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2018.03.13 12:54:54

장정환

에세이스트

[충북일보] 오랫동안 강물을 바라보며 살았다. 새벽마다 창을 열면 강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매일 아침 다른 색조로 부풀어 오르는 태양이 강과 화해하려는 듯 물빛으로 스며들었다.

안개 덮인 강의 실루엣, 가녀린 바람에도 출렁이는 물결, 발그레한 석양녘의 강, 물 냄새 배어있는 강을 바라보곤 했다. 그 강가를 거닐고, 달리며, 하이킹을 했다.

유역(流域)이라는 말을 이곳에 살면서 실감했다. 물길 닿는 유역마다 인류의 4대문명이 세워졌듯이 물길 언저리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강은 생명을 기르는 젖줄, 상처를 어루만지는 눈물이며, 사람살이의 기나긴 시간을 끈질긴 순환의 힘으로 함께한 성스러운 모성이었다.

일찍이 헤라클레이토스가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내가 깃들어 사는 강이야말로 '만물은 항상 새롭게 흐른다.'는 명제의 은유였다. 게다가 강은 사람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역사의 상징이라고 할 만 했다.

창가에서 바라보면 금강은 동에서 서로 흘렀다. 지도를 펼쳐보니 전북 장수 뜬봉샘에서 발원한 금강은 역수(逆水)의 태극형으로 휘어져 북행으로 거스르는 물길이었다. 하지만 강물은 동고서저의 지형에 따라 결국엔 서해안의 군산만으로 빠지는 순연한 물길로 마무리되었다.

그 강물의 흐름을 당연시 했었다. 그것은 그냥 자연의 순리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자연스러움이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다가왔다.

몇 억, 몇 만 년 동안 자연스레 흐르던 물은 더 이상 흐르지 못하고 멈춰 섰다. 인위적으로 물길을 막아버린 전국의 16개 보(洑)중의 하나가 바로 내 눈앞에 버티고 있었다.

수 많은 계절이 바뀌는 내내 보로 막혀버린 물길 주변을 서성였다. 나는 고여 있는 물이 썩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침묵하는 신음소리를 들으며 심연처럼 가라앉는 절망으로 답답했다.

가둬버린 물에서는 생명이 제대로 살아갈 수 없었고 그나마 살아남은 생명은 기형으로 변해갔다. 가둔다는 것, 막아버린다는 것, 그것은 억압과 배제, 통제와 금지의 동의어였고 폭력의 이데올로기였다.

생명이 마비되어가는 이 질곡으로 인해 강가를 걸을 때마다 숨이 막혔다. 그런데 어느 날 거짓말같이 다시 물이 흘렀다. 물을 사람이 가뒀으나 그 물길도 사람이 열었다. 이곳에서 산지 8년만이었다.

둑을 열고 물꼬를 트니 가두어진 물은 말 그대로 해방되었다. 검은 개흙이 덮여 숨을 쉬지 못하던 강바닥이 맨살을 드러냈고, 한두 달이 지나니 금빛 모래층이 제 모습을 되찾으면서 햇살에 반짝거렸다.

모래알들이 반짝이는 강을 만나러 시간이 날 때마다 강변을 기웃거렸다. 새 길을 따라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경쾌하게 들렸고, 바닥이 보이는 강물에서 물고기들이 발랄한 몸짓으로 떼 지어 노닐었다.

오염된 물에 적응되어 혼탁한 부유물을 먹고살던 물고기들은 맑아진 물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갔다. 그것들은 계속해서 썩은 물을 요구할 것이지만 새 물길에 밀려 이내 사라질 종이었다.

다시금 힘차게 호흡하는 강물을 언제든 찾을 것이다. 그곳에서 물결의 리듬에 맞춰 팔딱이는 물고기를 만날 것이며, 물살이 햇빛과 조응하는 우아한 강의 흐름도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금강이 북쪽으로 역수하다가도 군산만 하구로 기어이 흘러내리듯, 물은 결코 멈추거나 거슬러 오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것이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그 위대한 확신을 향해, 당당해진 강물이 드넓은 바다 쪽으로 도도히 흘러가는 것을 오래도록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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