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2016.08.02 14:44:20

장정환

에세이스트

성골끼리 뭉치자. 그렇게 삼부자는 의기투합했다. 올해 휴가는 갓 5개월 지난 손주 때문에 자연스레 생략하는 것으로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그래도 큰아들은 약식여행정도는 하자며 먼저 남자들만 1박으로 떠나자고 했다.

장씨 성골들만의 여행이 확정되자 아내는 김씨 성골끼리 뭉칠 거라며 장모와 1박 여행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우린 각자 성골끼리의 여행을 떠났다.

며느리가 인사말을 건넸다. "아버님, 다음에는 우리아기도 그 모임에 데려가 주세요." 손주놈을 장씨 성골로 끼워달라는 며느리의 당당한 주장에 난 웃으며 말했다. "그놈 하는 거 보고." 며느리는 우리가 떠난 즉시 박씨 성골들과 집에서의 1박을 준비할 거였다.

순수혈통의 우리 성골 삼부자는 앞으로 펼쳐질 자유로운 시간에 기분이 한껏 고조되었다. 일단 저녁식사는 꿩 코스요리를 푸짐하게 먹고 2차는 맥주한잔하고, 3차는 노래방에 갔다가 아침에는 노천 온천욕을 한 뒤 탁구 게임을 하자. 그리고는 물 좋은 계곡으로 가는 거다. 뭐 그 정도로 간략하게 일정을 잡았다.

아,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게 영 생각대로 일이 술술 풀리지가 않았다. 막내아들은 마무리 지을 일이 많이 남은 모양이었다. 강원도 기업도시 건설현장에서 공사감독을 하는 작은아들은 "조금만 있으면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메시지를 수차례 보내면서도 출발을 못했다. 숙소에서 큰아들과 나는 점잖게 TV시청이나 하면서 또 점잖게 표정관리를 하며 킁킁거리며 헛기침만 해대었다.

저녁식사시간이 훨씬 지났다. "아버지, 식사를 하면서 막내를 기다릴까요· 밥 먼저 먹으라고 연락 왔는데, 쩝" "아들아, 코스요리를 먼저 먹으면 나중에 오는 놈은 뭘 먹나· 그래도 우리가 의리가 있는데 기다려서 같이 먹자."며 난 또 점잖게 대답하며 큰아들에게 점잖은 표정으로 씩 웃어주었다.

막내는 저녁 10시 가까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헐레벌떡 차를 몰고 온 막내는 "샤워부터 하고요. 오늘따라 일이 많이 늦어졌어요. 그래도 마무리는 하고 와야 해서......"라고 하면서도 넉살좋게 킬킬거렸다.

우리 성골 삼부자는 거의 모든 식당이 문을 닫을 즈음에 저녁식사를 하러 나갔고, "시간이 늦어서 요리가 안돼요,"라는 식당사장님의 말을 듣는 것으로 성골들만의 화려한 1박 여행의 저녁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도 좋았다. 까짓것, 대신 안주라도 실컷 먹자며 닭똥집볶음이며 골뱅이무침 등을 계속 시키며 우린 장장 새벽 세시까지 포장마차와 노래방을 전전했다. "아버지 왜 이렇게 마르셨어요·"라며 다이어트중인 두 아들은 나의 늙어가는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아버지는 이제 술이 많이 약해지셨으니 반 잔 씩만 마시라"며 아들들은 또 나를 챙겼다. 그 말이 고마워서 난 몰래 눈물을 찔끔거려야 했고 그래서 또 행복했다. 숙소로 돌아올 땐 두 아들이 내게 어깨동무를 했다.

서른 살 전후의 두 아들이 이제 내 보호자가 된 듯했다. 그들이 나를 염려하고 보살폈다. 책임감 있는 사회인이 되어있었고 같은 어른으로 어깨동무할 수 있는 인생의 동행자가 되어 있었다.

예전에 장성한 우리 네 형제를 거느리며 흐뭇해하던 내 어머니가 그리워졌을 때, 큰 아들이 조만간 할머니 산소를 찾아뵙자고 거듭거듭 말하며 날 몇 번이나 도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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