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바위 얼굴의 수학

2016.07.19 15:25:14

장정환

에세이스트

"수학이란 물의 흐름과 같은 거야. 수학이란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건 아름다운 풍경 같은 거야."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읽으면서 주인공 '덴고'가 하는 말이 머리에 쏙쏙 박혔다.

수학은 그냥 그곳에 있는 것이라고, 뭔가로 치환할 필요조차 없는 그것이 수학이라고, 그래서 수학 속에 있으면 자신이 점점 투명해 진다는 문장을 읽는 순간 난 불현듯 어느 한 얼굴을 떠올렸다.

'큰 바위 얼굴'로 자연스레 불릴 만큼 참 머리가 큰 친구였다. 볼일이 있어 잠시 사무실을 찾았을 때 난 책상 위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우리 세대부터 자식세대까지 이 땅의 수많은 고등학생들을 괴롭히던 불후의 명작(?), 홍모씨의 '수학의 정석'이 놓여있는 거였다.

"이 수학책은 뭐에 쓰는 물건인고?" "그냥 취미로 수학문제를 풀고 있어요. 허허허 재미있잖아요." "재미삼아 수학문제를 푼단 말이지? 역시 괜히 머리가 큰 게 아니야." 난 껄껄 웃으면서도 진기명기를 본 듯이 신기하고 흥미로워했다. 그 친군 고등학교, 아니 대학교를 졸업한지도 20년이 훨씬 지났고 벌써 머리숱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 터였다.

취미로 방정식과 미분 적분문제를 풀던 그 친구는 그 후 조용히 부장으로 승진하여 본사 해외사업부서에서 요직을 맡았다. 마침 '큰 바위 얼굴'이 있는 독신자 숙소의 룸메이트가 입사동기여서 가끔 안부전화를 하게 되었다.

"우리 큰 바위 얼굴 부장님은 아직도 수학문제 풀고 계시나?" "요즘은 수학은 안하고 다른 걸 하는 것 같던데." 내 동기도 수학정석 이야기에 아주 즐겁게 하하 웃었다. "내가 무슨 일 있어도 큰 바위 얼굴 부장님이 충북으로 되돌아가면 꼭 한 번 보러 가리다"며 내게 기꺼이 약속하는 거였다.

수학이라면 내 머리에 쥐가 나게 하던 과목이었다.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과 큰 바위 얼굴 부장님의 '수학의 정석'추억이 내게 수학에 대한 친밀감과 호기심이 생기게 했다.

CBS PD인 정혜윤 작가가 수학자 괴델에 대해 인용한 글을 읽었다. 그 정의가 수학적인 사실명제마냥 명쾌했다. "괴델에게 수학적 정리가 진주라면 증명방법은 진주조개이다. 진주에 비유하는 것은 그 정리의 광채와 명료성 때문이며 진주조개에 비유하는 것은 그것의 내장에서 신비하고도 단순하게 보석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후에 난 이 멋진 '수학적 정리'를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을 누렸다. 함께 근무하는 직원 책상에서 색색의 형광펜과 빨간 볼펜으로 빼곡히 메모한 중국어 책을 보게 되었다. 아침 근무 전, 점심시간, 하루에 꼬박 두 시간동안 중국어를 수강하는 이 직원은 벌써 2년째 매일 중국어를 공부하는 중이다.

이제 점심시간이 되면 몇몇씩 중국어 공부, 기타 동아리와 탁구 동호회 활동을 위해 뿔뿔이 흩어지고 사무실엔 나만 홀로 남는다. 사실 이때가 내겐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손주육아로 집에서 못 본 책을 집중적으로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모두들 그렇게 공부하고 익히며 산다. 아니 사는 것 자체가 공부이리라. 저마다 기를 쓰며 증거 하는 것, 그건 우리의 존재를 가장 확실하게 확인하고 증명해 가는 방법일 것이다. 저마다를 명료하게 빛내줄 진주를 품고서, 혹은 더 이상 치환할 필요가 없는 투명함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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