화첩(靑田畫帖)'이라고 쓴 얇은 묶음 책이 눈에 들어왔다. 표지는 낡았으나 대여섯 장의 수묵화가 봐줄 만했다고 한다. 고서점 주인에게 청전(靑田)이 누구냐고 물으니 "아마 제국시대 재야 화가인 것 같다"고 했다. '청전 이상범(靑田 李象範)'이 한국에서 유명 작가인 것을 박 교수나 서점주인은 모른 것이다. 박 교수는 한국 산수화를 일본에서 찾았다는 기쁜 맘에 8천 엔을 주고 화첩을 사 온다. 귀국한 뒤 한 선배 교수에게 화첩 자랑을 했다고 한다. 그 선배는 그 화첩을 보자마자 "자네 요즘 책값이 궁하지·"라면서 1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찔러주며 화첩을 뺏다시피 가져간다. 얼떨결에 화첩을 내주고 만 박 교수는 한참 세월이 지난 후 인사동 화랑가를 걷다가 눈에 익은 표구 되어 있는 산수화(山水畵)를 보게 된다. 선배 교수에게 넘긴 화첩에 있던 산수화가 분명했다. 화랑 주인에게 그림값을 물으니 "한 장당 600만 원에 샀소, 청전 이상범 그림이니 싸게 산 편이죠"
사례3

지방에서 사업하는 이 모 사장은 서울에 올라오면 고미술상을 기웃거리는 취미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자주 들리는 단골 고미술상에 들리니 그곳에 물건을 대주는 거간꾼 서너 명이 주인 없는 가게에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이 가지고 온 물건 중에 두꺼운 인명사전이 눈에 들어왔다. 두꺼운 사전을 넘기다가 손바닥 두 개 크기(2호)의 때 묻은 그림이 끼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한눈에 물건임을 알아본 이사장은 우선 쓸모없는 책값부터 물어봤다. "책값은 5만 원이오. 그리고 책은 두께로 값어치를 매기지만, 그림은 그것과 상관없이 치는 거요, 이 그림은 4만 원은 주셔야겠소" 책값 5만 원, 책 속에 끼어있는 종이 그림 4만 원 해서 총 9만 원을 불렀다고 한다. 군소리 없이 이 사장은 9만 원을 내던지고 꽁지 빠지게 나와 전문감정인에게 종이 그림을 감정 의뢰하니 예상대로 '이중섭'의 진품이었다고 한다. 거간꾼이 이중섭의 그림을 못 알아보고, 고미술상 주인이 자리에 없었던 것이 행운을 부른 것이다. 현재 이중섭의 그림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매매되고 있다.
사례4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필자가 우암산자락 단독주택 관우재(觀牛齋)에 살 때 이야기다. 집에서 개 한 마리를 키웠는데 우리나라 진돗개와 러시아 사냥개 사이에서 난 사나운 개였다. 좀 순해지라는 의미에서 이름을 '순덕이'라고 지어줬다. 평소 집 안에만 갇혀있으려니 야생성(野生性)을 참기 어려운지 밖으로 나가자고 늘 아우성쳤지만 지나가는 산책객들에게 민폐가 될까 봐 밖에 나가는 것을 자제해 왔다. 그런데 일이 되려는지 그날은 나가고 싶은 맘이 갑자기 들어 큰맘 먹고 대문을 열었다. 관우재 옆 상가건물에는 카페가 하나 있었는데 리모델링을 한 참 하고 있었다. 공사 현장에서 뜯어낸 잡다한 쓰레기들이 우암산 순환도로에 수북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쓰레기 더미를 피해 지나가다가 한 마리 매 같은 필자의 눈이 쓰레기들 속에 섞여 있는 캔버스들을 놓치지 않았다. 캔버스들을 들쳐 보니 A작가의 10호짜리 작품 5점이었다. 평소 작품이 좋아 갖고 싶었지만, 고가라 엄두도 못 내고 있었던 작품들이었다. 카페에 걸었던 작품들이 오래되다 보니 먼지가 쌓인 작품들이 유명 작가분의 것인 줄 카페 주인이나 공사업자는 몰랐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른 뒤ᆢ A작가와 식사하게 된 자리에서 작품 습득 사연을 조심스럽게 얘기하니 "다 이 선생 복이야. 작품 잘 간수하시게"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본인의 작품이 쓰레기로 버려졌다는 섭섭한 맘을 짧은 순간이었지만 눈빛을 통해 읽을 수 있었다. 필자도 그림을 잘 만나 횡재했지만 그림 들도 주인을 잘 만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필자를 못 만났으면 폐기물처리장에서 한 줌 재가 되었을 것이다.

1970년에 개최한 박수근 화백의 전시회에서 유화 1호 그림이 1만5천 원에서 2만 원 정도에, 연필 스케치 작품은 3천 원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대략 지금과 50년 전의 화폐 가치가 150배 차이가 난다고 쳤을 때 박수근의 70년대 10호짜리 그림은 지금 가치로 3천만 원 정도다. 지금 생각해도 꽤 비싼 가격이다. 그런데 지금은 박수근 화백의 그림은 호(엽서 한 장 크기)당 2억 원으로 그 그림이 지금은 20억 원이 넘는다. 66배가 오른 가격이다. 여러분들도 지금이라고 늦지 않았으니 그림에 투자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 주변에는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처럼 될 작가들이 많이 있다. 그것을 찾는 것은 여러분의 몫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고, 그림은 아는 사람만이 주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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