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달콩 잘 살아라

2015.11.03 14:05:46

장정환

에세이스트

어떤 말을 해주어야 내 맘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내가 살아가면서 체득한 꼭 한마디의 말을 한다면 애들이 공감이나 할 수 있을까?

큰 아들이 갑자기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예식에서 주례 대신 아버지의 덕담을 듣고 싶다고 부탁해왔고, 난 내가 들려주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고심해야 했다.

난 한 번도 애들에게 결혼을 종용하지 않았다. 혼자 살기도 벅찬 시대이고 결혼은 자기뿐만 아니라 배우자의 인생, 새로 태어날 자녀의 삶까지 책임져야하는 일이다.

남자라면 병역을 마쳐야하고, 취직을 해서 밥벌이도 해야 하고, 살림을 마련할 최소한의 자금도 확보해야 한다.

그야말로 인륜지 대사라고 부를 만큼 한 사람의 삶에 있어 혼인은 가장 중대한 통과의례임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지금은 3포시대라고 하지 않던가.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건네는 말들이 무성했다.

요즘은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로 애들의 결혼생활을 분류하는 모양이었다. 부모의 재력으로 자식들의 삶이 규정되는 현 세태의 어려움을 풍자하는 말일 테지만 난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로 정의된 결혼생활이 내게는 호사가의 잡담으로만 들린다.

난 대학졸업도, 병역도, 취업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을 했고, 지금의 큰 아들을 낳았다. 월 4만원의 단칸방으로 신혼살림을 시작할 때 친구 몇몇은 중형아파트에서 안락하게 출발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작은 별거 아니었다. 출발이 융성하다고 과정이 윤택하고 결말까지 화려하게 보장되는 게 아니었다. 인생은 결코 단순하지도 않거니와 짧지도 않은 것이다.

사글세방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이 대략 10년쯤 지나니 친구들과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고, 또 10년, 그 다음 10년을 지나면서 난 삶의 진정성과 우직함을 믿게 됐다.

결혼생활은 우보천리(牛步千里)와 같다. 결혼생활은 한 걸음 한 걸음 두 사람의 우직한 진정성으로 쌓아가는 기나긴 세월의 과정인 것이다.

난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살림만 준비하게 하고 양가 부모에게 부담을 주는 허례와 허식 모두를 생략하기로 했다. 애들에게 새 출발을 축복해주는 쪽으로만 집중하기로 했다. 다행히 사돈댁의견도 나와 일치하였고 마음이 통하는 사돈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결혼식을 치른 후 풍족하게 뒷바라지 못한 내게 애들의 신혼생활이 항상 애틋함으로 남았다.

하지만 며칠 전 애들의 자그마한 신혼집에 잠시 들린 후 나는 이제 안심해도 될 것 같았고, 애들이 더욱 사랑스러워졌다.

좁은 방안에 자기들이 직접 고른 아기자기한 가구와 그릇을 배치하고 벽시계도 걸고, 예쁜 사진액자도 꾸며져 있었다. 욕심내지 않고 스스로 가꾸어가는 소박한 삶의 재미가 곳곳에서 폴폴 묻어났다.

모든 것이 구비된 상태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살아가는 일의 소소한 기쁨을 애들은 아주 소중하게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신혼여행 떠날 때 내가 건네준 쪽지 한 장이 냉장고 벽면에 떡하니 붙어있었다.

"알콩달콩 잘 살아라, 재미있게 사는 것이 성공한 삶이다"

재미있게 사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이 된다는 내 덕담의 의미를 애들이 이해한 것 같았고, 또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실한 믿음이 그때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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