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 만세

2018.04.24 13:25:49

장정환

에세이스트

삼촌이 있는 애들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아들 둘이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그놈들은 삼촌 곁에서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았다. 큰 아들이 태어날 때 아들의 외삼촌이 까까머리 중학생이었으니 거의 같이 자랐다고 봐도 된다.

삼촌과 조카로서의 그들의 관계를 지켜보면서 '나도 삼촌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불쑥 불쑥하곤 했다. 물론 나도 외삼촌이 있지만 너무 멀리 살고 있었다.

애들 삼촌이 대학생이 되고 대학원생을 거쳐 박사과정 공부를 할 때까지도 삼촌은 만화책을 참 꾸준히, 부지런하게도 읽었다. 그 왕성한 만화 애독자를 애들은 많이도 따랐다.

박사공부를 하면서도 만화방에서 꼬박 밤을 새울 수 있는 만용과 기벽의 실천가를 애들은 우러러 숭배했다. 애들이 외가를 갈 때면 발 한 군데 디딜 틈 없이 어질러진 삼촌 방에서 함께 만화책을 보며 빈둥거리면서 킬킬거렸다.

만화책을 열정적으로 읽는 중에도 애들 삼촌은 서른 중반에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 선생이 되었다. 같은 대학에 입학한 큰 아들은 속으로 얼마나 쾌재를 불렀을까. 삼촌의 연구실을 방문하는 날은 용돈이 필요할 때였으리라. 엄마 자동차를 몰래 타고 다니던 아들은 삼촌의 주차권을 뺏어서는 제 것인 양 호기롭게 쓰기도 했다.

껄렁거리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길 좋아하던 고등학생 작은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를 내서 경찰서에 불려갔을 때 밤늦게 경찰서를 들락거리며 사건을 해결한 것도 애들 삼촌이었다. 야단맞을 것이 두려워 차마 아빠에게는 말 못하는 일들마다 애들은 삼촌만 찾았다.

그러던 애들 삼촌이 지천명의 나이가 되고 삼촌의 딸도 대학생이 되었다. 아들 둘은 나보다 삼촌 딸에게 두 배나 더 많은 용돈을 주곤 했다. 그렇게 해도 삼촌에게 받았던 용돈이며 보살핌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듯 쑥스러워했다. 두 아들도 이제 예전의 삼촌 나이가 되었고, 누군가의 삼촌이 된 것이다.

요즘 나는 세상의 모든 애들이 삼촌이 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엄마가 쌍심지를 켜서 단속하는 불량식품을 엄마 몰래 실컷 사주거나, 아직 미성년자인 조카들을 술 마실 때 데려가서는 쓴 소주를 홀짝거리게 만들기도 하고, 야한 사진을 돌려보며 서로 키득대기도 하는 나쁜 삼촌 말이다.

공부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질 때 무릎부분이 튀어나온 트레이닝 차림으로 근처 당구장으로 손목을 잡아끄는 삼촌, 혹은 특수부대원처럼 독서실에서 구출하여 밤늦도록 같이 땀 흘리며 축구를 하고선 엄마에게는 깔끔하게 알리바이를 만들어주는 삼촌, 까불거리는 친구들을 흠씬 두들겨 패줘도 하나도 두려울 게 없이 든든한 삼촌, 눈을 부라리며 야단쳐도 전혀 무섭지 않은 헐렁한 삼촌 말이다.

쉬는 날 만큼은 밤새도록 만화책이나 무협지를 읽거나, 하루 종일 볼링을 치고 스키를 타도 당당하게 박사가 되고 대학교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삼촌, 힘 있는 정치가나 판사나 변호사, 의사인 삼촌 친구들보다도 더 자랑스럽게 무한 신뢰받는 삼촌, 한 달 내내 방 청소를 하지 않고 지내도 위생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임상으로 보여주는 더러운 삼촌, 온갖 책이며 서류며 옷가지들이 엉켜 있어도 필요한 것을 순식간에 찾아내는 천재 삼촌 말이다.

이 세상의 애들이 '나쁜 삼촌' 하나씩만 있어도 난 그들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게다가 삼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 살만한 곳이 될 터이고 세상은 구제받으리라 확신한다.

그러니 고모, 이모, 형, 누나, 아버지 어머니들이여 분발하시라. 아니면 차라리 모두 삼촌이 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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