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이타카'를 찾아 먼 길을 떠나지 않는다. 산책길에 대전에서 당진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갑자기 든 생각이다.
새벽녘이나 한낮, 어둠이 내린 저녁이나 칠흑 같은 밤에도 고속도로 위에는 언제나 차들이 질주했다. 오늘도 어디론가 달려가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며 난 그 행렬 속에 몸담고 길 떠나던 시절을 떠올린다.
난 도저히 나와 화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새벽기차에 오르거나 밤 버스를 타고 어디로든 떠났다.
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 불화의 젊은 시절은 무작정 떠난 후에야 겨우 화해한 나를 데리고 돌아올 수 있었다.
재수시절이었다. 그날도 학원 강의실에서 내 답답한 젊음을 견딜 수 없었다. 서울에서 밤늦게 떠난 후 부여에서 갑사행 마지막 완행버스에 몸을 실었을 때 차창으로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버스 안에는 두어 명의 촌로들과 나 뿐이었다.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덜컹거리는 흔들림에 몸을 맡겼다.
차창으로 드문드문 보이던 불빛이 내 눈동자가 되어 나를 바라보았고, 내 얼굴이 차창의 빗물에 가뭇없이 사라졌다가 이내 나타나곤 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어둠에 잠긴 한적하고 쓸쓸했던 버스대합실, 비 내리던 스산한 가을 속에 홀로 서있던 나를 향해 난 내게 묻고 또 물었다. '넌 왜 여기에 서있는가·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묻은 여인숙 방벽을 바라보며 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새벽 일찍 서울로 돌아온 후 그날로 짐을 싸서 고향집으로 내려갔고 난 방문을 걸어 잠갔다.
그날부터 한 달간은 내 평생 가장 많이 공부한 시절로 남을 것이다. 밥 먹고 잠자는 몇 시간을 빼고는 공부 외에는 아무생각 없이 지낸 시간들, 오롯이 나를 잊고 지낸 유일한 시간이었기에 내겐 강렬한 추억으로 기억된다.
가끔은 어둠속에서 나를 스쳐 가는 텅 빈 버스를 바라볼 때면 스무 살의 젊은 내가 하염없이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럴 때면 청춘의 나를 향해 마구 손 흔들어주고 싶다. 잘 견뎠다 내 젊음, 안녕 내 청춘아!
그 이후에도 난 몇 번의 야간열차와 여객선을 탔고, 정처 없는 밤 버스를 탔다. 발길 이끄는 대로 길을 잡아 강원도 동해 포구에서, 서귀포 해안에서, 종착역 목포나 부산의 태종대에서 불화하는 나를 달래서 돌아오곤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난 아무 곳으로도 떠나지 않았다.
진실로 나를 눈물 흘리게 하고 웃게 했던 생애의 어느 순간들, 이해할 수 없는 삶의 혼곤함이 문득 납득될 때가 있다.
그것은 나와 불화하는 것이 인생이고, 삶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과정이 인생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였다.
그러니 더 이상 나와 화해할 필요도 갈급하게 답을 찾을 절박함도 없게 되었고, 세상의 모든 불화와 질문들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납득한 거였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고 물때가 변할 때 난 갑자기 길을 나서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의미 찾기가 아닌 오로지 살아있음의 황홀한 감각만을 느끼기 위해서 떠나게 될 것이다.
내가 찾아가는 '이타카'가 그 어느 곳도 아닌 '지금 여기'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