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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은영

충북도 바이오산업과장

학창시절 과학실 가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약간의 비릿한 알코올 냄새와 차가운 시멘트 바닥은 친근해지기 어려웠지만, 수업만 시작하면 졸음이 쏟아지는 교실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일이었다. 심지어 과학실 의자는 등받이도 없는데다가 작고 딱딱해서 잠깐만 앉아있어도 엉덩이가 아팠지만 비커와 스포이드, 현미경, 약품 등 실험도구들을 만지작거리고 수업시간에 합법적으로 떠들 수 있는 그 공간은 너무 소중했다. 양파를 잘라 세포를 관찰하고, 리트머스 시험지를 액체에 담가보고, 때로는 전구와 건전지를 복잡하게 연결하는 등 과학실에서 했던 활동들이 엄청난 건 없었지만 책에서 등장한 사진들이 내 눈 앞에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좋았다. 잊고 있던 과학실 풍경들은 최근 몇 년간 기업이나 학교의 연구실을 방문하거나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의과학실험경연대회(올해는 코로나사태로 개최하지 못했다)를 진행하면서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르곤 했다.

이렇게 나에게는 일탈이나 단순한 호기심, 흥미진진함 정도로 그친 '실험(또는 시험)'이라는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일생 최대의 도전이나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또 누군가의 목숨과 가족들의 행복을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임상시험이다.

임상시험은 의약품이나 의료기기 등 인체와 연관된 제품들을 연구·개발하는 경우 그 제품이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최종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최종'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시작'에 직면한다고 표현해야 맞겠다. 왜냐하면 제품을 개발하는 단계와는 다르게 넘어야하는 무수한 허들과 제출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서류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제품 개발에 가장 많은 비용과 자원이 투자되는 시기이다. 더군다나 임상시험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건강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제품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1상, 환자를 대상으로 제품의 유효성 및 적정 투여용량과 용법을 결정하는 2상, 수백 또는 수천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제품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 그리고 기존 치료법 대비 우수성을 확인하는 3상을 거쳐야 한다(긴급성, 희귀질환 등 질병의 심각성에 따라 단계나 대상 인원이 축소되기도 한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제품이 출시되고 난 뒤에도 다시 모니터링을 지속하게 된다.

작년 어떤 행사 중 사용할 영상 제작을 위해 몇몇 분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희귀병을 가지고 태어난 아기의 보호자는 치료제가 임상시험을 위해 국내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감사해했고, 임상시험을 통해 성공적으로 치료를 마친 폐암환자는 임상시험을 권유해주신 의사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눈물로 표시하시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같이 손잡고 울기도 했다. 임상시험, 이거 정말 대단한 일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 연구자들과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병원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일은 바로 임상시험 대상자를 구하는 일이라고 한다. 환자 모집에 난항을 겪으면서 제품 개발이 지연되거나 해외에 나가서 임상을 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한다. 특히 충북은 임상시험을 진행한 지 오래되지 않은 터라 다른 지역에 비해 대상자를 구하기 어렵다고들 하셨다.

우리나라가 2017년 기준 글로벌 임상시험 점유율 세계 6위라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임상시험에 대한 인식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신약개발 과정', '새로운 치료법', '병의 완치' 등의 긍정적인 단어보다는 '아르바이트', '부작용/사망', '실험쥐/마루타' 등 부정적인 단어에 더 높은 비중을 보이고 있단다(임상시험 대국민 인식도 조사, '17년 기준,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 반면 임상시험 참여 경험이 있는 경우에는 93.8%가 다시 참여할 용의가 있다고 하니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기는 하다.

내가 오늘 아침에 먹은 알약 하나가 단순히 몇 가지 성분들을 뭉쳐 뚝딱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식약처가 어설픈 제품에 임상시험을 승인해줄 만큼 호락호락한 곳은 더더욱 아니다. 충북도에도 충북대학교병원, 베스티안병원, 그리고 충청북도 화상품임상연구지원센터 등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기관들이 자리 잡고 있고, 22년에는 오송에 국가임상시험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우리 지역의 기업이 연구개발한 제품이 우리 지역 주민의 건강한 삶에 기여할 수 있도록 관심과 용기를 내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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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