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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영

세명대 교양과정부 조교수

눈처럼 하얀 털을 가져 '(백)설기'라는 이름을 지어준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다. 입양 당시 1㎏도 안 되는 몸무게의 작은 솜뭉치 같던 강아지는 어느새 7세가 되었고, 이 나이는 사람으로 치면 대략 40대 중반을 넘어서는 것과 유사하다고 했다. 나보다 빠른 시간을 사는 강아지의 건강이 걱정되어 동물병원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건강검진도 하고, 이것저것 몸에 좋다는 건강보조제도 챙겨 먹이게 되었다.

강아지가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셀 수 없이 많다. 까맣고 동그란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서 묻어나오는 나에 대한 애정과 집착, 꼭 안았을 때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과 꼬순 냄새, 퇴근하여 현관문을 열 때 누구보다 먼저 나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꼬리를 치며 매달릴 때의 격한 반가움, 쌀쌀한 밤이면 코로 이불을 들추고 겨드랑이 속으로 파고드는 영리함, 산책길에서 보여주는 건강함과 호기심, 길에서 만난 고양이나 비둘기를 위협하는 허세 가득 찬 용맹스러움까지. 직장과 가정일로 바쁘고 때로는 힘겨운 일상 속에서 강아지는 잠시 현실의 걱정거리와 짐을 잊고 순수한 사랑과 기쁨을 경험하게 해주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강아지를 키우면서 늘 행복감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강아지는 기쁨을 주는 것 이상의 책임감과 부담감을 지워주는 존재인 것 같다. 입양한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을 때 강아지한테 금기라는 포도를 삼켜 한밤에 응급실에 데려간 적이 있다. 약을 먹여 억지로 구토를 하고 축 늘어져 있던 강아지를 보며 실수로 포도를 떨어뜨린 나 자신을 원망하며 속상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강아지와 함께 사는 것이 참 어렵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다. 나만 바라보는 시무룩한 눈길을 뒤로 한 채 출근길을 나설 때, 바쁜 업무에 치여 놀아달라며 치대는 강아지를 밀쳐낼 때, 퇴근이 늦어 그 좋아하는 산책을 다음 날로 미뤄야 할 때, 빨갛게 부어오른 귀를 뒤늦게 발견했을 때. 말로 하기 어려운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보험적용이 안 되는 병원비나 나에게 들이는 것보다 훨씬 더 비싼 미용비로 인한 경제적 부담은 차치하고서도 말이다.

반려동물 인구 1천500만 시대에 접어들면서 반려동물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많은 심리학적 연구가 실시되고 있다. 반려동물과의 상호작용은 긍정적 정서나 삶에 대한 의욕을 증진시키고 스트레스나 외로움, 우울 같은 부정적 정서는 완화시키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한, 반려동물은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 습관 형성을 촉진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신체적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렇게 반려동물이 정서적 교감 및 애착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사람들의 신체적, 심리적 건강에 기여하는 현상을 '반려동물효과(Companion animal effect)'라고 한다.

인간과 반려동물과의 관계는 한층 더 가까워지고 있다. 반려동물을 단순히 애완동물로 여겼던 시기도 있었으나, 현재 대부분의 반려동물 입양가족은 반려동물을 '가족' 또는 '가족이나 다름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반려동물에 대한 학대나 방치, 유기에 관한 뉴스를 접하게 되면 생명이 있는 존재에게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안타깝고 화가 나 차마 기사를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강아지가 딱 한 마디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을 묻고 싶은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네가 있어 참 좋은데, 너도 나랑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하니?"라고 묻고 싶었다. 온전히 나만 바라보는 그 눈망울은 "엄마와 함께 살아서 행복해요. 나에겐 엄마가 전부에요"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누군가에게 세상의 전부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면서도 무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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